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8-16 조회수 : 317
Red to Blue - 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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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순안. 국제 공항

순안 국제공항은 원래 평양 수비를 위한 북한 공군 비행장이었다.
그러나 북한국적 고려항공과 러시아 민항 일류신 여객기 및 중국 항적기들이 번갈아 주 1회씩 특별한 손님들을 위해 이착륙을 허가 받고 있기 때문에 명목상 국제 공항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북한 고위층들은 이 공항을 통해 일본 전자제품, 스위스 시계, 향수, 가죽코트 등을 들여와 자리 보전을 위한 뇌물로 이용했다.
또한 구소련, 중국 고관들과 세력가들이 이공항을 주로 이용했고, 외교관들 역시 이 공항을 통해 북한으로 출 입국했다.
*
휴민트 신중섭은 중국어로 쓴 편지를 북한 평양에서 호주 시드니로 안전하게 보내야만 했다.
북한은 모든 국제 우편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꼭 검열한다.
엽서, 편지, 전보, 전화를 일제히 검열한다는 것은 매우 방대한 일이지만 그것을 실제 실행하고 있었다.
신중섭이 가지고 있던 국제우편 편지봉투와 우표는 북한으로 들어올 때 미리 중국 국경에서 구입해 온 것들 이다.
신중섭은 순안 국제공항 라운지로 들어섰다.
들어설 때 공안원에게 복제된 조선노동당 고위 당원증을 내 밀어 보였다.
고급 당원임을 확인한 근무자들이 그를 향해 경례를 올려 붙였다.
공항 라운지에는 중국 관리들이 중국에서 올 때나 평양을 떠나갈 때에 미처 부치지 못한 국제 우편물을 발송하기 위한 특별 우편포스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리 북한 비밀 경찰이라 하더라도 평양주재 외교관들의 우편물만큼은 그들도 손을 대지 못했다.
신중섭은 휴대한 편지를 그 포스트에 집어 넣었다.

중국어로 쓰여진 편지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호주 시드니에 계신 형님께. 북경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수출용품을 확인했고, 선적일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박은 그리스 화물선이어서 운임을 깎을 수 없었습니다. 선적 서류를 다음 주소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베큐베이터(주: 대용량 곡물하역 기계)의 수송은 중국화물선이 맡았다.
호주시드니 항에 정박중인 중국 화물선은 급히 북한으로 보내질 베큐베이터가 5대나 실려 있었다.
유엔의 경재 제제에 따라 북한이 직접 구입하지 못해 중국인 상사를 통해 오퍼 낸 것을 이 배가 싣고 있었던 것이다.

*
시드니의 범법자 골목
강철에 의해 호주 연방 경찰에 체포된 장갑수는 명성있는 변호사를 고용해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풀려났다.
장갑수는 전에도 한번 와 본적이 있는 시드니의 거리 32번가로 들어 섰다.
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고층빌딩과 상가 건물들이 적어지고 포르노 영화관과 어덜트 숍, 미니스커트 입은 정체 모를 여자들이 어정거리며 마약을 팔고 있는 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한 남자가 장갑수에게 다가섰다.
“예쁜 여자에게 관심 있어요?” 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 말을 되받아 장갑수가 말했다.
“나는 그런 것은 필요 없고, 신분증명서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는데……”

“어떤 증명서요?” 신분증 복사쯤이야 하는식으로 되물었다.
“운전 면허증이나 여권 같은 것.”
장갑수 역시 이곳 사정을 훤히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술술 자연스럽게 말했다.

"어디에 쓸려고?"
"배를 타야겠는데... 중국배."
"그럼 가짜여권이 필요하다는 그 말씀이군."

“돈 있어요? 지금?”
“얼마 정도?”
“6000불? 아마 6000에서 8000달러쯤.”
장갑수는 주머니를 툭툭쳐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따라와요 빨리.”
그는 등을 돌리고 앞장서 빠른 걸음으로 장갑수를 안내했다.
장갑수는 뛰다시피 그 남자를 뒤따랐다.
그들은 ‘전 상품 할인’ ‘가게 정리’ 등의 글씨가 나붙은 가게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복잡한 점포 안을 통과하여 뒷문으로 빠져 나오니 또다시 작은 골목이 나타났다. 지저분한 뒷골목이었다.
장갑수는 봉변 같은 것을 당한 후 돈을 빼앗길 것을 염려해서 미리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서 가던 사내가 낡은 창고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창고 안 한켠에 어둡고 작은 공간이 있었다. 그 곳 테이블, 그 테이블 위에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각종 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탁자는 위에 구멍을 뚫어 형광등불을 장치한 제도용 탁자였다.

그앞에 머리가 번들거리는 대머리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를 안내한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 멋진 여권을 갖고 싶다는 거야.”
“어느 나라 여권?”
대머리는 얼굴도 들지 않고 말했다.

대머리는 손짓으로 형광등 불빛 밑을 가르쳤다. 거기에는 이런 글씨들이 쓰여 있었다.
<미국, 호주여권 $8000, 한국여권 $8000, 중국여권 $6000, 베트남 여권 $5500>
그런데 미국, 호주 여권과 한국 여권에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미국 여권이나 한국 여권은 개인 DNA 생체 인식표시 의무화 이후부터는 위조가 불가 하다라는 그런 뜻인 것 같았다.

장갑수는 중국 여권이라 쓰여진 글씨 위에 손가락을 짚었다. 대머리는 돈을 먼저 내놓으라고 손을 내 밀었다. 내밀어진 그 손바닥 위에 100달러짜리 지폐 60장을 올려놓았다.
이곳은 말이 필요 없는 그런 곳인 것 같았다.
대머리의 손짓에 따라 곧 장갑수는 여권 사진을 찍기 위해 폴라로이드 카메라 앞에 앉았다.
사진을 확보한 대머리는 제도용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곧 여권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장갑수는 기다리는 동안 옆방에서 성인 비디오를 두편이나 보았다.
어느덧 시간이흘러 비디오가 끝날 때쯤 대머리가 건너오라고 문을 두르렸다.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영락없는 진짜 여권이었다.
장갑수는 만족한 웃음을 띠었다. 그는 황급히 그 골목을 빠져 나왔다.


중국인으로 가장한 북한인 한 사람이 커다란 가방을 손에 들고 중국 화물선으로 접근해 왔다.
선장실로 안내된 그는 여권과 선원증을 제시한 후, 선장이 건네준 승무원 명부에 장갑수라고 그의 이름을 써 넣었다.
장갑수는 이제 떳떳한 한 사람의 갑판원이 되었다.
그런 직후 호주 출입국 관리들이 배 위로 올라 승무원 명부와 선장실에 보관된 여권을 대조해보고는 출항 허가서에 스탬프를 꽝 찍었다.
황혼이 들 무렵 중국 화물선 천진호는 드디어 밧줄을 풀고 남태평양을 건너 북한 어느 항구를 향해 항로를 잡았다.
갑판원 장갑수의 커다란 가방속에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총포사에서 도난당한 독일 헤클러사 제품 초 정밀 저격용 라이플 ‘PSG-1’이 숨겨져 있었다.
이 총은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그런 물건이었다.
이 총의 표적이 될 인물은 이 시간 평양에서 호화로운 저녁 식사를 위해 기름진 얼굴을 번쩍이며 식탁 앞에 앉아 있을 터이다.


북한. 남포항.
수평선 멀리로부터 지기 시작한 저녁 노을이 천진호의 갑판을 붉게 물들였다.
중국 화물선 천진호 가 드디어 남포항 밖 정박지에 닻을 내렸다.
닻에 걸린 쇠사슬의 요란한 소리가 멎자, 배안이 다시 조용해 졌다.
그 정적을 조금씩 깨드리는 것은 기관실 발전기가 내는 소리와 갑판위로 퍼져 나가는 증기 소리뿐이었다.
항구 방파제 위로는 긴 철조망이 끝없이 처져 있었지만 배 접안 시설쪽만큼은 빠끔히 뚤려져 있었다.
그옛날 어느 시절 이 항구에서 목숨을 걸고 작은 배를 훔쳐 자유를 위해 남쪽으로 탈출을 감행했던 그런 시절을 회상하니 장갑수는 감개가 무량했다.

북한 항만 관리소는 다음날 아침에 접안을 허가했다.

남포항 검역 관리들이 천진호에 올랐지만 그들은 선장으로부터 고급 스카치 위스키를 한 병씩 선물로 받고 신속히 걷치례 검역을 끝냈다.
관리들이 똑딱선으로 옮겨 타고 떠나가는 것을 확인한 장갑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디어 천진호가 유도선을 따라 천천히 방파제 사이를 빠져 나와 부두의 지정된 하역 위치로 다가갔다.
곧 승무원들의 상륙허가도 떨어졌다.
장갑수는 태평양을 항해하는 긴시간 동안 중국인 목공 담당 선원과 친해져 있었다. 장갑수는 이들 10여명의 중국 선원들과 함께 무리지어 트랩을 내려 부두의 게이트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분해된 라이플 소총이 숨겨진 큰 가방이 들려있었다.
따뜻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장갑수는 양피코트를 껴 입고, 발렌타인 위스키 두병까지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항만 구역은 사람 키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일반인으로부터 잘 분리되어 있었다. 출입구는 항시 열려 있으나, 그곳을 통과하는 차량이나 사람들은 무장 군인의 조사를 받도록 되어있었다.
차량 통행출입구 훨씬 안쪽에 외국 선원들을 위한 세관 게이트가 따로 있었고 이들을 위해 별도의 출입문이 있었다.
중국 화물선에서 내린 일행들은 이 게이트를 통과해야 했다.
먼저 여권 검사석에서 입국 스탬프를 찍어 주는 출입국 관리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었다.
입국 심사와 세관심사대가 횡으로 기다랗게 있었고 담당관들이 한명씩 그 심사대에 붙어 있었다.
장갑수는 여권 심사대 위에 발렌타인 위스키 두병이 든 백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중국 여권을 탁하고 크게 소리나도록 집어던졌다.
세상 살이가 모두 귀찮은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을 힐끗 처다본 노련한 관리가 백을 열어본 후 지퍼를 다시 닫았다.
장갑수는 한국말을 못하는 중국선원처럼 손짓으로 너에게 줄 선물이라는 표현을 했다.
여권검사관리는 장갑수가 건네준 백을 슬그머니 자기 발밑으로 내려놓고 여권에 꽝, 하고 입국 스탬프를 찍어 되돌려 주었다.
이번에는 세관 카운터로 다가섰다.
장갑수는 가방 바닥에 총이 숨겨진 커다란 가방을 세관원 앞에 당당히내려 놓았다. 세관원은 가방 안을 뒤졌으나 서양 담배 몇갑과 냄새나는 헌옷 가지들이 가방 가득히 담겨있을 뿐이었다.
세관원의 눈길이 곧 장갑수의 두툼한 옷 차림을 수상쩍어했다.
손짓으로 윗옷을 벗어보란 시늉을 한다.
장갑수는 몹시 귀찮다는듯 계속 찌푸린 얼굴로 최고급 양피 코트를 벗어서 책상위로 내 팽개쳤다.
그러자 양팔을 벌리라는 시늉을 했다.
그는 팔을 벌렸다.
세관원의 손길이 그의 온 몸을 더듬었다.
세관원은 무엇이라도 찾아내려는 성실한 모습으로 장갑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장갑수는 그제서야 세관원의 뜻을 알아챈 듯이 책상위에 벗어 던진 모피 코트를 가리키며 ‘먹고 떨어지라’ 손짓 했다.
세관원의 태도는 금방 달라젔다.
그는 친근감이 담긴 미소를 띠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관원 일년치 급료를 몽땅 털어도 이런 호주산 고급 모피코트는 사지 못할 것이다.
그 세관원은 횡재했다고 입째지는 표정을 간신이 참으면서 모피코트를 재빨리 테이블 밑으로 숨겼다.
그제야 장갑수는 입국수속을 끝냈다.
그는 햇살 비치는 고향 남포 시가지를 감개무량 해 걸었다.
신선한 고향의 공기를 가슴 가득 채우며….

가방을 둘러멘 장갑수의 손에는 한달전에 신중섭이 평양 순안 공항에서 붙힌 중국어 편지가 들려져 있었다.
편지에 쓰여진 주소지는 아파트였다.
장갑수는 그곳을 찿아야 했다.
장갑수가 나즈막한 아파트앞 길을 서성이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였다.
“레드 투 블루”
장갑수도 그 소리를 향해 응답했다.
“붉은 산을 푸르게(山林綠化)”
그들은 이런 절차를 거친후 합류했다.
“수고했어. 여기까지 오는동안 별일 없었어?”
신중섭이 그에게 물었다.
“없었어.”
“자. 빨리 올라가자.”
그들은 아파트 위층으로 올라갔다.
신중섭이 그에게 말했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자네 어머니와 동생 가족들은 지금 남포 정치범 수용소에 그대로 계시네. 형님은 반역자로 몰려 평양 수용소에 계시고……”
장갑수는 서늘한 눈빛으로 지긋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자아- 여기 이 가방을 받아, 가방 바닥을 띁어보면 자네가 좋아할 물건과 망원조준경이 있을거야.”

신중섭은 그날 저녁 다섯명의 동지들을 장갑수에게 인사 시켰다. 이렇게 하여 장갑수는 북한에 암약중인 ‘비밀 결사’와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43

대한민국. 국가 정보원
국가조직에 몸담아 충성을 맹세한 이 들은 정보원 또는 스파이라는 말을 절대로 입에 올리지않는다.
그들은 항상 자신을 ‘오피서’라 했고 자신을 위해 일 하는 외국인 협력자들을 ‘에이전트’라 불렀다.

국정원장은 집무실 옆 부속실로 강철을 안내했다. 거기에는 안락한 가죽 쇼파와 티테이블, 간이침대, 기타 집기들이 잘 비치되어 있었다. 또한 각종 위스키와 브랜디, 포도주, 커피, 물 같은 것을 거리낌 없이 마실 수 있도록 했다. 홈빠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강철은 홍차를 택했고, 국정원장은 커피를 손수 만들어 마셨다. 벽에는 루부르 박물관에나 있음직한 유명한 그림 한 폭도 걸려 있었다. 그림이 걸린 벽 대각선 쪽 유리창 밖으로 녹음 우거진 숲이 고즈넉이 내려다 보였다.

“중요한 의론이란 게 무엇입니까? 강선생님.”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으며 국정원장이 말했다.
“실은,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미국 에이전트에게 무슨 조치를 강구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예기치 못한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국정원장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상당히 스트레스가 높아졌습니다. 이번에 입수한 그 문서 때문에…… 그 에이전트는 자신의 잔꾀가 곧 탄로날 것이라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반역행위라는 자괴감도 한몫을 할 겁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런데, 그 에이전트를 중립국인 제 3국으로 빼돌릴 방안를 연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음 …글쎄요, 내생각은 그녀가 지금 사라져 버린다면 CIA가 철저히 뒷조사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 얼마 동안은 그자리에서 일을 하는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이건 우리 쪽 욕심이긴 합니다만.”
“아닙니다. 저는 정반대라 생각합니다. 그 에이전트가 어느날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해도 미국측은 무슨 정보가 얼마나 어디로 어떻게 흘러나갔는지를 밝혀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물쭈물 하다 체포되면 반드시 자백을 하게 됩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이것은 한국과 미국간에 국제적인 문제가 됩니다. 일이 그 지경이 되면 어쪄시려고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최악일 경우는…. 강선생 뜻은 잘 알겠습니다. 과거에 미국도 우리대통령 집무실을 도청한 사실이 있었지만 그들은 증거를 대라며 오리발을 내밀었어요. 하지만 이건 거기에 비할 바가 못 되지요. 엄연히 체포된 범인이 있으니깐…… 아무튼 방법을 조속히 연구하겠습니다.”


북한. 평양
북조선의 성역 주석궁,
주석궁의 깊숙한 방에서 김정은은 그의 입에 맞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격식을 차린다거나 식사예절 따위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자리였다.
그의 옆에는 불필요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여비서 한명과 지금 막 호출을 받아 달려온 최부일 인민 보안상뿐 이었다.
김정은은 입에 묻은 음식물을 냅킨으로 닦으며 최부일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이번에 태평양으로 ICBM 발사한 것올 어떻게 생각하오?”
“수령각하, 용단을 아주 잘 내리신 겁니다. 미제국 주의자들의 간담이 서늘해 졌을 것입니다.”
최부일은 군을 장악했을 뿐만이 아니라 당 조직까지도 지배하는 정치국원 이었다.
그는 계속 김정은이 좋아할 말만 골라 했다.
“잘 하셨습니다. 그동안 저들은 우리 해외 교역 수단을 막았고, 우리의 자본 및 외화 이동을 차단했습니다. 거기다 한술 더 떠 식량을 무기화 하는 파렴치한 행동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후회할 날만 남았습니다. 수령각하”

김정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또다시 질문했다.
“저들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뭐요?”
“수령 각하, 저들은 회담에 복귀하라고 할 것입니다. 회담의 중요 의제는 당연히 우리 북조선 핵무기 일 것 입니다. 즉 저들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핵을 포기 하라는 조건을 제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조건을 내세워야 합니다. 첫째로, 어느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느냐가 문제입니다. 둘째로, 그 합의 사항을 우리가 꼭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시할 조건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시오.”
“예, 첫째, 유엔이 지금 취하고 있는 경제 제제 조치의 해제와 이와 비슷한 수준의 기타 동결 조치 해제가 급선무 입니다. 둘째로,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일정량의 무상원조를 요구하는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셋째, 일본으로부터 과거 36년간 우리동포를 약탈해 간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야 합니다. 넷째로, 남한에 추후 10년간 쌀과 전기, 기름을 공급하라는 약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정도의 요구는 별 무리 없이 받아 들여질 것입니다. 우선은 이정도로 해놓고 저들의 태도를 봐가면서 우리도 천천히 무슨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령각하.”
*

호주 시드니. 브론테 비치
브론테 비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망망한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 옛날부터 부호들은 조상의 묘비를 여기에 세웠다. 시드니 부자들의 공원 묘지는 브론테 비치에 있었다.

강철은 여늬 성묘객처럼 카네이션 꽃 다발을 손에 들고 브론테 묘지공원 길을 걷고 있었다.
시원한 바다 바람이 철의 머리칼을 휘날렸다.
묘지가 끝나는 지점 저만치에 바바리 코트 깃을 올린 한 여인이 태평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잔디 언덕에 앉아 있었다.
바다의 잔물결이 한낮의 햇살을 받아 고기 비늘처럼 반짝였다.
여자는 주변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응웬이었다.
“안녕.”
철이 부드럽게 웃으며 응웬에게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녀 역시 희미한 웃음으로 강철의 손을 마주잡았다.
철은 손에 들린 꽃다발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들은 한참 동안 어깨를 맞대고 서로를 의지한채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강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울 국정원장에게 잘 부탁 해 두었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크다고 하더군. 지금당장 내가 당신을 데리고 스위스엘 간다면 모든 것이 탄로가 난다는 거야. 만일 그런 사태가 생기면 미국은 주요한 정보가 새어 나갔으니깐 한국과의 회담 같은걸 집어 치우려 할지도 모르고…… 이쪽 계획도 아직은 마땅치 않고 그렇다는 거야.”
응웬은 약간씩 몸을 떨었다.
바다 바람때문인지 CIA공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몸을 떨고 있었다.
강철은 또 다시 그녀에 대한 애처로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런 판단이 정확할지 몰라요.”
그녀가 계속해 말했다.
“지금 미국은, CIA는 잔뜩 긴장하고 있어요. 북한이 ICBM을 쏜 이후로 전쟁을 시작해야 할지를…. 지금 저울질 하고 있을 거에요. 아무래도 강경파들의 태도가 심상치가 않아요. 제가 그들의 전화 통화를 옅듣다 보면 다 알아요.”
“대통령은?” 강철이 미국 대통령에 대해 물었다.
“대통령 역시 물러설 곳이 없어요. 문제는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딸렸다고 봐요.”
“북한 역시 미국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일 거야. 그들이 미사일을 쏜 것은 일종의 시위야. 미국측에 압력을 가해 보겠다라는 그런 생각일거야.”
“거기까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가물가물 허공을 맴돌았다.

“응웬, 자아 힘을 내요. 당신옆에 내가 있잖아. 우리함께 스위스로 가요. 한국의 높은 사람이 우리를 돕겠다고 약속을 해 주었어요.”
그녀는 조금은 희망에 빛나는 눈동자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철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강철과 응웬이 찾아 들어간 언덕 위 작은 호텔은 바다의 평화로움이 넘쳐났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방 침대 또한 정갈스럽기가 그지 없었다.
실내는 온도와 습도를 자동 조절해 주는 시설까지도 잘 작동되어 아늑하기가 그지없는 방에 들어서니 두사람은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두 연인은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호흡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응웬은 얼굴을 철의 가슴에 깊숙히 묻었다. 응웬의 몸은 뜨거웠다. 둘은 몸만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북한 남포. 교화 수용소
10월 하순인데도 초겨울의 바닷 바람이 매섭게 불어닥쳤다. 이 추운날 남포 교화 수용소 앞에 사람 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아버지 또는 형 동생을 한번만이라도 만나 보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교화 수용소 앞까지 왔다. 이들 아버지나 형제들은 먹고 살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소규모 밀수를 하다가 붙잡힌 사람들이거나 아예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 갔다가 잡혀온 사람들이었다.

“동지,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야. 빨리 여기를 떠나야 해”
신중섭이 장갑수에게 말했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한번 만이라도 뵈었으면 해서” 장갑수가 비통한 얼굴로 신중섭에게 대답했다.
장갑수는 이것이 영원히 마지막일거라 생각했다.
“자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빨리 여기를 떠나야 해, 위험해, 그래야 거사를 준비하지”
신중섭은 장갑수를 계속 설득했다.


북한 평양. 미암동
김정은 별장

“어띠게 됬어?”
김정은 은 초조했다.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체포는 시간 문제입니다. 범인은 어떤 자이건 절대로 도망치지 못할 것입니다. 체포되면……”
“체포되면?”
“넷, 체포되면 범행에 협조한 자들을 한명도 남기지 않고 색출하여 자백 받도록 하겠습니다.”
“자백 받은 후에는?”
“그런후 사건이 있던 날밤, 병원 후문에서 일어난 피격 사건을 알고 있는 모든 자들을 집단 수용소로 보내 버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므로서 이번 사건은 영원히 묻힐 것 입니다.”
“만약에 말이야, 만약 이번 사건이 국외으로 누설 된다면?”
“그럴리가 없지만…… 사건의 진상이 만약 국외로 누설이 되었을 경우, 이것은 치욕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진상이 국내로도 퍼지게 될것이고 결국 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 들어나게 됨니다.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의 통치행위를 인민들이 불신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범행에 사용된 총이 무엇인지는 알아봤어?”
“총은 미국제품은 아닙니다. 아마도 제 3국에서 만든 초정밀 저격용 총일 것입니다. 또한 야간 조준장치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런것들은 국내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물건 들입니다. 따라서 비밀리 외국에서 들여온 것은 분명한데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들여 왔는지? 국내에 협력자는 있는지? 이 같은 것을 지금 조사하는 중 입니다.”
“총이 미국 제품이 아니라면 말이야, 제 3세계의 정부가 이번 폭거에 뒤를 봐주지는 않았을까? 그쪽을 한번 생각해 봤어?”
“예, 제 3세계의 정부가 관여 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다만 중앙당에 원한을 가진 해외 망명자가 있는지를 조사해 보고 있지만 그쪽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 망명자?”
“그렇습니다. 과거에 김정일 수령 각하의 하늘 같은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장엽, 태영호 같은 놈들처럼 조국을 배반한 쓰래기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류에 대해서도 이미 조사를 시켰습니다.”
“알았어. 공식발표는 언제쯤 할거야?”
“넷, 2~3일 후에 할 계획입니다. ‘중앙당 박봉주 내각총리께서 집무도중에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켜 쓰러지셨다’ 라고 그래서 입원중이시라고……”
“그런 발표 후에는?”
“빌표후 시간이 적당히 흐른다음, 장례식 날짜를 잡아 북조선 최고 의료진이 온갖기술을 다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운명하셨다라 한 뒤에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평양 유공자 묘역으로 모시겠습니다.”
“암, 그렇지… 그렇게 차질 없이 잘 하시오 동무, 나는 동무만 믿겠소.”

그로부터 한달 후 외신들은 일제히 북한 /조선 중앙 통신/의 보도를 인용해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겸 내각총리인 박봉주의 갑작스런 심장 마비 사망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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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울산. 현대 조선소

현대 조선소의 거대한 도크에 크레인이 하늘 높이 뻗어 있었다. 크레인 탑 위에 선 사나이는 눈 아래에 펼쳐지는 배의 선체를 굽어 살피고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정말로 멋진 배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처음 이 배를 발주할 때부터 한국 현대 조선소를 선택한 것을 그는 행운으로 생각했다.
그만큼 한국의 조선 기술이 세계 일류였기 때문이다.
최신 장비를 갖춘 이 신형 화물선은 15만 톤 급이었다. 적당한 크기다. 근래 화물선의 생명은 빠른 기동력에 있다. 이것이 현재 세계조선업계의 추세다. 그래서 날씬한 몸매와 강력한 엔진이 필요했다.
볼수록 마음에 드는 배다. 선체 곳곳마다 개미 때처럼 사람들이 매달려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장 190미터, 양현간의 폭이 38미터, 브릿지는 갑판에서 4층 빌딩의 높이였다. 그리고 밑갑판에서 도크쪽으로 수직으로 뻗은 용골의 높이가 12미터였다. 30여개나 되는 선창은 왠만한 영화관 보다도 더 크다. 선루 바로 밑에 있는 엔진실은 출력 3만마력의 자동엔진 4대가 설치되어 있다.
지난 2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곳 현대 조선소의 분야별 기술자들이 심혈을 기우린, 거대한 모듈을 캔트리 크레인이 정해진 곳으로 옮기고 고정하여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선체를 고정시킨 로프나 체인, 전선과 동력 케이블이 작업원의 손에 의해 거두어 지고 나면 페인트 칠도 선명한 배의 모습이 곧 드러날 것이었다.
이 배를 살펴보고있는 사람은 영국상선 모스크 라인 사장 케이였다. 그는 바이킹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세계 조선업계의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진수식은 순수 한국식으로 진행이 됐다. 돼지의 큰 머리통이 거대한 그릇에 담긴체로 입을벌려 웃고 있다. 그 돼지머리는 웃고 있었지만 진수식은 매우 엄숙했다.
이 예식은 첫째로 선박의 안전한 항해와 사업성을 기원드리는데 있었다. 그리고 둘째로 이 선박을 건조하는데 종사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했다.
모스크 라인 케이 사장은 앞으로 이 배를 맏길 호주인선장 콘설스를 함께 데리고 이 의식에 참석했다. 그들은 난생 처음으로 쟁반에 담긴 돼지의 머리를 향해 엎드려 큰절을 했다.

정오가 되기 전에 수문이 열렸다. 한국 동해의 깊은 바닷물이 도크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호주인 선장은 선복 위로 올라오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감개무량해 하였다.
도크 주위를 메운채 이 순간을 지켜 보고 있던 1천여명의 현대 조선 작업원들이 침묵을 깨고 일제히 모자를 하늘로 날리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호주에서 온 축하객들도 이들과 함께 환호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디스프리아호는 거대한 선체를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스프리아호는 예인선에 이끌려 곧 동해 깊은 바다로 이동했다. 드디어 태평양 원해로 나설 준비를 마친 것이었다.

*

서울. 청와대

대통령은 국정원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천천히 읽은후 마지막장을 덮으며 말했다.
“어때요? 이 사건의 뒤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국정원장은 평생을 북한의 권력 구조에 대한 연구에 몸 바쳐 일해온 사람이다. 그는 입김을 씌어 흐려진 안경을 닦으며 대통령께 말했다.
“지난번 박봉주의 죽음이 김정은에게 큰 타격이 되었습니다. 박봉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습니다. 이러한 그가 쓰러졌으니 김정은은 커다란 것을 잃게 된 것입니다.”

“북한 권력 구조에 무슨 변화가 올 조짐은 없어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김정은이 워낙 비밀스러워서요.”
“……국정원장, 우리가 먼저 물밑 작업으로 저쪽 통일 선전부장을 한번 만나 보는 것이 어때요? 소원해진 남북관계 회복에 역점을 두고…….”
“곧 대선 정국이 될터인대 시기상 어떨까 해서, 움직이기 가 좀 그렇습니다.”
“지나친 생각은 말아요 따가운 눈총은 받겠지만….. 나에게도 복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의제도 없이 움직이면 국회에서는 북한과 뒷거래를 했다고 정치 공세를 할것이 분명 합니다 그래서 제생각은 우선 남북간회담 의제를 도출해낸 연후에 좀더 신중을 기했으면 합니다만”
“아무리 좋은 의제와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떠드는 입들은 막을수가 없어요. 말 많은 사람들은 과정이 졸속이라느니….. 성과가 어떻다느니 ……선거용 쇼라느니…. 별별 소리를 다 할겁니다.”
“그럼 언제쯤이 좋겠습니까?”
“10월 20일에 APEC(아세아태평양 경제협력)회의가 있어요. 늦어도 그 직전 까지는 무슨 발표가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촉박 해요.”

*

미국. 워싱턴 오벌 오피스

“이 숫자가…….”
대통령이 물었다.
“이 숫자가 지난해 북한이 수확한 곡물의 최종 집계 인가요?”
그는 책상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힐끗 쳐다 보았다.
방탄 유리를 끼운 집무실 창으로 넓은 잔디 밭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잔디 밭은 추위를 알리는 새하얀성애가 허옇게 덮여있었다. 그러나 중앙 난방 장치에 의해 가장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어서 인지 대통령은 와이셔츠 바람이었다.
벤슨과 샘박사는 대통령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우리의 모든 부서가 공동으로 협력해서 여러가지 정보를 종합한 마지막 결론의 숫자 입니다 그것이”
“오차 범위는 5% 내외 입니다.”
벤슨이 말했다.
“일년치 식량이 470만톤이라……흠.”
대통령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4달 후에는 굶주리겠군요.”
“새해 2월 이후쯤 이면 저들이 배 고파 허덕일 것 입니다. 가정집에서는 애완용 가축까지 잡아먹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쫒길겁니다 분명히”
“그래도 구호 요청 소식이 없소 아직?”
“중국이 저들에게 식량을 조금 나누어 주어서 아직은 꿈쩍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는 못 버틸것입니다. 또한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간에 물밑작업으로 무언가가 이루어진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도 대통령이 바뀌고 나면 대북관계가 분명히 새로워질 것입니다.”
“문제는 저들이 어느 싯점에서 우리를 공격하겠는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각하. 각하께서 지난 주에 결단을 하셨듯이……”

*


평양 미암동. 김정은 별장

평양시 미암동, 평양 중심가로부터 20여 km 떨어진 숲속 별장은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정막을 깨뜨릴뿐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주변의 울창한 숲은 인위적으로 경관을 조성한 듯했다.
자동차 도로가 시작되는 게이트에 경비원 그림자 조차도 보이지 않지만, 차량이나 사람이 접근만 하면 어느틈에 총을 든 경비병이 나타나 검문했다.
이 게이트를 통과하여 길게 뻗은 숲속 도로를 따라 가면 그 중간쯤에 산림을 가로지르는 샛강이 나오고 샛강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면 수입 품종인 리끼다 소나무 숲에 둘러쌓인 주석궁 전용 별장 건물이 보인다. 호화롭기 그지 없는 김정은의 전용 별장 외부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상 교통망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지하 전용 도로가 주석궁에서 이곳까지 건설되어 있었다.

별장 거실.
김정은이 양피 가죽을 씌운 소파에 깊숙히 몸을 묻고 벽난로를 향해 발을 뻗고 있다.
아직은 그리 춥지 않은 날씨임에도 난로 속은 적당한 크기로 짤려진 오크나무 장작이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깊고도 육중한 양피가죽 의자 팔걸이 옆에 놓인 테이블은 천년생 주목을 깍아서 만들었다. 이 고급 테이블 위에 절반쯤 마신 블랜디가 담긴 크리스탈 잔이 보인다.


당 중앙 군사위원 황병서는 그 크리스탈 잔을 옆 눈길로 힐끗 바라보았다.
김정은은 탁자위의 크리스탈 잔을 턱짓 하며 황병서에게 말했다.
“동무도 한잔 하겠소?”
“아닙니다 수령각하, 지금 근무중입니다.”
그는 서둘러 사양했다.
김정은은 고독을 느낄 때 마다 여자와 블랜디를 탐했다. 오늘도 이렇게 마시고 있었다. 수발을 들던 스물세살짜리 여자 아이는 벗어놓은 속옷도 미쳐 챙기지 못한채로 황급히 방에서 물러난 듯 했다.

황병서가 김정은의 음주를 제지했다.
“수령각하, 술을 많이 드시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주치의가 그렇게 당부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사가 말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괜한 말이야. 내가 동무를 이리로 부른 것은 언제쯤 미국을 공격할 것인가? 이것을 의논하기 위해서야”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십시요 각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황병서는 온몸의 신경세포가 아우성을 치고 가슴이 떨려왔지만 태연한 채 대답했다. 미국 본토를 공격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죽음을 의미했다.


대한 적십자사는 국제 적십자사를 표면에 내세워 미국으로부터 사들인 곡물 70만톤과 의약품, 시멘트등 수해복구용 건설 자재를 북한에 공급하기로했다. ‘이것은 홍수 피해를 당한 북한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취한 조치’’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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