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8-01 조회수 : 199
Red to Blue - 30~33


30

같은시각. 청와대

대통령은 안보담당보좌관과 국가정보원장, 통일부장관, 농수산부장관 그리고 농수산부양정국장을 참석시킨 회의를 주제하고 있었다.
“국정원장! E737의 정찰결과와 현지 공작원의 보고가 틀림없이 이 숫자를 뒷받침 한단 말이지요?”
앞에 놓인 보고서에 나타난 숫자를 짚어보이며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재차 다짐했다.
국정원장이 이틀전에 올린 보고서에는 북한 전체의 곡물산지를 6개 지구로 나누어 태풍 피해 상황을 자세히 설명을 한 내용이다.
보고서는 각 지구 마다 50평방미터씩 농산물에 대한 성장 환경 셈플을 확인하여 그것을 촬영해 예상 수확량을 산출했다.

국정원장이 대답했다.
“대통령님 이것은 대략적인 숫자이므로 사실은 이보다 훨씬 더 피해가 심각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은 시선을 농수산부 장관에게로 옮겼다.
“장관! 장관은 어떻게 보고 있어요? 전문가 입장을 한번 들어봅시다.”
“네, 일반적으로 곡물이라는 것은 총수확량에서 10%정도 차감한 것이 실질적인 수확량으로 계산됩니다. 곡물이란것이 경우에 따라 20%까지도 수확량에서 차감될 수도 있습니다. 차감 이유는 수분, 작은돌, 모래, 흙 같은 이물질과 이동중에 생기는 유실부분이나 보관시설에서 오는 손실분등이 그 이유입니다.”
대통령은 앞에 놓인 보고서 표지를 넘겼다. 비축분, 종자분, 일반식량, 군수용식량, 국영 집단촌 식량 및 기타 시, 군 지역 인구 2000명 이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총 1년치 식량, 그 최소량이 도합 550만톤이었다.
“제가 특별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하고 장관은 계속해 말했다.
“이것은 에누리 없는 최소한의 숫자입니다. 북한 정권이 인민들을 굶겨 죽이지 않을 작정이라면 이 숫자만큼은 절대로 필요합니다. 아마 내년 이른 봄부터 북녘은 집집마다 집에서 기르던 닭, 염소, 개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시작할 것입니다. 550만톤 의 식량 공급이 안된다면 말입니다 “

“그렇겠군, 잘 알았어요 그러면 저들의 비축식량은 어느 정도요?”
“저희들이 알기로는 북한의 비축식량은 약 50만 톤 정도입니다. 이것을 전부 소비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가령 군수용만 남겨두고 전량을 방출한다고 가정 했을 때라도 내년 2월부터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인구 200명 이하의 소규모 취락마을 인민들이 필요로 하는 양이 얼마 정도인지요?"
“대통령님, 문제는 우리가 그들 빈곤층들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을 공급한다 해도 그 식량이 그들에게 잘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과거 예를 들면 저들은 빈민들에게 양곡을 나누어 주는 것처럼 연극 해 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수거해 갔답니다. 그래서 함경북도에서는 반란 조짐까지 일어났습니다. 결국은 군대가 출동해 진압 시켰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대통령이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결론은 여러분들이 작성한 이 보고서를 기초로 우리 정부가 70만톤을 외국에서 수입해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 이 말 아니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올해 북미대륙과 캐나다는 대풍작이어서 국제곡물시세가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회의는 간단히 끝났다.
회의 참석자들이 물러간 후 안보담당보좌관과 국정원장만 자리에 남았다.

국정원장이 곧 추가 의견을 말했다.
“대통령님, 지금 저들은 심각합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빌지 모릅니다. 휴전선 일부에서 국지전을 발발 시킬 수도 있고 그보다 더 큰 도박을 걸지도 모릅니다. 가령 옜날 프에불로호 사건때처럼 동해 공해상에 있는 미 함정을 공격한다거나 해서 미국을 끌어들여 우리를 배제하고 미국과 담판을 시도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미국은 강온 양면작전으로 달래보다 안되면 무력적인 계획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중국의 양해아래 김정은 만 퇴진시킨다는 작전이겠지만 그런 조짐이 보이게 되면 김정은은 죽기살기로 덤벼들 것입니다. 대통령님! 만약 서울이 공격을 받는다면 수도권에서만 8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됩니다. 이것은 상상도 못할 민족 최대의 불행한 사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김정은을 잘 달래놓아야 합니다.”

“내 생각도 그렇소만, 어디까지나 우리의 내부 속사정까지 환히 들어내 보여서는 않됨니다. 겉으로는 아주 강경하게 대처 해야 합니다 북한에게는, 내말이 무슨뜻인지 알겠지요?
“네, 제가 직접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31

대한항공 812
강철(金鐵)은 직사광선을 피해 비행기 창 블라인드를 살짝 열었다. 비행기 날개 아래로 솜털처럼 부드러운 새하얀 구름들이 두둥실 떠있었다. 구름이 뒤로 빠르게 흘렀다. 아랫쪽 저멀리 대양의 파도 위에서 햇살이 반짝였다.
“신사 숙녀 여러분, 기장입니다. 우리는 현재 33,000 피트 고도에서 시속 830km로 운항중입니다. 기체 외부 온도는 영하 50도 입니다. 인천공항까지는 앞으로 한 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서울의 오늘 날씨는 쾌청하고 영상 20도의 온화한 기온 입니다. 계속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비행기는 일본 해역을 통과하고 있다, 작은 창을 통해 태양이 바다로 서서히 떨어져 내리는 아름다운 일몰을 볼수있었다. 비행기는 계속 북쪽으로 비행하다 방향을 동으로 선회 항로를 서서히 수정했다.

점점 고도가 낮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갯벌과 염전이 바다 위에 섬처럼 떠 있는 것이 아득히 내려다 보였다. 고도는 더욱 낮아져 도시의 도로가 눈아래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항공기 사고가 착륙시 발생한다지만, 비율로 보았을 때 자동차 사고의 1/1000 정도이다. 그러나 강철은 이 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창 밖으로 한강 하구가 내려다 보이더니 육중한 점보기가 속도를 줄이느라 굉음을 냈다. 곧 새처럼 가볍게 긴 활주로에 내려 앉았다.
철 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쭉 폈다. 시계줄 같은 쇠사슬에 매달린 왼손의 가방이 거추장스러웠다. 강철 은 긴 복도를 걸어 나왔다.
탑승할 때 그를 안내했던 고참 여승무원이 또다시 ‘안녕히 가세요’라고 철 에게 인사했다. 그는 20여분만에 입국수속과 세관을 통과해 게이트를 나섰다.
“여기야, 강철!”
흰 머리가 가득한 환한 얼굴이 환영 인파 속에서 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마만이야. 친구.”

“그래 어떻게 지냈나?”
“나야 항상 그렇지 뭐.”
“변호사는 정년도 없어? 그 흰머리로 아직 일을 해?”
“그냥 소일 정도로, 그게 늙지 않는 비결이야ㅎㅎ” 든든한 후원자의 대답이었다.
두 사람은 곧 자동차 뒷 좌석에 깊숙히 몸을 묻었다.

“국정원으로…”
운전석의 젊은이에게 그가 행선지를 지시했다.
“국가 정보원을 말씀하시는겁니까 총장님?” 운전석의 젊은이가 행선지를 거듭 확인했다.
운전석의 젊은이는 자기 상사가 검찰총장 출신이라 아직도 총장님이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로 갑시다.”

*

다음날 아침. 국가정보원장실
다음날 아침에도 강철 은 국정원에서 보내준 자동차에 올랐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곧 바로 원장실로 안내 되었다.

“어서 오세요, 김 선생님! 어제 저녘 잘 주무셨습니까?”
국정원장이 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국가 정보를 총괄하는 사람답게 은근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국정원장은 강철을 자리에 앉히고 커피를 권했다.

국정원장이 말했다.
“어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넘기신 그 테이프에 관해서 인데요. 정말 놀랍습니다.

일단 테이프에 녹음된 음성들에 대해 성문분석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목소리가 진짜인 것으로 판명이 됐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북한 군부지도자들 음성까지도 모두가 진짜라는 연구실 관계자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테이프 마지막 부분에 담긴 F-22 미군전투기 조종사의 무전 연락 내용으로 보았을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테이프 내용을 들어보면 사실 이건 엄청난 일이어서 오늘중으로 대통령님께 보고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강철에게 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계속해 말했다.
“호주 시드니 에서 이건 정보 제공자와 다시 만날 약속을 2주후에 했다라 말씀하셨지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잘 하셨습니다. 어쩌면 장기적인 작전이 될수도 있겠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선생님을 도와드릴 방법을 연구 하겠습니다. 시드니 현지에서 선생님을 보좌할 조력자가 필요하면 사람을 하나 붙여 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러면 서로가 불편합니다. 저쪽 정보 제공자도 대단한 각오를 하고 한발 내딛기는 했지만 줄타기와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만큼, 또다른 사람이 제 부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쪽에서 접촉을 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정보 제공자가 겁에 질려 달아나 버리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런 사정인 만큼 모든 것을 저에게 일임해 주십시오. 저에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국정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는 강철에게 협조를 거듭 당부 했다.

/늙은 은퇴 공작원 출신은 조심성이 많고 신중한 협력자이다/ 국정원에서는 이런 고급 외부 조력자를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강철이 제공한 정보는 진짜였다.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인 결론이었다.
국정원장은 강철을 최대한 활용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굳혔다.
그가 강철에게 거듭 다짐하 듯 말했다.
“다음 접선 날짜가 2주 후라 하셨지요?”
깅철이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선생님께서는 내일밤 시드니로 가셨으면 합니다. 비행기 좌석을 알아 보도록 지시 하겠습니다.”






32

호주 . 시드니
사고 위장 살인사건

시드니 거주 북한 공작원 장갑수는 늘 일본인 오까다로 행세했다. 그는 북한에서 제조한 마약을 시드니 환락가에 공급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알고 일해 왔다.
그러나 지난번에는 한국인 강철을 납치하라는 이상한 명령을 받기도 했었다. 결과는 납치에 실패하고 말았다.
더구나 고용한 흑인이 캔버라까지 강철을 뒤따라 갔다가 미 대사관 여 직원 숙소를 침입하는 사고까지 일으키고 별 소득도 없이 되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장갑수는 보스에게 추궁 당할 일을 생각하니 여간 불안 한게 아니었다.

장갑수가 흑인 하수인에게 말했다.
“난 이제 그만 사무실로 돌아가 보스와 앞 일에 대해 상의를 해 봐야겠오.”

“그럼, 약속한 대로 약 살 돈 좀 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제발”
흑인 사내는 눈동자에 초점을 잃고 말까지 더듬었다. 마약 기운이 다한 듯 했다.
장갑수는 그에게 몇푼의 돈을 던져 주고는 호텔을 나섰다.
장갑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밤. 퀸슬랜드 특급 야간열차
한 사내가 마약에 취한 눈으로 조금은 불안한 듯 열차 플랫홈을 향해 뒤뚱거리는 모습으로 달렸다.
휴일 밤 한적한 역에서 이 늦은 시간에 퀸슬랜드행 심야 특급 열차를 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철도 승무원 한 명이 플랫폼에 정차중인 열차 기관사를 향해 막 출발 신호를 보내려 하고 있었다. 열차는 엔진 소리를 높이며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뒤뚱거리며 달려온 흑인 사내가 여객원 에게 소리첬다.
“아, 미안합니다. 제가 기차 시간에 너무 늦었네요.”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달려온 사내가 급히 열차에 뛰어 오르려 했다.

그러자 승무원이 “위험 합니다” 라며 사내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승무원은 사내를 부축하는 척 하더니 객차와 객차사이 연결 쇠붙이가 있는 곳으로 흑인 사내를 떠 밀었다.

승무원의 완력은 대단했다. 흑인 사내는 소리치려 했지만 얼마 전에 먹은 마약 기운이 몽롱히 퍼져 목소리가 목 안에서 만 맴돌았다. 승무원이 하얀 가루를 그의 얼굴 위에 더 쏟아부었다.
흑인 사내는 연신 재채기를 했다. 사지를 움직여 보려 노력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선 거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승무원은 다시 한 번 발로 차 그를 열차 사이로 밀어 떨어트렸다.
흑인은 객차와 객차의 공간 사이로 떨어젔다.
흑인의 오른쪽 구두가 플랫폼 가장자리 턱에 걸려 벗겨지면서 나딩굴었다. 그는 자신이 선로 위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겨우 의식했다. 선로 위로 떨어지며 선로에 무릎을 부딪혔다. 다리가 끊어지듯 아팠다.
선로에 떨어졌지만 일어나 보려고 계속 발버둥쳤다. 승무원은 마지막 남은 흰 가루를 그의 검은 얼굴 위에 또 뿌렸다. 사내는 약봉지를 든 여객원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자신의 심장이 수축되고 혀가 굳어진 것을 곧 깨달았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가물거리는 눈으로 위를 올려다 보니 승무원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의 망막 안에는 승무원이 기관사에게 아무 이상 없으니 출발해도 좋다라고 출발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 들어왔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녕, 잘 가~” 라며
자신을 내려다 보는 승무원의 얼굴이 갑자기 뚜렷하게 보였다.
흑인 사내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승무원은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승무원 제복을 입고 있어 깜쪽 같이 속은 것이었다.
‘맙소사’,
그는 자신에게 강철을 납치하라고 시킨 그 동양인이었다.
흑인 사내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충격을 느꼈다.
기차가 막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무거운 쇠 바퀴가 자신의 다리와 몸통을 짓이기려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눈동자에 비치는 빛의 그림자 속에서 무수한 알갱이들이 영롱하게 튀어 나오는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쏴’ 하고 몸 속에서 무엇인가가 빠져 나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사내는 이 동양인이 지금 자신을 죽이고 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흑인 사내의 눈가에선 눈물이 조금씩 흘렀으며 손가락은 가늘게 경련했다. 날씨가 추운듯 몸도 떨었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그는 자기 의식 또한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것을 서서히 느꼈다.






33

시드니 남부
파라마타 강변
파라마타 강을 끼고 들어선 루트비 타운의 한 독신자 아파트 거실에 커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남자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이들의 시선은 동양인 두 명에게로 모아졌다.
그중 한 명이 독특한 북한 사투리로 앞 사람을 몰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무서운 눈을 가졌다.
“어이 보라구, 장갑.”
그는 자기 앞에서 머리 조차 제대로 들지못하는 장갑수를 큰 소리로 그렇게 불렀다. 그는 항상 장갑수를 부를 때 끝말인 ‘수’ 자를 빼고 ‘장갑’ 이라고 만 호칭했다.

장갑수는 공포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 보았다.
“장갑! 어떻게 해써? 그 빙신 같은 검둥이 새끼를 니래 어떻게 했냐고?”

“예, 지시하신대로 잘 처리했습니다.”
“어떻게?”

“내일쯤 신문에 날 것입니다. 마약 중독자가 열차에서 추락하여 사망했노라고….”
“기래? 잘 했구먼.”
사내는 표정 없이 응수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북한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은 이들 둘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사내는 탁자 위에 놓인 대형 봉투에서 사진들을 꺼내 천천히 한 장씩 장갑수 앞으로 밀어놓았다. 장갑수는 놀란 눈으로 탁자 위의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사진은 일흔이 넘은 자기 어머니가 수용소 독방에서 석방될 날만을 기다리며 카메라를 쳐다 보고 찍은 사진이었고, 또 한 장은 열네살인 조카가 초점없는 눈동자로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손목에 수갑을 차고 독방에 앉아 있는 형의 사진도 눈에 들어왔다.
감옥 쇠창살이 흐릿하게 사진에 나타나 있었다.
“장갑수 동무! 동무의 가족은 이 밖에도 형수와 조카 아이들이 더 있지? 그렇지? 동무는 여기 호주에서 해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과 선물을 보내줬더군. 자네, 자본주의 사상이 대단해.”
그의 빈정거림에 장갑수는 차라리 눈을 감고 말았다.
사진 속의 얼굴들이 장갑수의 눈에 선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짧게 깎은 머리로 앙상하게 마른 모습에 다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차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몰골들이었다.
장갑수의 가족들은 지난해 압록강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을 시도 했다가 잡혀 함경북도에 있는 어느 감옥에 투옥 최근 남포 수용소로 이감되었다.

매서운 눈의 사내는 장갑수를 계속 협박 했다.
“인민을 배반한 가장 악질적인 반동이야 동무의 가족들은, 그렇치 반역이지, 중국으로 도망을 쳐 서울로 가겠다라 했으니… 동무 가족은 아마 총살을 면치 못할끼야.”

장갑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표정이 결연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 애원에 가까왔다.
“살려주십시오, 가족들을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대로 다 하겠습니다 보스 동무,”

매서운 눈을 가진 사내가 비웃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시드니 위조지폐 사건, 동무도 알고 있지?”
장갑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위조 지폐 사건에 대해 알아볼게 있어서 강철 이라는 놈을 납치해 오도록 흑인 놈에게 일을 시킨 것과 그 일에 대한 실패 책임을 동무가 분명히 져야해 알겠어!
그 흑인 놈이 미국 대사관 여직원 집에까지 쫓아가 일을 아주 크게 만들어 버렸어,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그러니 동무가 그 뒷일을 좀 깔끔하게 잘 처리해 주었으면 하는데….. 동무 생각은 어때?”

말을 마친 사내가 손짓으로 장갑수를 가까이 불러, 귀에 대고 무언가 지시 했다.
순간 장갑수의 두 눈동자가 왕방울처럼 커져 공포에 질린 표정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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