한물간 호랑이/여정건
분비는 보훈병원 접수대 전광판을 뚫어져라. 본다. 이름을 찾는다. 진료 대기실 통로 의자에 굽은 허리를 기댄다. 호명해도 모른다. 귀가 어둡다. 게슴츠레 한 눈으로 아자(啞者) 모양 상대방 입만 본다.
다리에 힘이 없어 팔자 모양 벌어진다. 지팡이에 의지해서 발바닥으로 밀어서 걷는다. 일분도 안되는 주치의 얼굴 보러왔느냐고 투덜투덜
전광판을 올려다본다 약 타기 위해서 번호표를 본다. 게슴츠레 한 눈을 비비며. 옆 사람에게 고개를 돌리고 군 복무는 어디서 했느냐고 전투는 해봤느냐고 묻는다. 눈에 힘이 들어간다. 입에 신이 내린 듯 쭈절쭈절 혀를 돌려 마른 입술에 자꾸 침을 바른다. 아직 기백(氣魄)은 남아있다. 백마고지에서 전투했지. 총알이 우박 쏟아지듯 했지. 많은 전우를 잃었지.
눈물도 말라서 나오지 않어.
듣는 사람은 자리를 떠난 지 오래다. 한물간 호랑이 힘겹게 일어나 발바닥을 밀며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다.
저 노인 집이 어디메요. 저 걸음으로 언제 집에 가나. 젊음은 전쟁터에서 보내고 혼 나간 육골(肉骨)만 남아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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