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8-06 조회수 : 146
Red to Blue - 38~39


38

시드니. 킹스크로스 밤

시드니 환락가 킹스크로스의 밤 10시, 술꾼들이 바의 순회를 끝내고 이제는 클럽에 들러 슬슬 여자나 꼬셔보려 수작을 부릴 그럴시간이었다.
‘클럽 노블벵고’에 접한 전면 도로는 주차 금지구역이었다. 그러나 주차금지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빨간색 패라리 한대가 서 있었다.
값비싼 고급차 이지만 페라리의 문은 잠겨 있기는커녕 시동키 마저도 꽂아 둔 채로 였다.
아무리 멍청한 차도둑이라 할지라도 이차의 주인이 누군인지는 알고 있었고 이차에 함부로 손이라도 스치는 날에는 그 댓가가 어떤 것 이라는 것도 잘 알기 때문에 이 차는 늘 무사했다.

밤 11시, 차 주인이 운전석에 몸을 던져 넣고 시동키에 막 손을 가져가려는 순간 목덜미에 차가운 금속이 와 닿았다.
“움직이지마.”
“흥,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
“오까다! 아니 장갑수, 한번만 더 지껄이면 네놈 목숨은 끝장이야.”
다른 한 손이 잽싸게 장갑수의 왼쪽 겨드랑이 밑을 더듬었다.
자신의 권총 홀더에서 베레타를 뽑아가려는 것을 알았지만, 장갑수는 꼼짝도 못 했다. 이미 자기 본명을 알고 있다는 것에 그는 겁을 먹었다.
이건 강도가 목적이 아니란 판단이 선 때문이었다.

“자아~ 차를 천천히 출발시켜라. 시키는대로만 해, 아주 천천히, 사람들 주위를 끌만한 허튼 짓은 하지마 죽는다. 내말 알아들어?”
장갑수는 신중했다. 뒤쪽 남자가 심심풀이로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시에 따라 순순히 시가지를 빠져 나와 본다이 비치 쪽으로 차를 운전했다. 본다이 비치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왓슨스 베이로 빠지자 그의 머릿속은 어수선한 추리로 가득 찼다.
암흑가 세력 다툼이라면 인적이 없는 빠삐용 절벽 부근에서 이미 자기를 죽였어야 옳았다.
그런데 남자의 영어 목소리는 억양이 심했고 따라서 그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옛 해군 본부 건물이 저만치 보이는 숲 속 길 옆으로 차를 꺾으라는 사내의 명령을 받고 비포장 도로 샛 길로 차를 몰았다.
차에서 내릴 때 즈음 기회가 오겠지, 총구가 목덜미에서 떨어질 때 장갑수는 순식간에 상대방을 제압해버려야겠다라 마음 먹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산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호주 해군에서 여름 휴양소로 사용하다가 몇 해 동안을 방치해온 정부소유 건물이었다.
남자는 그에게 건물 뒤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자동차 바퀴 밑에 자갈이 깔려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차 세워, 핸드 브레이크 당겨, 시동 꺼” 명령이 단순 명확했다.
장갑수가 시동을 끄기 위해 머리를 앞으로 숙임에 따라 차가운 금속 총구도 함께 따라서 움직인다.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장갑수는 천천히 다시 몸을 세웠다. 그는 바짝 긴장을 했고 다음 순간에 번쩍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

장갑수는 차츰 의식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는 목과 뒷머리가 욱신거렸으나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힘 없이 고개를 다시 꺾었다.
주위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양팔과 다리가 모두 단단히 묶이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픔을 꾹 참고 고개를 흔들었다.
기억이 되살아남에 따라 온몸에 신경 세포의 촉각이 활발히 움직였다. 한 남자가 실내를 왔다 갔다 하는 발 소리를 장갑수는 듣고만 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발 소리는 가깝게 들렸고, 자신을 반듯하게 들어 눕히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누워서 쳐다보니 남자는 무서운 눈을 가진 동양인이었다. 아마 홍콩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서 본듯한 얼굴 이었다. 돌연 그가 장갑수의 구두를 벗기고 발목에 묶인 끈을 풀었다.
장갑수는 저려오는 다리를 살짝 움직여 보았다.
손이 묶인 상태에서 대항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함을 그는 잘 알았다.
양 손이 등 뒤로 묶여있기 때문에 옆으로 눕혀진 몸통이 활처럼 굽어져 있었다. 그 상태로 발목이 다시 묶이었다. 장갑수는 공포감에 떨고 있었으나, 허리띠가 풀리고 바지가 벗겨져 내리자 곤혹감이 느껴졌다.
이번엔 팬티마저 무릎아래로 벗겨져 내렸다. ‘맙소사’
곧 발가벗겨진 엉덩이 항문 부위에 무슨 기계인지 금속기계가 와 닿았다. 섬뜩했다.
섬뜩한 순간, 항문이 강제로 벌려지며 뭔가가 자신의 몸 안으로 쑥 들어왔다. 그는 곤혹에 비길 수 없는 심한 굴욕감을 느꼈지만 당하고 있을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앉혀 졌다. 훤히 들어난 앞쪽 사타구니를 향해 그 남자는 커다란 타월 한 장을 던져서 덮어 주었다.

항문 속으로 들어간 이물질이 장갑수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그는 눈을 들어 건너 편 탁자 앞에 앉아 있는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 앞 탁자 위에는 낡아 빠진 탁상시계와 몇 가지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시계는 벌써 밤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내 말 잘 들리나? 장갑수.” 남자의 큰 목소리가 실내의 텅빈 공간을 울렸다. 장갑수는 고통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갑수 고개를 들어라, 그리고 이것을 잘봐.”
남자는 책 상 위에 있는 물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양쪽 끝을 비스듬하게 만든 길이가 6센티미터쯤 되는 프라스틱 파이프 종류 였다.
남자가 그 파이프 중간홈을 비틀자 두 개로 나뉘어 떨어졌다. 그는 속이 빈 파이프 반대쪽을 장갑수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바로 탄약 약실이야. 너 같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몸 속에 마약을 숨길 때 이런걸 자주 사용하지, 안그래? 그렇지?”
장갑수는 아랫도리를 벗기운채로 의자에 앉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제서야 장갑수는 남자의 이런 황당한 행동에 의문이 좀 풀리는 듯 했다.
맞은편 남자는 곧 회색 진흙덩이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이건 신형 폭약이야. 아주 강력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지. 너도 잘 알겠지”
그는 회색 폭약 덩이를 떡 가래처럼 뭉쳐 플라스틱관 안으로 차곡차곡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뇌관이야.”
채우기를 마친 그가 작은 금속 끝에 바늘처럼 뾰족한 철선을 관 돌출부에 꽂아 넣으며 한 말이였다. 그런 다음, 분리된 두 쪽을 원래 상태로 다시 결합 시켰다.
남자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방금 결합 시킨 그 프라스틱 파이프를 들어 보이며 장갑수에게 말 했다.
“이렇게 조립을 하고 나니, 작은 폭탄이 되어버렸네. 이놈은 소형이지만 대단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을거야. 옛날에는 이 정도의 폭발력을 가지려면 TNT 5킬로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사나이의 매서운 눈초리가 장갑수를 찌를 듯이 바라보았다.

그의 냉랭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이것과 똑 같은 만든 폭탄이 지금 너의 항문 속에 삽입되어 있다. 앞으로 한 시간 후면 폭발을 할 거야.” 사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 장갑수의 눈길은 탁상 시계의 시간을 확인 했다. 자정이었다.

사내는 계속 말했다.
“내가 너 장갑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질문 에 대해 네가 솔직히 대답을 잘해 주면 항문 속의 폭탄을 제거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거짓을 말하면 너는 죽는다. 알겠나?”
장갑수의 창백해진 얼굴에서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남자는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은 결연한 빛을 띠어 자신이 한 말이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라는 것을 그 눈빛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왜지? 도대체 저놈이 누구지?’ 어디서 봤드라? 장갑수는 애써 태연 하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공포심을 노여움으로 누르려 했다.
“너 이 개새끼! 죽여 버릴꺼야!”
장갑수는 악을 쓰며 사내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사내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일어선 사내는 건전지가 삽입된 리모트 컨츄롤을 한 손에 들고 탁상 위에 놓인 시계를 손가락짓 해 가리켰다.
그리고 버튼을 한번 꾹 눌렀다. 순간 시계 분침 바늘이 휙 10분을 지나쳤다.
눈 깜빡 할 사이에 시계의 분침이 0시에서~ 0시 10분으로 이동 해 버렸다.
금방 장갑수의 기가 죽었다.

남자가 말했다.
“필요 없는 말을 한마디 할때마다 이 시계는 10분씩 더 빨리간다. 이제 네 항문 속의 폭탄은 50분 후면 터질거야.”
장갑수의 눈에서 공포의 빛이 서려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전혀 흥분하지 않았고 차분히 그냥 동화책장을 한 장 넘기듯이 장갑수의 목숨을 간단히 10분 앞당겨 버렸기 때문이다.
장갑수는 남자의 눈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았다. 더 없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장갑수는 그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마로부터 흘러내리는 비지땀이 눈을 적셨다.

장갑수는 남자에게 더듬더듬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요?”
남자가 턱을 당기며 아무 일도 아닌양 쉽게 말했다.
“흑인 마약 중독자 열차 추락 살인조작 사건부터 어디 설명 해 보시지.”
순간 장갑수의 눈이 갑자기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앗! 그렇다 이 자가 바로 강철 이 로구나 그래 맞다 바로 이 자다.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는데 그렇구나!!!’

장갑수의 심문은 45여분 만에 싱겁게 끝이 났다.
야간 특급열차 위장 추락 사고로 살해된 흑인에 대해 강철이 물었을 때 장갑수는 말을 더듬거렸으나 철이 단번에 리모트 컨츄롤을 집어 들자 질겁 하여 입을 열기 시작했다.
흑인 마약 중독자는 조직이 고용한 고용인에 불과한데 그 흑인이 조직을 너무 깊이 알았을 뿐만이 아니라 고스포드에 살고 있는 한 여자 청소부를 강간했다고 말 했다.
그리고 캔버라 대사관 마을에 있는 미국 외교관 공관을 침입해 일을 망친 책임을 자기에게 묻기에 할 수 없이 살해했노라고 재빨리 자백했다.

“고스포드의 한국인 여자 클리너를 강간한 건 두 놈이었잖아.”
강철이 그의 자백을 다시 한 번 확인 했다.
“맥이란 그 흑인 놈이 그 놈이 먼저 했어요. 그 놈은 동양 여자를, 젊은 동양 여자를 너무 좋아해요. 나는 아니예요.” 장갑수는 잔뜩 겁에 질려 마른 입술에 침까지 튀겼다.
“너는 어떻게 알고 고스포드까지 갔었지?”
“실은, 저는 맥을 따라 그냥갔습니다.”

강철의 눈이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나 질문은 계속됐다.
“캔버라엔?”
“저는 캔버라에 간 일은 없습니다. 맥이란 놈이 혼자서 미 대사관에 근무하는 그여자 집엘 들어갔습니다. 사실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장갑수는 깊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마에서 계속 땀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의 쉰 목소리가 더욱더 가늘게 떨렸다.
“처음 계획은 고스포드 당신 집을 뒤지러 갔었는데 집 앞에 경찰차가 있어 포기하고 당신이 고용한 여자 청소부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맥이 말한 것처럼 그 동양여자가 너무 예뻤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짓도 안했습니다. 맥이란 놈이 그 여잘 건드렸습니다. “
가냘픈 목소리로 마치 푸념하듯 말을 이어가던 장갑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그쳤다.

건너편에 앉아서 자기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사나이의 핏발선 두 눈이 갑자기 꿈틀 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날 네놈이 나를 죽이려 했었지?”
강철의 갈라진 목소리가 장갑수를 더욱 무섭게 추궁했다.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또다른 범죄가 들어날 것이 두려운 듯 그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날 새벽 네가 덤프트럭으로 내 자동차를 덥친 후 교통사고로 위장하려 했잖아 안그래? 엉?”
“아닙니다. 전, 저는 아닙니다. 보스가 다른 부하를 시킨 일입니다. 저는 다만 조직안에서 그런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마안~ 그만하면 됐다. 지금 조직이라고 말 했는데, 그 조직에 대해 묻겠다. 본거지는 어디이며, 사무실은 어디어디에 있느냐?”
“북한의 지시를 받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중국, 일본에 사무실이 있는데 더 자세한 것은 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보스가 러시아식 마피아 조직을 본떠서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강철은 생각했다.
마피아의 조직은 그 뿌리가 깊고 조직의 복잡성이 종횡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조직은 내부 상호관계 있어 자신들조차도 조직원 구성을 잘 알지 못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강철은 눈을 들어 시계를 바라보며 말 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가지만 더 묻겠다. 고스포드의 우리 집에 숨겨져 있던 위조달러와 봉수호에 실렸던 마약은 어떻게 된 거냐?”
장갑수의 튀어나올 듯한 두 눈이 째깍거리며 돌고 있는 시계 초침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마로부터 줄줄 흘러내린 구슬 같은 땀은 뺨을 타고 흘러서 턱을 거쳐 사타구니에 걸려 있는 타올 위로 뚝 뚝 떨어져 내렸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제빨리 대답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고스포드 집에 숨겨진 위조지폐는 환치기를 위해 평양으로부터 가져온 돈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가져온 자가, 선생님집 옛주인과 아는 사이 였다는데 그들은 다른 죄목으로 이미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그 돈을 찾으려 선생님댁에 간 것 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봉수호로 운반된 마약은 킹스크로스 시장에 모두 내다 팔았습니다. 나머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저는 중간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리던 그가 드디어 졸도 직전까지 왔다.
탁상 위에 놓인 시계는 쉬지 않고 움직여 드디어 새벽 1시 2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2분 후면 장갑수의 항문 깊숙한 곳에서 둔탁한 폭발음이 들릴 것이었다.

드디어 강철 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살려달라는 간절한 애원의 눈빛이 강철에게 매달렸다.
강철은 결심이 선듯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철은 장갑수의 묶인 다리 한쪽을 풀어 내고 다리를 치켜든 후 항문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폭탄을 빼내 익숙한 솜씨로 뇌관 장치를 분리했다. 강철은 어느 틈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런후 강철이 서둘러 탁자 위에 놓인 모든 기구들을 가방 속에 쓸어 담았다.
철은 옛 해군 본부 건물을 뒤로 하고 돌아 나오면서 모발폰을 꺼내 익숙한 손놀림으로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곧 전화기 저쪽으로 줄기차게 발신음이 가고 있었지만, 저쪽 전화기의 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전화가 음성 녹음박스로 자동 연결 되었다. 할 수 없이 강철은 빠른 말로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나는 제임스 강 이라는 사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이 찾고 있는 야간 특급열차 사고위장 살해 사건의 범인을 잡았습니다. 그는 지금 왓슨스 베이 옛 해군 휴양소 건물 안에 감금 되어 있으니 빨리 가서 체포하기 바랍니다. 또한 그는 이스트우드에서 행방불명 된 한국인 송씨 사건에도 깊숙히 관련된 인물인듯하니 그것도 같이 조사 하기 바랍니다. 그럼.”
강철은 몇일전 송씨 아파트에서 받은 /알버트 머쉰, 연방수사관/ 이란 명함을 전등에 비춰보면서 전화 했다.






39

시드니의 북한 공작원

그는 지난날 탈북자로 위장하여 한국을 거쳐서 호주 시드니에 안착했다. 그는 북한으로부터 비밀 임무를띠고 있었다. 북한에서의 생활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러니 호주에서의 생활도 역시 북한의 지령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여야 할 것 이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그의 생활은 변하기 시작했다.
햇살이 눈부신 본다이 해변, 시원한 팜츄리 나무 그늘에 앉아 비키니를 입은 자유 분방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북한이 얼마나 허구에 젖은 사회라는 것을 그자신이 스스로 느꼈다.
그는 북한 인민의 자유를 위하여, 배고품으로부터 해방을 위하여 자기가 알고 있는 위조지폐 기술과 마약으로 그쪽 세상을 한번 뒤바꿔 놓기로 작정 하고 웅대한 계획을 꿈꾸었다.
계획은 구체적으로 여러단계로 나뉘어 철저히 설계 되었으나 구멍이 생겼다. 마약을 공급하던 공작선 봉수호 나포와 함께 조직원들이 체포 됐고 그가 숨기고 있던 위조 지폐를 찿으러 갔다가 강철 이라는 복병까지 만났다.
그의 조직은 이제 부득이 강철을 제거해야 할 부담까지 안게 되었다.


시드니. 한국 총영사관

시드니 엘리자베스 스트리트 한국 총영사관 정보담당 영사는 호주정보국 한국담당 과장의 방문을 받았다. 연방경찰도 동행하여 합석 했다.
총영사관 정보담당 영사는 국정원소속이지만, 그의 공식적인 직책은 어디까지나 한국 외교부소속 외교관 이었다. 세사람의 담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잘 진행되었다.
정보담당 영사가 호주측에 말했다.
“여기 이 자료는 최근에 조사된 북한의 동정 입니다. 봉수호에 대한 평양측 회의내용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분량이 약간 많지요?”
“매번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측이 한국을 도울일은 없습니까?”
“예, 그럼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십시요, 가능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예, 현제 시드니에 살고 있는 한국 출신 강철 제임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라면 우리 한국 정부가 신원을 보장 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 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 잘 알겠습니다. 우리 연방 경찰에서도 이미 그 사람에 대해 일련의 보호 조치를 강구하고 있습니다.”
동행한 연방경찰이 대답했다.




북한 평양. 같은날 밤

평양 모란봉구역, 대동강변에 밀집한 고급관료들의 주거지역인 이곳에 사복 차림의 인민무력부 군관 한명이 술에 취한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승용차를 배당 받을 만한 계급까지 진급을 못해 밤 늦은 시각에는 공용차를 이용 하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운전사가 말썽을 부렸다.
그러나 한번쯤 걷는 것도 좋을 듯 했다. 전용 크럽에서 동료들과 기분좋게 한잔을 즐긴뒤 였고 무엇보다 상쾌한 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가 도로 건너편에 서성이는 두사람을 미쳐 알아 채지 못했던 것은 그의 얼큰한 취기와 달 밝은 밤 분위기에 빠진 그의 기분 때문일 것 이었다.
두사람은 클럽 입구를 감시하고 있다가 그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서로 고개를 끄덕여 신호 했다.
보름달 빛이 휘황한 저녁이라고는 하지만 평양의 거리는 인기척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인민 무력부 요원은 큰 길을 벗어나 집으로 가는 지름길인 공원 오솔길로 접어 들었다. 오솔길은 여름내 자란 수목들로 무성했다.
가로등이 없는 숲길은 어두웠다.
이시간쯤 이 길을 걷기는 이날 밤이 처음이었다.
길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뒤를 돌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걸음을 빨리 했다
뒤 쪽에서 발자국 소리 가 또 들렸다.
그가 다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의 뒤통수로 몽둥이가 날아 들었다.
그는 그자리에 쓰러졌다.
의식을 되 찾았을때는 새벽이슬이 내릴 때쯤 이였다.
숲속은 어둡고도 칙칙했다.
주머니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지갑, 돈, 열쇄, 배급표, 그리고 신분증까지 빼았겼다.
고급 관료 주거지역 가까운 곳에서 전례가 없는 대담 무쌍한 강도 행각이었다.
평양 인민 보안부(주: 경찰)과 인민 무력부(주: 국방부)는비상이 걸렸다. 평양 인민 보안부장(주: 경찰서 장)은 죽을 상이 되었다. 불과 얼마전에도 중앙당 군사위 박봉주가 피습 사망한 사건의 해결 기미도 보이기 전에 또다시 터진 대형 사고였다. 곧 수사에 착수했지만 역시 범인은 잡을 수가 없었다.
그 2인조 범인들은 이미 열차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역시 만만한 평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 서울. 청와대

대통령은 집무실 옆에 딸린 소회의실로 관계장관을 불러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회의 주제는 호주에서 강철이 보낸 2번째 문서였다. 회의는 시종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국정원에서는 내년 봄 북한에 닥칠 기근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몇가지의 가능성을 우선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국정원장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예측했던 바와 같이 북한의 내분이 극단적인 상황에 까지는 이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문제는 저들이 핵을 보유 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이제 당당히 미국과 직접 대화를 시도 하려 할 것 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옆자리에서 통일부 장관이 말을 거들었다.
“인민 무력부와 인민 보안부가 치안 유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북한 인민들의 민심은 점점 더 흉흉해 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정부가 미국에 양곡 70만톤 오퍼를 냈으나 아직도 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척 슬쩍 한발 뒤로 물러나 있어 보는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니, 그건또 무슨 소리요?”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미국 역시 우리만큼, 어쩌면 우리 이상으로 북한 실정을 꽤 뚫고 있을 것 입니다. 미국이 식량을 가지고 만약 북한에 장난을 친다면 아마도 북한은 죽기 살기로 미국에 덤벼 들 것 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슬쩍 한발 뒤로 물러 나는것이 어쩌면 사태 해결의 한 방법일수도 있지 않나 하는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70만톤의 곡식을 팔아 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국에 매달리지 말고 기다려 보자는 그런 뜻이요?”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 각하, 저희는 과거 정부때도 10여년동안 우리가 북한이 어려울때마다 쌀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고마움의 표시보다는 공격적인 태도로 보답해 왔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은 번번히 자기들 이익만큼은 꼭 챙겼습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북한도 어떤 깨달음이 있어야 할것이고 미국 역시 반사 이익만 누리 겠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가 조치 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듯 계속해 말했다.
“여지껏 북한의 행태를 보면 저들은 참을성이 없어요, 특히 식량문제는 민감한 문젭니다. 저들이 굴욕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유연한 자세가 필요한데, 미국이 과연 그렇게 할수 있을런지요?”
“과거 예로 보아 미국이 북한을 당해 낼수는 없습니다. 다시말해 북한의 벼랑끝 전술인 억지를 계속 부린다면 결국 미국은 쌀이든 기름이든 모두 양보하고 말것입니다. “
대통령은 다른 장관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경제장관 한 사람을 제외 하고는 모두가 국정원장의 의견에 찬성을 표시 했다.
대통령은 다수의 의견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회의 결과는 북측에 쌀 공급을 당분간 중단하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북한. 평양

평양 인민 무력부(주: 국방부)는 과거 김일성의 빨지산 토굴시절 생활을 상징이나 하듯 100여미터 지하에 본부가 꾸며져 있었다. 출입로는 자동차 도로와 지하철로 연결된 출입구로 구분되어 있었고, 별도의 지상층에는 외부 인사 접견실까지 잘 치장되어 있었다.
이달도 이틀이면 끝나는 이날, 북한주재 중국대사 전용차인 검은색 리무진이 인민무력부 지상층 현관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리무진에서 내린 류사오밍 대사는 호화로운 접견실로 안내 되었다.
인민 무력부장은 허리를 굽혀 류사오밍 중국대사를 맞이했다.
인민무력부장은 옜날, 김정일을 수행하여 중국에 갔을 때 북경에서 잠시 만난 이후로 첫 만남이었다. 이날 류사오밍 대사는 수석 참사관을 대동하였고 인민 무력부장 쪽은 4명의 고위 군관을 배석 시켰다.
대사는 미리 준비한 메시지를 중국어로 빠르게 말했다. 인민 무력부장은 물론 중국어를 잘 알고 있었지만 오른편에 앉은 보좌관의 즉석 통역에 귀를 기울였다.
류사오밍 대사는
“북한이 계속 성의없이 중국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과, 세계 긴장완화라는 소기의 목적달성에 위배되는 북한 ‘핵 무기 보유선언’ 에 깊은 유감을 표시 했고, 한달후에 있을 중국과의 회담에는 좀더 성의 있는 태도로 임할것이며, 이번에는 보다 많은 결실을 가져와 아세아가 공동으로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공정하고도 영속적인 공산주의식 평화를 이룩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중국의 말에 귀 기울여 주기를 희망한다. 이상.”
메시지는 이상으로 끝이났다.
류사오밍 대사는 프린트된 메시지 전문을 인민 무력부장 책상위에 던저 놓고는 형식적인 인사 치레를 취한 후에 곧 그 곳을 떠났다.



중국 산동성. 조선족마을

탈북인 한명이 종일토록 백지 위에 도표를 그리기도 하고, 축척 삼각자로 거리를 재 보기도 하면서 지도를 펼쳐놓고 하루를 보냈다. 또 다른 한사람은 스타라이트 스코프라는 이름의 야간 사격 조준경이 부착된 저격용 소총 사격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이들은 학창시절 김일성 대학 어학반에서 배운 영어회화 실력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의 전략적 항구인 남포항에서 이들이 꼭 성공 시켜야 할 일들에 모든 운명을 걸어야 만 했다.
첫 계획은 북한이 시리아로 수출하는 10억 달러 상당의 미사일을 탈취하는데 있었다.
이 미사일을 실은 배가 남포항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선박 명부에서 배 이름까지 찿아냈다. ‘영국 선박 명감’ 이라적힌 회색표지의 선박 명부에서 였다.
북한의 수출입은 유엔의 감시에서 벗어 나기위해 고가의 비밀 임대 용선을 썼다. 용선은 영국국적 선박 이었다. 그러나 이 용선을 임대한 회사는 그리스와 이란 선박회사다. 즉 임대에 임대를 거듭한 세탁된 최고급 용선의 화물선이 비밀리 남포항을 드나들었다.
결국 용선의 마지막 임대자인 북한이 계약 조건 말미에다 명시한 사항은 이러했다.
‘화물의 절대적인 안전을 위해 화주측은 필요한 안전요원을 꼭 승선 시키 기로 한다.’

/세계 최고의 용선과 호주인 선장/
세기전부터 해상의 선구자 역할을 한 나라가 대영 제국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전통을 이어온 영국 선박들은 비록 용선이라 하더라도 그 배를 지키고 지휘하는 선장만큼은 영국인이나, 영국의 후예 호주인을 선장으로 채용 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
이들 선장들은 한결 같이 책임감과 자긍심이 매우 강했다. 이들은 영화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선박에 비상사태가 발생되었을 때에 끝까지 배를 지키는 것을 영광으로 삼는 그런 삶을 살아온 바이킹의 후예들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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