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권상득 작성일 : 2012-05-04 조회수 : 565
사이공의 에피소드#139 슬픔은 내가슴에

1965년 부터 팬팔을 통하여 알게된 한국의 유일한 최여사는


나와 친숙한 사이였습니다. 제가 월남을 가게되어 모든것이 끝나버린 슬픈사이였습니다.


제가 월남에 있는동안에도 꾸준을 서신을해서 1000통이 넘는 편지가 사과박스로


한상자나 가득 되었습니다. 


 


월남에 있는동안 서서히 서신의 양이 줄어들더니 어느날 저에게 서신을 중단할테니


다시는 편지하지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나이가들어 노처녀가 되어감에 저를 기달릴수없는


입장이된 그녀의 푸념이었습니다. 저는 이성의 운이 없었습니다 어렵게 시작하면 쉽게 떠나버리니


어이가 없고 벙벙했습니다. 


 


서울 신당동의 그녀는 강남으로 이사하여 지금은 교회 에서 권사를 지내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한동안 손이 떨려서 글을쓸수가 없을정도로 저는 분이 가득 찼습니다.


월남에서 첫번째 맞이한 저의 슬픔이었습니다.


 


그 슬픔은 매우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금년 66세가된----


최 권사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사세요-----   



안케  2012/05/05 01:17:18 [답글] 수정 삭제
권 전우님 그런 아픈사연이 있었군요.
나는 월남에 있을 때 펜팔편지를 하루에 약 200통 정도를 받았습니다.
주간 중앙 펜팔난에 올렸더니 편지가 무진장 왔었습니다.
우리 분대원들 나, 때문에 고생 많았지요.
내 펜팔편지 대필하느라고 말입니다.
내가 한통을 초안을 잡아 주면, 분대원 한 사람이 10~20통을 복사하듯이 대필을 했지요.
가슴 아픈 사연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상득  2012/05/05 06:08:28 [답글] 수정 삭제
1965년 사병때 팬팔을해서 서로만나 결혼까지하기로
약속 했었죠 그러다가 제가 월남을가서 오랬동안 귀국을하지 않으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할수없이 저를 떠난것이지요 딸4형제의
제일큰딸이었죠 언니가 출가해야 동생들도 결혼을 하게되므로
할수없이 저를 떠난것이지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날씨가 더워지는군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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