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9-02 조회수 : 217
Red to Blue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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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울. 잠 못 이루는 밤

밤이 점점 새벽을 향하고 있었지만 청와대 집무실은 대낮 같은 불빛을 흘렸다. 오백여 명의 직원들이 비상 상태로 밤새워 근무 중이기 때문이다.
대회의실에는 대통령, 국무총리 이하 행정 각료들이 모두 소집되어 있었다. 회의는 간단히 끝이났고 침묵만이 흘렀다. 모두들 머릿속은 복잡했다.
‘핵폭탄의 기폭장치를 손에 들고 한반도 전체를 날려버리겠다라 협박하는 테러리스트 집단, 행여 이들과 끈이 닿을지도 모른다라는 실낱 같은 희망하나 때문에 시드니로부터 태평양 상공을 날아오고 있는 퇴역군인, 그리고 최후의 무모한 선택을 위한 또 다른 제 3의 준비란 것이 무엇인가?

정부의 통제에도 막무가내로 질서 없이 술렁이는 일부 국민들, 이런 국민들 중 극소수 계층이 자신들 만의 안위를 위해 일으킨 인천 공항의 소란사태, 또한 계속되는 김정은의 침묵, 몸만 달아있는 우리정부,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의 독자적인 행보.’ 모두들 이런생각에 머릿속 만 복잡했다.
바로 이때 고요를 깨며 전화벨이 울렸다. 합동참모 본부와 연결된 직통전화였다. 담당보좌관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미국 순양함. 시카고 호
이 시각, 디스프리아호 남방에 미국 군함 한 척이 나타났다. 태평양 함대 소속 경 순양함 시카고였다. 시카고는 1만 2천 톤 급 유도 미사일 적재함으로 이날 오후 베링 해협부근을 순항하고 있었다.
“한국 서해로 변침 항진하라” 는 함대 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밝은 달빛아래 파도를 가르며 시카고는 전속력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난 새벽 1시쯤에 시카고는 한국 서해로 들어섰다. 이로서 미국 함정은 2척이 되었다.


깉은시각. 한국 합동 참모본부
“여기는 합동 참모본부 상황실입니다. 미 태평양 함대 경순향함 시카고호가 북한 해역 경계선으로 다가섰습니다. 이 사실을 북한측에 통보했습니다.”

같은시각. 일본 동경
일본정부의 각료 회의는 수상관저에서 열렸다. 신조 수상의 설명을 들은 각료들은 분개했다.
“김정은이 어째서 아직 대답이 없습니까? 우리 일본을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김정은은 본래 그런 인물이오.”
“둘 중 하나의 방법밖에 없는데 어쩌자는 겁니까?”
“지금 단계에 후자의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이지만……”
“내일 아침 140명이 석방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에 테러리스트들이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것을 김정은이 미리 짐작하고 있다라는 뜻입니까?” 라고 또 다른 각료가 물었다.
“김정은이 무슨 각오가 되어있는 듯도 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모든 책임은 김정은에게 있다고 해야겠군요.”
“협박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국가자체가 없어지는 상황인데, 책임 운운 할 그럴 일이 아닙니다.” 또 다른 각료가 답답하다는 듯이 퉁박을 주었다.
“한국정부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한국 정부는 이 막다른 골목을 돌파하기 위해 제 3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식의 말투였소.”
“그 제 3의 계획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국 대통령밖에는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오.”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데 우리에게만은 알려줄 수도 있지 않소?”
“글쎄요.. 아마 가르쳐줄 수 없는 일인 모양이오.”
“이것은 사견입니다만 그렇다면 두 나라 우호관계까지 고려해볼 그런 문제 가 아닙니까?” 외무상이 말했다.
“어쩌면 디스프리아호 기습 작전을 시도하겠다는 그런 계획일지도 모르겠군요” 내무상의 말이었다.
“기습은 매우 위험부담이 크다는 관계자들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즉 기습을 하려면 적어도 마지막 2마일은 물속으로 잠행을 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4층 빌딩 높이의 미끄러운 수직 강철판을 기어올라 갑판에 도달해야 하고 그때까지 감시자에게 들키지 않아야 하며 설혹 갑판 위에 도달하였다 하더라도 대낮같이 불을 밝힌 텅 빈 갑판이 마치 축구 경기장 같아 거기에서도 발각될 위험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더구나 그 많은 선실 중에 테러리스트 지휘자가 있는 선실을 찾아 내야하고 버튼식 폭파장치를 작동시킬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사살하지 않으면 안될 테니까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어쨌든 오늘 밤 안에 이런 일을 한다는 자체가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논의 결과 일본 정부의 방침은 중국이 김정은에게 140명을 석방하라는 강력한 압력을 행사 하여 줄 것을 중국 정부에 전달 하기로 의결했다.

같은시각. 중국 베이징
중국 샤오핑주석은 밤 늦은 시간 관저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일본대사를 만났다.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이미 침실에 든 자신을 찿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막무가내 식의 일본인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일본대사가 말하는 내용을 그는 무표정하게 들었다. 그 역시 내심으로는 디스프리아호를 점거한 폭도들의 성품에 은근한 불안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평양주재 대사를 통해 김정은을 달래 보기로 했다.
그러나 김정은에게 더이상 심한 요구를 할 명분이 약했다. 지금 아세아 국가들을 협박하고 있는 테러리즘을 오히려 두둔하고 김정은 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라는 생각과, 더구나 김정은에게 북한 정권을 반대하는 정치범 140명을 석방하라고 압력을 가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내정 간섭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막무가내 식으로 덤비고 있기 때문에 그는 짜증이 났다. 샤오핑주석은 디스프리아호 사건을 궁극적으로 북한정권이 잘 해결 해 줄 것으로 믿을 수밖에는 별 다른도리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한국, 일본, 중국을 위시한 아세아 국가들은 밤을 밝히며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의 대처에 부심했다.

이튼날(새벽 3시) 디스프리아호
이 사건 진원지인 디스프리아호, 이곳 콘설스 선장 또한 홀로 지쳐서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선장은 눈앞에 앉아있는 테러리스트 두목이 참을수없는 졸음 때문에 몽롱해진 머리로 실수를 범하는 날에는 배와 승무원들이 모두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콘설스 선장은 이빨을 악물고 달려드는 잠을 쫓으며 테러리스트 두목 역시 잠에서 깨워놓아야만 했다. 두 사람이 모두 꼬박 이틀 낮 하루 밤이라는 시간이 자나갔다는 사실이 아주 먼 오랜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 모두 전전날 밤부터 한번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불안과 긴장으로 두 사람이 모두 지쳐 있었다.
콘설스 선장은 테러리스트가 몽롱한 의식 속에서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밤낮없이 계속 지껄여대는 쪽도 콘설스 선장 쪽이었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블랙 커피만 계속해 마시는 것 역시 콘설스 선장 쪽이었다. 그는 오랜 선장 생활로 잠을 안자면 입안이 깔깔해지는 밤을 셀 수도 없이 많이 경험해 보았지만 그런 불면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이렇게 선장은 동료도 없이 응원자도 없이 혼자서 고독한 투쟁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미국. 백악관
이곳 역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대통령 직속 위기 관리팀은 전날 밤 10시에 최종 정보 보고서를 완료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에 스위스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간에 북한측이 정치범 140명을 석방 할 경우 스위스에서 받아 들이기로 공식 합의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대통령들 역시 승산이 있어서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인공위성과 정찰기, 아세아 주변국가에 산재해 있는 고정 첩보원 등등의 정보를 종합해 보았을 때 테러리스트들은 워낙 완강했다. 그래서 단지 헛된 노력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미국의 힘도 미국 대통령도 이번 일에 무력감을 느꼈다. 미국의 그 거대한 힘이 속수 무책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이미 서울 주재 대사관에 훈령을 내려 자국 대사관직원 가족들과 미국 시민들을 한국에서 철수 시키도록 지시 했다.
세계가 보는 눈 때문에 전세기를 띄울 수는 없었지만 가능한 모든 항공편을 이용해서 우선 일본 동경까지만이라도 대피시키도록 훈령을 내렸던 것이다.

한국. 청와대
청와대 새벽 3시, 대통령이 발언자의 말을 독촉했다.
“그래서요.”
“….. 대통령께서 핫라인을 통해 김정은을 이렇게 설득하셔야 합니다. 즉 ‘경애하는 위원장 동지! 동지께서 우선 140명을 석방시켜 풀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대한항공이 그들을 싣고 스위스로 가겠습니다. 그들이 스위스 공항에 도착하는 즉시로 세계언론에 도착 성명을 내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이 성명을 들은 테러리스트들은 자기들의 요구사항이 모두 관철되었으니 스스로 철수해 도망칠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 테러리스트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이 디스프리아호로부터 멀리 떨어져 일본해를 벗어나 태평양 어디쯤까지 도망치게 만든 후 그때 그들을 체포하든 사살하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입니다. 그렇게 한 연후에 스위스 공항으로 보낸 140명을 다시 되돌려 받아 평양으로 싣고 가겠습니다. 그러면 사건을 깨끗하게 끝낼 수 있습니다. 단지 김정은 위원장께서 대한민국 대통령인 저를 믿고 죄수 140명을 하루 이틀 동안 빌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김정은을 잘 설득하십시오. 대통령 각하.”

한국. 해군본부 상황실
“어째서 밤이라는 건가? 대령.” 해군 참모 총장이 물었다.
“테러리스트들이 도망을 결심하고 탈출할 바에는 밤의 어둠을 이용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자네 계획은?”
“2단계로 되어있습니다. 첫단계는, 범인들이 처음 타고 온 조그만 배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디스프리아호 꽁무니에 묶여있습니다. 어두움이 깔리면 우리 수중 대원들이 신속히 접근하여 그 보트에 폭탄을 부착 시킬 것입니다. 물론 이 폭탄은 원거리에서 우리가 전자장치로 폭발시간을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 계획은, 범인들이 도망치기 위해 또 다른 큰 배를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미리 준비된 그 배 안에 우리 특수요원들이 폭발물을 숨겨둔다는 계획입니다.”
“훌륭한 계획이야. 대령.” 장관이 말했다.
“그런데 어두워지기 전에 보트로 접근할 수는 없는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말이야.”
“그것은 무리입니다. 우리 수중대원들이 물속에서 활동할 때는 배기거품이 수면위로 떠오릅니다. 그러면 곧 감시자에게 들키고 말 것입니다.”
“역시 어두워진 뒤가 좋겠군.”
“다만 테러리스트 지휘자가 죽음을 각오할 경우라면 그 사나이 혼자 디스프리아호에 남으려 할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밤에 기습해서 폭파장치에 미처 손을 쓸 겨를을 주지 않고 번개같이 사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런 계획이 준비된 건가?” 장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계획을 준비한 김준한 소령이 밖에서 대기 하고 있습니다.”
장관은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UDT소령은 키가 165센티미터 정도나 될까 하는 작은 키에 어깨가 너무 넓어 역삼각형의 모습이었다.
그는 인간으로서 최고 한계치까지 단련된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수중 다이빙, 클라이밍, 행군, 전투, 사격, 등의 기술을 완벽하게 채득하였고, 비행낙하, 폭발물 취급, 파괴공작, 칼, 올가미 사용, 기타 맨손으로 하는 살인 기술 등, 그밖에 장기간 고립되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있는 방법 등등의 온갖 기술 습득 보유자였다.

김준한 소령은 회의실 안 모든 시선들이 자기에게 집중해 있는 것을 의식하면서 현대 조선에서 제공받은 디스프리아호 모형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소령의 설명이 곧 시작됐다.
“우선 우리 구축함 광개토함을 디스프리아호와 평행이 되도록 정박 위치를 변경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밤의 어둠을 이용해 제 부하들과 장비를 실은 초계정을 광개토함 뒷쪽 현측으로 접근시킵니다. 현측에 바짝 붙어있으면 디스프리아호 감시자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챌 수 없습니다. 하루 종일 안심하고 거기서 야간침투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장관 비서진들이 브리핑의 요점을 메모해 가고 있었다.
“습격은 달이 기운 후 시작되는데 대원들은 2인 1조로 카약을 타고 디스프리아호로 접근합니다. 카약은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습니다. 카약 뒷자리에 탄 대원 등뒤에는 형광 페인트가 칠해진 검은 수건이 붙어있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잠행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표 2마일 지점에서 우리를 떨어뜨린 카약은 되돌아 갑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대원 8명이 2마일을 수영한 후 디스프리아호 선미에서 합류합니다.”
“선미보다 선수루쪽이 더 어두울 터인데 왜 선미인가?” 공군쪽에서 질문했다.
“선수루에는 감시자가 있습니다. 또한 선수루쪽은 수면에서 5층 높이를 기어올라야 합니다. 게다가 선수루 쪽 갑판에서 브릿지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브릿지에서 조작하는 조명 라이트에 노출될 위험 또한 있습니다.”
질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미에서 만난 우리 다섯은 발에 신은 오리발, 마스크, 산소통, 중량유지를 위한 납덩이, 벨트 등 장비를 모두 벗어버리고 선미로 올라갑니다. 우리 대원이 착용하는 고무 웨크 슈즈는 일정한 접착성을 유지합니다. 무기는 허리에 감은 넓은 천 벨트에 꽂아 넣고 네발로 수직 철판 위를 기어오릅니다.”
“2마일이나 헤엄을 친 뒤, 3킬로의 무기를 휴대하고 어떻게 미끄러운 4층 높이를 기어오른단 말인가?” 이번에는 육군쪽에서 질문했다.
“예, 자신 있습니다. 훈련 때는 보통 빌딩 10층 높이 정도는 거뜬히 해냈습니다. 또한 저희들 장비 중에 크램프란 것이 있습니다. 마그네틱 크렘프라는 장비는 고무접시 모양에다가 손잡이가 달려있습니다. 수평 강철판 위에서 문어발처럼 달라붙지요. 빨판식의 강력한 접착 힘은 전자 자석의 힘으로 스위치를 넣었다 끊었다 할 수 있는 특수한 장비입니다.
또한 선두 주자는 로프를 휴대합니다. 리더가 미리 올라가 위에서 고정된 로프만 내려준다면 뒤따르는 대원들을 순식간에 갑판위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모두들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설명이 계속됐다.
“후미 갑판에서 선교루 벽을 따라 이 모퉁이를 돌아 여기 세탁실까지 이동합니다. 그리고 소형 휴대용 용접기로 외부 철창문을 소리 없이 녹여 열고 안으로 침입합니다. 이렇게 실내까지 침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 후 폭파장치를 휴대한 테러리스트 지휘자를 어떻게 찾아낼 건가?”
국방장관이 물었다.
“이 계단을 오른후 방마다 순서대로 조사해 나갑니다. 방안에 있는 인간들은 모조리 사일렌서 가 달린 총으로 쏴버리는 겁니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시킵니다. 머리를 쏘면 의식은 없지만 손발 근육은 움직입니다. 만약 손에 핵폭탄 스위치가 들려있다면 무의식 상태에서도 눌러질 수가 있기 때문 입니다. 4명이 한 조로, 2명은 안으로 뛰어들고, 2명은 밖을 지킵니다. 복도나 계단에서 마주치는 인간도 같은 방법으로 처리됩니다. 그렇게 주욱- 치고 올라가면 기관장실 선장실까지 도달합니다. 거기서도 같은 요령입니다. 마지막으로 브릿지에 다다랐을 때는 4사람이 모두 동시에 안쪽을 덮칩니다. 브릿지는 공간이 넓어 과녁의 시야를 좁힐 수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 특수 수류탄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모두를 전멸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들 중에 콘설스 선장이 섞여 있을 텐데 그는 어떻게 구출할 셈인가?”
“진심으로 유감 된 일이지만, 선장을 확인하여 구출할 시간적인 여유는 전혀 없습니다.”
“만약 그 습격의 순간에 핵폭발 기폭장치를 휴대한 테러리스트 지휘자가 어딘가 다른 장소에 나가있다면, 가령 바람을 쐬러 갑판에 나갈 수도 있고 화장실 안에 있을 수도 있고 그러면…”
“새벽시간이어서 그럴 확률은 거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 작전은 실패합니다.”
“작전실패라는 말은 곧 핵폭탄이 폭발한다는 말이네……”
모두들 말없이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국방장관이 결단을 내렸다. 그가 소령에게 지시했다.
“잘 알겠네, 그럼 출발하게, 그런데 마지막 투입 직전에 다시 한번 내 승인을 꼭 받도록 하게 이건 대통령각하 명령이기도 하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광개토함에 명령을 먼저 내려주십시오. 함의 방향을 변경 하라는”
UDT소령은 손목 시계를 힐끗 보았다. 시간은 오전 4시 10분이었다. 곧 동이 틀 시각이었다.
“그럼 대원들과 지금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행운을 빌겠네.” 해군 참모총장이 소령에게 악수를 청했다.
국방장관의 결단에 힘입은 대령이 김준한 소령과 함께 테이블 위에 있는 디스프리아호 설계도와 사진을 챙겨 들고 황급히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그들은 대기하고 있는 헬기에 올라 기지로 출발했다.
국방장관 또한 지친 표정으로 대통령에게 결과 보고 준비를 서둘렀다.

일본. 동경
이날 아침 6시. 동경의 아침신문들은 평양 중앙통신의 성명을 일제히 보도했다.
“북조선 인민민주 공화국 정부는 온갖 요소를 고려한 결과 테러리스트 협박에 굴복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범인들과 교섭은 계속 할 것이다.” 라고,
이에 세계 각국 특파원들은 범인들과 교섭은 계속 할 것이라는 북한 정권의 발표가 결국 정치범 140명을 석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라는 나름대로의 해설을 달았다. 그리고 이것은 평양 정권의 특성상 당연한 수순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뉴욕의 신문들은 보도내용의 양상이 조금 달랐다. 즉 북한이 발표한 원안을 그대로 보도했다.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정부는 온갖 요소들을 고려한 결과 범인들의 협박에 굴복한다는 것은 잘못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교섭에 노력은 하겠다/ 라 보도를 내보냈다,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는 한밤중부터 군사회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상의를 벗고 넥타이까지 풀었다.
비서진들이 황급히 드나들었고 CIA국장과 국무장관과 국방성은 군장성들을 소집했다.
서울시간 오전 9시, 미국 동부 표준시로 14시간의 시차로 인해 뉴욕은 밤 11시였다.
CIA서울사무소에서 보낸 마지막 보고서가 국장의 손에 들려 있었고 국장은 그것을 말없이 대통령에게 건넸다.
“당연히 미리 생각했어야 하는데” 대통령이 침울하게 말했다.
“예상과 관계없이 이미 현실적으로 발생된 사태이니 좌시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각하.”
“한국 해군이, 그 UDT특수 부대가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대통령은 몹시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보좌관에게 말했다.
“과거 한국 동란 이후 창설된 특수부대이긴 하지만 실전에 나타난 성과는 없습니다.” 안보담당 보좌관 스미스가 대답했다.
“테러범들이 어떤 조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정말로 핵폭탄을 폭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아마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는 자들인 것 같소.” 대통령이 말했다.
대통령의 이 말에 모두들 침묵했다.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대통령이 조용한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군사 작전뿐이오. 태평양 함대에 발령된 군사작전”
참석자들이 흠짓 놀랐다.
“누구나 이런 결단을 내리고 싶진 않을 것이오. 그러나 이 방법 밖에는 다른 대책이 없는 것 같아요.”

CIA국장이 진지하게 대통령의 말을 받았다.
“한국은 지금 위험한 도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일몰 후 특공 잠수부대를 보내서 디스프리아호를 기습 한다라는 무모한 작전입니다. 핵폭파 장치를 갖고 있는 범인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그런 계획을 세우고는 지금 작전을 실행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미국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하오.” 대통령이 말했다.
“각하, 처음 계획대로 이 기회에 김정은을 아예 제거해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CIA 국장이 내린 판단이었다.
“각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일단 조건부 명령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국무장관이 거듭 말했다. “그럼 계획된 우리의 작전을 실행에 옮길 수 밖에 없다면… “ 대통령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피로한 눈을 비비며 말했다.
대통령의 새끼 손가락이 작은 경련을 일으켰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이 종국적으로 외로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마다 일어나는 독특한 그의 생리 현상이었다.
지금 대통령 앞 테이블 위에 놓인 작전 계획서는 김정은 제거및 북한의 핵시설을 일시에 타격하는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북한폭격 계획이다.

피랍 이틀째. 새벽
디스프리아호 브릿지에는 콘설스 선장과 테러리스트 지휘자가 CNN뉴스를 듣고 있었다.
이들 역시 바깥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 시간마다 열심히 뉴스를 들어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평양놈들은” 테러범 지휘자가 중얼거렸다.
“조금 더 기다려 봅시다. 당신 계획대로” 콘설스 선장이 그를 달래듯 말했다.
“당신이 처음 계획한대로 미국을 위시한 전세계가 모두 당신 편이 됐으면 좋겠는데...... 아마도 그렇게 될 거요. 조금 더 기다려 봅시다.”
“아니요,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들이야.”
“아마 북한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요. 당신 일은 처음 계획대로 모두 척척 잘 이루어져 가고 있는 중이요.”
“선장 당신은, 이 배와 승무원들 생명이나 걱정 하시요. 주제 넘게 다른 소린 지껄이지 말고, 알겠소?”
콘설스 선장은 입을 다물었다.
콘설스 선장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로부터 30여분 후, 디스프리아호와 교신을 위해 비워진 25번 체널을 통해 콘설스 선장의 목소리가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대기하고 있던 각국 기관 담당자들은 황급히 레코드 스위치를 눌렀다.
콘설스 선장 목소리는 피로에 지쳐있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범인들이 적어준 메시지를 그냥 읽어내려 가는 듯 했다.
“오늘 아침, 평양에서 북한 정권이 발표한 ‘온갖 요소들을 고려한 결과, 범인들의 협박에 굴복할 수 없다’라는 뉴스 듣고 우리 동지들 일동은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북조선 집단이 내일 정오까지 140명의 석방을 결정하지 못할 때는 디스프리아호 브릿지 벽에 부착된 디지털 시계가 정오를 알리는 순간 핵 폭탄은 폭발할 것 이다. 5기의 핵폭탄이 동시에 폭발할 것 임. 끝.”
송신은 끝나고 일방적으로 교신 스위치가 꺼졌다.
최후 이 마지막 통고를 전 세계 국가가 동시에 청취했고 라디오와 TV는 임시뉴스로 쏟아냈다.

한국 해군. 광개토함
광개토함 함장은 함교에서 함의 위치변경 명령을 수행했다.
“아직 암호는 그대로인가?” 함장이 통신사관에게 물었다.
“네, 함장님. 조금 전부터 긴급체제로 바뀌었습니다. 본부에서 명령계통을 뛰어넘으란 지시입니다.”
“알았네.” 함장은 짧게 대답했다.
그는 통신사관이 물러간 다음 함장실로 내려왔다. 함장은 벽 금고를 열고 암호교신에 필요한 해독서를 꺼내 읽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명령임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곧 명령을 수행할 준비를 서둘렀다.

한국 성남. 서울 비행장 새벽
동녘 하늘이 채 밝기 전, 서울근교 성남 공군비행장의 긴 활주로가 비워졌다. 그리고 F104기의 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푸른 착륙 유도등이 일제히 불을 밝혔다.
곧 새벽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최신예 정찰기 F104가 서울공항에 내려앉았다.
국정원장이 수행원도 없이 직접 비행기 트랩까지 마중을 나왔다.
국정원장은 비상트랩을 내려서는 강철과 응웬에게 악수를 청해 인사했다.
“참 잘 오셨습니다.”
그는 재빨리 강철과 응웬을 자동차 뒷자리에 앉혔다.
차 앞 부분 운전석과는 유리벽으로 차단 되어 있었고, 어느곳 이든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도 비치되어 있었다. 차가 공항을 빠져 나와 지척의 거리인 국정원까지 오는 동안 국정원장은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강 선생님! 두분 모두 어려운 여행을 하셨습니다.”
“아주 엉망진창의 여행이었습니다.” 강철이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응수했다. 국정원장의 교활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계속해 말했다.
“응웬의 정체는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미행이 붙은 것도 확인했고, 칼을 들고 죽이려 덤벼드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예, 시드니 주재원들에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정말 유감입니다 국정원장님, 지금의 국가적 비상사태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저희들을 대하시는 원장님의 태도와 말씀이 너무 지나치셨습니다.”
“예, 인정합니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 제가 경황이 없어서요.”
두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응웬도 말없이 검은 차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 이런 국가적인 비상사태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그 테러범들이 모두 호주에서 북한으로 숨어든 자들입니다. 그들 조직원들 중에 틀림없이 강선생님이 알고 있는 자가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듬니다. 만약에......”
“만약에 테러범 중에 내가 알고 있는 자가 있다면 어쪄시려구요?” 강철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국정원장의 말을 잘랐다.
“그렇다면 김선생께서 수고를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셔야겠습니다.”
또다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렇다면 나도 조건이 있오.” 강철이 국정원장의 말에 토를 달았다.
“내 조건이란게 별게 아니오. 내가 국정원장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청와대로 함께 들어가 대통령 앞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합시다.”
“아니? 대통령 앞이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요? 대통령이 무슨 구멍가게 주인라도 되는 줄 아시오? 대통령께서만나 줄 것 같습니까?” 국정원장은 예상외로 강경하게 말 했다.
이에 강철은 너그럽게 웃으며 잘 응수했다.
“하 하 하 국정원장님 정도라면 그런것쯤은 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압니다. 지금 이전화로 대통령께 통화해 보십시오. 그만한 각오도 없이 저를 여기까지 부르셨습니까?”
국정원장은 ‘강철의 뜻을 굳이 꺾을 필요가 없다’라 생각했다.
대통령도 이미 강철의 도착을 알고 있을 터이다. 그는 자동차에 설치된 전화기로 팔을 뻗었다. 전화는 곧 청와대 상황실로 연결되었다.

한국 인천. 국제공항
해외로 빠져나가기 위한 인파들이 공항 곳곳에서 어제부터 밤샘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꾸역꾸역 계속해 밀려들고 만 있었다. 질서 유지를 위해 공항 경찰대가 증원 배치되었다.
내국인에 한하여, 국가가 어려움에 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출국을 시도하는 병역 미필자들이나 예비군들에 대한 명단이 작성되어 각급 기관에 통보됐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쯤은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수라장인 출국장에 비해 입국장은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이렇게 한산한 입국 사열대를 중년여자 한 명이 총총걸음으로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쓸쓸히 입국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곧 후레쉬 세례를 받으며 대기중이던 내 외신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미세스 콘설스 부인,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콘설스 부인, 부인이 입국한 사실을 한국정부도 알고 있습니까?”
“디스프리아호 선장이신 남편이 최근 집에 들린 것은 언제쯤입니까?”
“남편과 통화는 해보셨습니까?”
“지금 당장 어디로 먼저 가시겠습니까?”
그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혼이 다 빠졌다.
그녀는 오직 남편 생각으로만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그녀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저는 지금 몹시 지쳐있습니다. 여러분께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저는 단지 남편의 용기를 북돋우어 주기 위해 이리로 온 것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가능한 남편과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고 싶습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다른 말씀은 더 드릴 것이 없습니다.”

전 세계 보도진의 열기가 인천 국제공항에서 뜨겁게 달아 올랐다.
취재 중심 인물 중 한 명이 콘설스 선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취재진들은 이제 콘설스선장 부인을 상대로 치열한 취재 경쟁이 벌어진 것 이었다.
우선 아세아 유수 석간지와 전세계 라디오와 TV뉴스들은 벌써부터 부인의 이야기와 그녀의 사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한국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한편에 탁자를 마주하고 다섯 사람이 둘러앉았다.
대통령, 대통령 비서실장, 국정원장, 강철, 또 한 명의 남자였다.
“대통령님을 뵙겠다고 고집한 저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대통령님.”
강철이 대통령께 머리를 숙였다.
“아니요 강철 씨, 먼 길 오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북한 사람들과 접촉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저들 북한인들은 대부분 시드니에서 마약밀매나 위조지폐 유통 등의 범죄활동에 개입한 자들입니다. 정보수집 활동 일환으로 현지 경찰을 돕게 되는 과정에서 저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사진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국정원장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가방 안에서 사진 몇 장을 꺼냈다.
“이사진은 고공 정찰기가 찍어서 보낸 사진입니다. 우선 여기 브릿지 부근에 한 사람, 배 선수루에 한 사람, 갑판에 한 사람, 그리고 또 여기 유리창 안쪽의 얼굴, 이 네 사람의 얼굴을 확대한 사진입니다. “
사진은 매우 선명했다. 일반 인물사진과 똑같았다. 그 중 한 장, 커다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유리창 건너편 브릿지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남자의 둥근 얼굴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했다. 그러나 강철은 사진들을 말없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강철은 눈을 들어 국정원장을 바라보며 짧게 질문했다.
“원장님, 제가 해야 할 일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강선생님께서 이 테러범들을 한번 만나 보셔야겠습니다.”
“어떻게요? 저들이 지금 무슨 회담을 요구해오지도 않았잖습니까?”
“피랍된 디스프리아호 선장 부인이 방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선장과 부인이 만날 수 있도록 조치를 강구해 보려 합니다. 이때 강선생님이 콘설스 선장 부인과 함께 같이 움직이면 될 것 같습니다.”
강철의 곤혹스런 표정이 얼굴에 확연히 들어났다.
강철이 말했다.
“국정원장님.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직 테러범들이 콘설스선장을 부인과 만나게 하는데 있어 동의 하지를 않았습니다. 설혹 그런 동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들 부부가 만나는 자리에는 따라가지 않을것 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상황을 좀더 상세히 알려주시면 제가 해야 할 일을 제 스스로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망 시켜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강철은 진지한 표정으로 설득하듯 계속해 말 했다.
“이건 제가 계속 생각해오던 것이긴 한데… 콘설스 선장과 부인이 만난다고 하니, 만나려면 부인이 디스프리아호로가던지 선장이 디스프리아호에서 육지로 나오던지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때 기회를 잡아 선장의 몸에 전자장치 같은 것을 숨겨놓으면 어떻겠습니까?”
대통령을 위시하여 네 사람이 모두 강철이 하고 있는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껌뻑였다. 강철이 계속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핵폭탄을 폭발 시킬 수 있는 장치를 테러리스트 두목이 휴대하고 그 테러범 두목 옆에 항상 콘설스 선장이 붙어있다라면”
국정원장과 옆에 앉은 남자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반짝하고 빛을 발했다.
국정원장의 입에서는 “음~” 하는 신음소리까지 흘렸다.
드디어 국정원장이 무릎을 탁 치며 강철의 손을 잡았다.
“알았오, 강선생!”
국정원장이 강철을 대신해서 재빨리 대통령께설명했다.
“지금까지 테러리스트 지휘자의 태도를 종합해보면 그는 항상 콘설스 선장 옆에 붙어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콘설스 선장이 화장실에 가도 함께 따라 들어갈 겁니다. 선장이 있는 곳에는 항상 그가 있고 그의 손에는 핵폭탄 폭파단추가 들려있습니다. 그런데 전자 추적장치 같은 것을 선장의 몸 어딘가에 숨겨 장치해 놓기만 한다면 그들의 움직임을 여기서도, 이곳에 앉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국정원장은 계속해 말을 이어나갔다.
“군사용 추적장치는 그 크기가 쌀알처럼 작아서 볼펜, 만년필, 시계, 양복 단추속, 혁대 버클 같은 곳에 숨길 수 있습니다. 그 추적장치에서 발진되는 전파를 인공위성이 잡아 모니터링 시켜줍니다. 컴퓨터에 연결하면 화면에 디스프리아호 선체 모형도가 그래픽 되어 나타나고 그 모형 위에 붉은 점이 움직입니다. 즉 테러범 두목과 선장이 배 안에서 어디를 가든지 그들의 움직임과 위치를 여기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열 개의 눈동자들이 동시에 희망을 찾아 반짝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들의 얼굴에 활기가 넘쳤다.
강철이 남은 의견을 빠르게 말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전자장치를 선장 몸에 숨길 수만 있다면… 대통령 각하, 디스프리아호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 정박하고 있는 우리해군 함정과 정보를 공유하여 테러리스트를 사살하도록 명령 하실 수 있습니다. 즉 디스프리아호 조감도가 컴퓨터에 모니터링 되면 추적장치의 빨간 점이 배의 꼭지점인 브릿지 위에서 반짝일 때, 그 순간 저격수가 총을 쏘듯이 ‘함포킬’로 정확히 조준 사격하여 브릿지 부분만 깨끗이 날려 버리면 됩니다. 마치 저격수가 목표물을 명중 시키듯이… 그러면 상황은 끝입니다.”

한국 해군함정. 광개토함
시스페로우 미사일을 탑제한 구축함, 광개토함은 이 미사일 외에 127미리의 오토메라라 함포 1문이 장착돼 있었다.
이는 평시 체제의 해안 순찰에 필요한 아주 유용한 무기였다. 이 함포는 레이더와 컴퓨터로 조준, 발사되는 관제 방식의 전자화 무기였다. 이 포는 일분에 45발의 포탄을 고속으로 연속발사 할 수 도 있다. 조준은 레이더나 위성이 보낸 정보에 따라 컴퓨터가 정보분석을 마친 후 정해진다.
즉 전파의 눈이 미리 컴퓨터에 프로그래밍된 지시에 따라 목표물을 세밀히 포착하여, 파도의 높이와 목표의 움직임과 거리등이 복합적으로 계산 된다. 이렇게 해서 산출된 조준은 한번 겨냥되면 수평각과 양각이 목표물을 놓아주질 않는다. 탄도의 패턴까지도 컴퓨터에 미리 세트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

시간은 시시 각각 흘렀다. 전 세계는 숨 죽이고 일촉즉발의 순간에 긴장했다.
한편, 소령이 지휘하는 특공대들은 소음 기관단총과 수류탄, 작은 칼등으로 무장하고 필요한 장비들도 모두 갖추었다.
물결이 스며들듯 새벽안개가 몰려들었다. 서해의 바다안개는 두텁고도 깊었다.
45피트짜리 고무보트 한 척이 여덟명의 대원을 태우고 광개토함 우현에 도착했다. 회색안개가 시야를 덮어 주위의 반경 5미터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아득한 상공에 떠있는 미국 위성과 첩보기들 눈은 환하게 밝아 세밀한 영상자료들을 포착해 각국 기지로 전송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상황실은 대형 모니터를 통해 관계자들이 언제라도 디스프리아호 주변을 살펴볼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했다. 선명한 모니터 영상은 정찰기 E-737의 카메라가 촬영직후 광개토함 데이터링크를 경유해 청와대로 보내 오는 것들 이었다.
지금 디스프리아호 주변 동남쪽에 포진하고 있는 각국 해군 함정들은 우리나라 광개토함을 비롯해 일본의 무사시호, 미국의 아리조나호, 중국의 루하이함, 조금 떨어진 해역에 떠있는 대만 해군 샹하이호까지도 모두 화면에 선명히 나타났다. 이들 각국 군함 들은 지금쯤 초 긴장 상태로 본국 정부의 명령에 대기하고 있을 터이다.

같은 시각. 미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도 똑 같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타이 차림에다 티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참모들이 대형 모니터 앞에 둘러앉았다. 이때 CIA국장이 외부로 연결된 전화를 받더니 대통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 해군 소령이 이끄는 기습 공격대가 대기 상태에 들어갔고, 호주에서 급히 날아온 한 사내가 지금 한국 대통령과 만나고 있답니다.”
대통령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한국 대통령이 지금 누구를 만나든 말든 별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이제, 이밤만 지나면 그 소령이 이끄는 한국 해군 특공대가 디스프리아호를 공격할 것이고 그 직전에 우리가 먼저 평양을 폭격해 김정은을 제거해 버릴 계획 아니었오?”
CIA국장은 대통령의 이런 말에 대답했다.
“각하, 그 사나이가 한국 대통령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곧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단독 면담이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 대통령은 특별이 공군기까지 띄워 그를 급히 데려왔답니다. 또한 디스프리아호 선장 부인 역시 서울에 도착해 있습니다.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CIA국장은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며 대통령을 설득했다. 시각은 9시였다.
워싱턴 시각으로 밤 9시, 서울은 오전 10시였다.

같은 시각. 디스프리아호 브릿지
아침 뉴스를 듣기 위해 함교 스피커에 연결시켜 놓은 라디오 방송은 테러리스트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그들이 모두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방송 AM 채널에 맞춰져 있었다.
오늘 아침 뉴스는 콘설스 부인 한국방문 이야기로부터 시작이 됐다.
이른 아침부터 세계각국 언론들이 한 중년여인의 서울방문 이유와 목적에 보도의 초점이 모아졌다.
비행기에 내려선 여인의 모습을 매 순간마다 보도했고 그녀의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전부 인용했다.
콘설스선장 역시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중간중간 아나운서들이 표현하고 있는 영어단어를 종합해볼 때 사태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선장은 이틀째 잠을 못 자 혼미해 지는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계속해 독한 블랙 커피만을 마시고 있었다.
테러리스트 지휘자 또한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조금씩 몸을 흔들어 상체운동을 했다. 그가 윗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의 허리춤 혁대에 끈으로 묶어 매달아 놓은 핵 폭탄 폭파 장치가 삐죽이 내 보였다.
그는 일어나 라디오 볼륨을 낮추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놈들, 도대체 무슨 소란들이야!”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레이더 담당자가 있는 쪽으로 옮겨 앉아 또다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무엇인가를 메모하곤했다.

같은 시각. 청와대
대통령은 호주 하워드수상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 각하, 한반도 사태에 대해 제가 지금 각하께 무슨 위로의 말씀을 드린들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만 무사하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워드수상 각하! 우리 한국국민들이 모두 이번 사태를 슬기롭게 넘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정말 대단히 고맙습니다.”
“대통령 각하, 이런 어려운 시기에 염치없이 제가 한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수상의 음성에서 간절함이 묻어났다.
“수상각하, 무슨 일 인지? 말씀이나 해 보십시오.”
“피랍된 디스프리아호 선장은 우리 호주국민입니다. 지금 디스프리아호 선장 부인이 그곳 한국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콘설스선장 부인에 대한 편의 제공을 대통령각하께 부탁 드려야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수상 각하,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수상은 단도직입적으로 대통령에게 말 했다.
“한국에 도착한 콘설스 선장부인을 사건 현장에 파견된 한국군함으로 데려다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그 부인의 뜻입니다. 남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합니다 그녀가,”
“예, 잘 알겠습니다 수상 각하, 그렇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인천. 해운 항만청
직접 인천 해운항만청을 호출하는 디스프리아호의 무선을 접촉한 시각이 오전 11시었다. 역시 25 채널 주파대 였다.
“말씀 하십시오, 디스프리아호. 여기는 한국 인천입니다.”
“………………”
“말씀 하십시오, 디스프리아. 여기는 한국 인천, 인천 해운 항만청입니다.”
“여기는 디스프리아, 그쪽 책임자를 바꿔주시오. 이곳 리더가 그쪽 책임자에게 전달할 사항이 있답니다.”
콘설스 선장의 목소리가 인천항만청 통신실에 울려 퍼졌다.
“디스프리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담당자는 황급히 송신구를 손바닥으로 막고 항만 청장실로 통하는 구내 인터폰으로 청장을 찾았다. 그리고 무선 전화를 청장에게로 연결시켰다.
이러는 사이 옆자리에 있던 직원이 경황없이 허둥대는 동료를 대신해 통화녹음을 위한 레코드 버튼을 그때서야 눌렀다.
“디스프리아호. 저는 이곳 대한민국 인천 항만청장 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이곳 디스프리아호를 점령한 리더가 평양에서 140명을 태우고 스위스로 날아갈 비행기에 대하여 한국측과 회담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까?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저의 권한 밖의 일이긴 하지만, 30분만 여유를 주십시오. 그러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30분 후에 다시 교신하도록 합시다.”
말이 끊어짐과 동시에 디스프리아에서 걸려온 전화는 일방적으로 교신이 중단됐다.

“회담 이라면”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장이 흥분에 들떠 말을 더듬었다.
“회담이라면 만나자는 그런 뜻 입니까?”
“명확히 만나자는 말은 없었고, 회담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항만청장 역시 말이 떨렸다.
“그러면, 내 말 잘 들으시오 청장, 30분 후에 다시 저쪽과 연결이 되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바꿔준다고 말하고는 그 전화를 청와대 통신실로 연결시켜 주십시오. 연결 하는데 있어 기술상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아시겠어요 청장?”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동안 시간은 벌써 30분이 흘렀다.
항만청장은 청와대와 통화하던 수화기를 미처 내려놓기도 전에 디스프리아호에서 다시 걸려온 콘설스 선장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청장은 이마에서 땀이 비오 듯이 흘러 내려 눈자위를 따갑게 적셨다.
통화내용 녹음을 위해 대기하던 통신실 직원의 손길이 재빨리 움직였다. 그들은 디스프리아호에서 걸려온 무선 전화를 청와대 통신실로 접속시키는데 성공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목소리가 유선과 무선을 타고 디스프리아호로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디스프리아호, 나는 국가안보실장입니다. 그쪽에서 회담제의를 해왔다는데, 내가 그리로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군인도 아닙니다. 총 같은 것은 아예 없습니다. 나 혼자 몸으로 국제 적십자사 헬리콥터를 타고 그리로 가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건 안됩니다. 누구라도 이곳으로 올 수는 없습니다. 허락 없이 나타나면 사살됩니다.”
“그러면 그쪽에서 이리로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그것도 안됩니다. 육지로는…”
콘설스 선장은 테러리스트 지휘자가 적어준 메모지를 보면서 말했다.
“바다에서 만나자는 말이군요 그럼.”
“그런 셈이지요.” 콘설스 선장이 테러리스트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바다? 바다 어디에서요? 이렇게 하면 어떻겠오. 우리가 민간인 선박을 그리로 보내겠오. 어떻소?”
“잠깐만 기다리세요.” 콘설스 선장이 말했다.
그 순간 테러리스트 지휘자의 손가락이 앞쪽 바다를 가리켰다.
그는 멀리 떠있는 군함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콘설스 선장이 알았다는 뜻으로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송화기에다 입을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출동해 있는 한국 군함 이름이 무엇입니까?”
“구축함 말입니까? 광개토함입니다.”
“회담을 광개토함에서 하자고 합니다. 이쪽에서는 한 사람이 대표로 갑니다. 그쪽 참석자는 당신과 광개토함 함장 두 사람 이상은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알겠오. 그쪽에서 오는 리더의 안전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오?”
또다시 통화가 중단됐다. 선장과 테러리스트 리더 사이에 의견 조정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이윽고 잠시 후 선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쪽에서는 리더가 가지 않습니다. 대표 한 사람을 보냅니다. 오늘 14시 정각에 비무장 소형 헬기를 이곳 디스프리아호로 보내 주십시오. 그러나 착륙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상갑판 위 20피트 지점에서 로프로 엮어 만든 간이 의자를 아래로 내려뜨려 이쪽 대표를 끌어 올려 광개토함으로 데려가야 하고 회담을 마친후, 같은 방법으로 다시 데려다 주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잘 알겠습니다.” 국가안보실장이 대답했다. 그는 우선 회담을 성사시킨 것에 안도했다.

25채널로 주고 받은 이 통화 내용 역시 세계 각국의 정보 조직은 물론 매스컴에 까지 동시에 노출이 됐다. 미 태평양함대 경순향함 아리조나는 이 교신을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이 워싱턴 국가안보국(NSA)으로 생중계했다.
국가안보국 역시 이 상황을 백악관 텔레프린터를 통해 대통령에게 실시간 보고했다.
전 세계 메스컴의 기자단들은 한국 정부 대변인인 문체부 장관에게 광개토함에서 개최될 예정인 회담의 시작과 결과를 신속히 발표해달라는 주문이 한국정부에 쇄도하기 시작했다.


디스프리아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교신을 막 끝낸 콘설스 선장및 테러리스트는 너무 지친 나머지 힘없이 또다시 자리에 내려 앉았다.
두 사람 모두 턱밑 수염은 덥수룩히 자랄 대로 자라있었고, 잠을 못 이룬 두 눈은 선명한 핏줄로 충혈돼 있었다.

“자아 벌써 13시가 되었오, 외출 준비 하시오 선장”
테러리스트 리더가 콘설스 선장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무슨 외출 준비를?”
선장은 관심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부인을 만나려면 수염이라도 좀 깎는 게 어떻겠소?”
의외라는 듯 콘설스 선장이 잠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이것 보시오 당신! 정말 사람을 잘못 봤소. 내가 내 부하와 내 배를 사지에 버려둔채로 나 혼자 살겠다며 여기를 떠날 것 같소?” 콘설스선장 목소리는 작지만 단호했다.
테러리스트 리더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웃음 띤 얼굴로 선장을 힐난했다.
“선장, 당신이야 말로 오해를 하고 있오, 당신은 갔다가 꼭 배로 다시 돌아와야만 하오. 내가 당신을 보내는 이유를 말하리다. 현재 이 배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 핵 폭탄을 폭파시킬 준비가 완벽하다는 사실, 이런걸 외부에 확실히 납득시키기 위해서요. 그리고 140명의 석방 준비를 위해서 한국 국적 여객기 한대가 꼭 필요하오.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적당한 사람은 이 배 안에서 당신밖에 없소.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오? 그러니 빨리 떠날 준비나 서두르시오. 40분 후면 헬기가 날아올 테니.”
그는 계속 말했다.
“그러니 이왕이면 수염도 좀 깎고 가시오. 부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잖소”
선장은 두손 들었다는 듯이 지긋한 눈길로 테러리스트 리더 얼굴을 바라보았다.

같은 시각
강철은 전자장비 전문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국정원 요원 또한 한시도 틈을 주지 않고 그의 옆에 붙어있다. 응웬은 국정원이 제공한 안전 가옥에서 불편 없이 대기하도록 조치 되었다.
“이것에 바로 PPS(Precise Positioning System)라는 추적장치, 즉 군사용 정밀 위치추적 시스템 이지요.”
전자장비 전문 요원이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서 끄집어낸 조그마한 것을 강철이 앉아있는 탁자 유리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한 말이었다.
강철은 그것을 자세히 관찰했다. 꼭 전자 손목시계용 소형 배터리처럼 생겼는데 두께가 훨씬 더 얇았다. 한쪽 면은 금속이고 반대쪽 면은 다른 물질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반대쪽 면에 붙은 접착제 커버를 떼어내면 어디든지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습니다.” 요원의 설명이었다. 요원은 핀셋으로 PPS를 집어 올려 뒷면을 강철에게 보여주었다. 이때 또다른 요원이 강철에게 말 했다.
“이것을 선장의 옷깃이나 신발 같은 곳에 고정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이 일은 우리가 콘설스 선장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해낼 것입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원의 설명이 계속됐다.
“PPS란 이것이, 설치된 장소나 표적물의 위치를 끊임없이 하늘에 떠있는 F104 정찰기와 인공위성에 알려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위치를 실시간 중계 받습니다. 먼 곳에서 움직이는 목표물을 향해 사격을 할 때나 물체를 추적할 때 주로 이런걸 씁니다. 컴퓨터 모니터는 아주 정확한 위치를 점 찍어 주지요. 오차는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만약 윗저고리, 자켓에다 이 장치를 붙여 놓는다면 옷 입은 사람이 더위를 느껴서 옷을 벗어 배안 아무 곳에나 걸쳐둔다면 어떻게 됩니까?” 강철이 요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방금 말씀하신 것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다. 그렇게 되면 곤란합니다. 위성과 컴퓨터가 그런 상황까지는 체크할 수 없을 테니까요. 옷을 벗어 걸쳐둔 그곳에 그 옷 주인이 계속 머물고 있다라고 컴퓨터는 알려줄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윗옷 보다는 바지에 장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지도 벗을 수 있지 않습니까? 가령 운동할 때라든지, 샤워를 할 때에”
강철은 계속 허점을 지적했고 요원들은 다소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디스프리아호. 14시 10분전
디스프리아호 상갑판, 테러리스트 리더가 콘설스 선장 쪽으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선장은 그가 말해준 대로 지저분하게 자란 자신의 수염을 말끔히 면도했다.
“선장님, 보기가 환하고 좋습니다. 내가 당신을 보내는 이유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주시오. 첫째, 외부 세계에 핵폭탄이 틀림없이 폭파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하고, 둘째, 이 폭발을 막기 위해 140명을 석방하는데 있어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까지도 잘 설명해 주시오. 그리고 이왕 이면 부인까지 만나보고 돌아오시오. 이상이오.”
선장은 무표정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곧 앞쪽 바다 저 멀리서부터 작은 물체 하나가 서서히 이쪽으로 날아왔다. 소형 헬리콥터였다. 동체중앙에 적십자 마크가 선명히 보였다. 대한 적십자사 소속 헬기였다.
헬기 날개가 일으키는 폭풍 아래로 콘설스 선장이 우뚝 섰다.
그는 은발을 휘날리며 다섯줄 금띠를 소매에 두른 제복을 잘 차려입고 위엄 있게 서있었다. 노련한 선장 신분임을 한눈에 알아 볼수 있었다. 왼쪽 어깨밑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금빛 제모는 바이킹의 후예임을 자랑하는 고유 문장이 햇볕을 받아서 번쩍였다.
그는 넓따란 갑판 아래로 향해 헬리콥터에서 내려뜨린 케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브릿지 위 창을 통해 선장의 이 늠늠한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테러리스트 지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비친 선장의 모습이 태평양 함대를 지휘하는 제독의 모습으로 비추어 졌기 때문이다. 콘설스선장 또한 예비역 해군 제독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한국 해군. 광개토함
강철, 청와대 안보비서관, 국정원요원, 합참요원, 전자장비 전문요원 등을 실은 헬리콥터가 광개토함 후미갑판 헬기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강철은 안전벨트를 풀고 해군 구축함 광개토함 갑판 위에 첫발을 내디뎠다. 헬기의 날개 바람 폭풍이 강철의 머리카락을 수세미처럼 만들고 있었다. 이들의 함선방문 환영의 표시로 뱃고동이 짧게 두 번 울려 퍼졌다. 광개토함 함장이 갑판 위까지 손님들을 마중 나왔다.
“저희 광개토함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대령은 거수경례를 했다.
“감사합니다.” 청와대 비서관이 대답했다.
함장은 차례로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함장이 주변에 서있던 부하 한 명에게 명령했다.
“이봐, 이 손님들을 사관실로 모셔가게.”
“옛. 알겠습니다. 함장님.”
이때 강철이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때마침 갑판위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배 난간을 부여잡고 디스프리아호 쪽을 향해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는 한 여인이 강철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긴 금발 머리가 바닷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철은 그녀가 콘설스 선장 부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콘설스 선장부인 리사는 상갑판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었다. 멀리 바닷물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한 저 건너편에 남편의 배가 보이는듯도 했다.
‘남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이렇게 지척에 와 있다는 것을 그이는 알고나 있을까? 여보! 사랑해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때 그녀는 등뒤에 인기척을 느꼈다. 황급히 두 손으로 뺨의 눈물을 훔쳤다.
“부인,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강철이라고 합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톤이 낮은 저음이었다.
그는 훌륭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했다.
그녀는 자기에게 말을 건넨 주인공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적당히 흰머리가 섞인 동양인 남자가 자신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부인, 저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시간이 없습니다. 얼마 후면 남편 콘설스 선장이 이리로 오도록 되어있습니다. 우선 제 말부터 잘 들으십시오. 남편은 이곳에서 목적한 일을 마친 후에 다시 디스프리아호로 돌아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인께서는 절대로 남편을 돌려보내셔는 안됩니다. 물론 남편은 돌아가려 고집을 부릴 것입니다. 그러나 부인이 남편을 잘 설득하십시오. 만약 설득에 실패하면 부인은 두 번 다시 남편을 못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남자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했다.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앞의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해보려 노력했지만 입만 벌어진 채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서 그가 계속해 말했다.
“그리고 부인, 남편이 헬기에서 내리면 부인께서 제일 먼저 남편에게로 달려가세요. 그리고 가능한 주위 사람들과 접촉을 막아주십시오. 악수하는 이외의 인사는 모두 사양하세요. 다른 사람들과 남편이 서양식 인사로 포옹하는것 이것 절대로 안됩니다. 아무튼 외부인으로부터 접촉을 막아야 합니다. 이유는 남편이 인사로 스킨쉽 할 때 상대편이 남편 몸에 전자 장치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장치는 테러리스트를 순식간에 죽이기 위한 수단이 되긴 하지만 남편도 함께 죽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만 실례합니다 부인.”
빠르게 말을 마친 남자는 성큼성큼 저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그녀는 엄청난 경고에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광개토함. 통신실
그시각, 광개토함 통신실에 긴급 암호 전문이 날아들었다. 해군 본부에서 보낸 전문이었다. 그렇지만 발신처가 청와대로 되어있었다. 전래에 없는 일이었다. 즉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광개토함 함장에게 직접 내린 명령이란 뜻이었다.
통신사관은 암호전문을 들고 함장실로 달려갔다.
“함장님께서 직접 해독하시라는 단서가 붙은 전문입니다.”
“알았네. 놓고 가게.”
함장은 통신사관을 물러가게 한 후, 벽금고에서 암호 해독본을 꺼냈다.
함장은 숫자의 배열을 짚어가며 모음과 자음을 조립해 문장을 만들어 나갔다.
한 문장이 완성됐다.
/디스프리아 호를 정확히 조준하여, 포격준비하라……/
함장은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대통령 각하, 지금 무슨 명령을 하시는 겁니까? 저에게 핵폭탄을 향해…. 자살포격 하라구요?’ 함장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함장은 두방망이질 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계속해 다음 문장을 이어나갔다.

*

함장은 포대장인 소령을 불러 자기가 서있는 난간 쪽 가까이로 오게 손짓했다.
“포대장! 디스프리아호를 정확히 조준해라, 포탄은 127밀리로,” 함장은 훈련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말투로 명령했다.
이번에는 포대장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포대장은 함장의 명령을 떨리는 손으로 메모하기 시작했다.
“탄종은 철갑탄 1발, 반철갑탄 1발 합계 2발이야.”
“넷, 착탄 패턴을 어떻게 할까요?”
“그것이 문제야. 저격수가 저격 목표물을 향해 총을 쏘듯이 그렇게 쏠 수 있겠나?”
“함장님!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함장은 상체를 난간 쪽으로 비스듬히 기대며 양 미간을 좁혔다.
그는 디스프리아호 쪽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포대장에게 계속해 명령했다.
“반드시 그렇게 쏘아야 하네. 저격용 소총탄환을 쏘듯이 아주 정확히 브릿지만 날려버려야 한다. 저기 있는 디스프리아호 브릿지를 정조준 하라. 절대로 파편이 튀어도 안된다. 만약 포탄 파편이 갑판 위에 늘어놓은 핵 폭발물로 튀면 큰일이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나?”
포대장의 이마에 땀이 솟았지만 그의 등줄기에는 냉기가 엄습했다.
“넷, 함장님! 제 1탄, 제 2탄 모두 디스프리아호 브릿지 정 중앙을 관통시키겠습니다. 그러나…”
“그만, 그만하라. 더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다소령! 귀관은 명령대로만 하라, 알았나?”
“옛, 알겠습니다. 함장님.”
“그럼 즉시 준비하라.”
“옛.”
포대장은 부동자세를 취한 후 경례를 붙이고 포격 관제실로 내려갔다.

*

헬리콥터 동체 밑으로 내려트린 줄에 그네를 타듯이 불안하게 앉아 3마일의 거리를 실려온 콘설스 선장이 드디어 몸에 고정시킨 안전띠를 풀고 광개토함 갑판위에 내려섰다.
외부 손님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이번에도 역시 뱃고동소리가 2번 길게 울러 퍼졌다. 함장과 사관들이 경륜 높은 캡틴을 맞이하기 위해 갑판에 도열했다.
“한국 해군 함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함장이 정중히 노선장에게 말했다.
“환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콘설스 선장이오.”
이때 선장은 아내 리샤가 함장 뒷 편에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로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리샤가 먼저 남편에게로 달려와 품에 안겼다.
“여보!”
“여보!”
콘설스 선장은 가슴으로부터 아릿한 통증이 치밀었다.

콘설스와 리샤는 바람 부는 갑판 위에서 함교로 내려섰다. 두사람은 함 내에서 가장 큰 사관실로 안내되었다. 이미 사관실에 기다리고 있는 회담 참석자들을 함장이 콘설스 선장 부부에게 일일이 소개했다.
“여기 대통령 비서실 안보 비서관님, 그리고 이쪽은 같이 오신분들, 또 여기는 강철 선생님”
강철은 손을 내밀며 늙은 호주인 선장의 깊이패안 잿빛 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주잡은 그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다. 그도 강철의 눈을 잠시 동안 응시한 뒤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 사람은 계급이 소령입니다만, 꼭 이 회의에 참석시키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가 불렀습니다.”
함장이 마지막으로 UDT소령을 콘설스 선장에게 인사 시켰다.

콘설스 선장. 부인 리샤
리샤는 이제 조금 안심이 됐다. 아직까지는 남편과 ‘포옹 인사’를 나눈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양문화는 악수하는 것이 최고의 인사인 듯 했다. 조금 전에 서로 눈이 마주친 강철이라는 그사람도 안심했다 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까지 계속 남편 옆을 지켜야 할지는 의문이었다. 곧 회의가 시작될 터인데, 그전에 잠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남편에게로만 쏠리고 있었다.
그때 인사소개를 마친 함장이 말했다.
“여러분, 회의 시작 전에 우선 차라도 한잔 나누시지요.”
함장의 이 말이 끝나자 곧 수병들이 티와 커피를 담은 쟁반을 들여왔다.
이때 선장부인 리샤가 남편 콘설스의 팔을 이끌었다.
“여보, 저~ 머리가 좀 아파요. 잠시 밖에 좀 나가요.”
선장이 부인의 팔을 부축해 일어서며 여러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제 집사람이 뱃멀미를 하는가 봅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리샤는 바람 부는 갑판 위에서 남편의 넓은 가슴에 계속 달라붙었다.
남편은 집안일과 아이들에 대해 물었으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고했다. 리샤는 여기 오게 된 사정을 설명했다. 그녀는 강철이라는 사람이 말하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남편은 부하들과 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성품을 잘 알았다.
“저- 부탁이 있어요 여보,”
“나도 당신에게 부탁이 있는데”
“제가 먼저 말하겠어요.”
“아니 내가 먼저 말하리다. 지금여기 이런곳은 여자가 있을 곳이 아니오.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요. 집에서 우리 아이들 잘 보살펴요. 나는 사건이 해결되면 곧 돌아갈 테니, 날 믿어요. 여보.”
“아니에요, 그럴 순 없어요. 지금 저와 함께 집으로가요.”
“그건 억지요. 난 배로 돌아가야 해요. 왜 가야 하는지는 당신도 잘 알지 않소?"
“아니, 전 몰라요, 안돼요.” 리샤는 남편의 팔에 매달렸다.
관리자  2017/09/02 11:38:56 [답글] 수정 삭제
제 52장은 내용이 많아 두번으로 분리하여 두번째 것은 에필로그와 한꺼번에 개제합니다.
이런 방대한 작품을 쓰시고 연재를 허락하신 김건 작가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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