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10-08-13 조회수 : 1323
월남의 공산화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자유 월남 시절 사이공 대학생이었다가
1985년 탈출한 리우 딩 중(Lieu Dinh Dung) 학생의 수기 중에는 이런


지적이 있다.


월남의 공산화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월남은 공산화된 이후 지식인, 공무원, 군인, 종교인, 부유층, 그리고
월남정부에 협조한 사람들은 전부 재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적대(敵對)계층으로 분류되었으며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로 간주되어 승자의 보복대상이 되었다.

탄압과 차별 ,학대와 폭정이 자행되었고 전국 각처에 재교육 수용소가


설치되어 적대계층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잡아 가두고


공안경찰을 증원(增員)하여 국민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통제했다.
가혹한 육체노동을 강요하였다.
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규정하여 "부모의 흘린 피와 땀, 자식이 흘린 피와 땀이


합쳐야  나라가 번영한다."고 선전하면서 무자비(無慈悲)한 노동을 강요했다.

논과 밭은 국유화되고 영농은 철저한 3모작을,
일반 국민은 헌금을 강요받았으며 돈이 없는 자는 노력봉사를 해야만 했다.

노동자는 한달에 15kg의 쌀을 배급받아 생활해야 했고, 전쟁부채 상환비,
전비(戰費)기금을 내야 했다. 먹는 것을 철저히 통제하고 수중에 돈이 없게


하여 국민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철저한 국민재교육을 시행하였다.


또한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종래 부를 축척한 모든 것을 부정하여
자살을 하는 사람이 속출하였다.

이 국민 재교육은 공무원(公務員)은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경찰(警察) 및 정보요원은 제국주의의 도구(道具)로,
군인(軍人)은 무력으로 총을 가지고 대항했던 사람으로,
문예(文藝)인은 민족정신을 교란시킨 사람으로,
종교인(宗敎人)은 국민을 유혹하여 미신에 빠지게 하고 우매하게 만든


사람으로,자본가(資本家)는 국민을 착취하여 강압적 노동을 시켜서 반혁명에


앞장을 섰으며 국민에게 피의 부채를 지고 있다. 라는 죄를 물어


재교육을 시켰다.


"우리 공산당은 이 반역자들을 재교육 과정을 통해서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할 선량한 국민으로 개조하고,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선도할 것이며
노동을 경험하게 하여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길을 열어준다."라고 선전했다.


한 수용소에 2.000명 정도 수용하였으며 성(省) 별로 1개 이상이 있고
사이공 주변 등 도시 주변에는 대상자가 많음으로 여러 곳에 설치하였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밀림지대에 위치하여 탈출을 방지하고,
나무를 벌목하여 수용소를 짓고 개간하면서 식량은 월 9kg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자급자족하도록 했다.

수용소 방침 자체가 체형(體刑) 및 학대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작업 실적에 따라서 수용소장의 재량으로 급식의 양을 결정하였다.
따라서 제거해 버리고 싶은 적대계층의 사람은 굳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더라도 제거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었다.

가족이나 다른 국민들, 외국(外國)의 항의를 벗어나기 위한 교묘한 방법을


강구해 냈다.
수용소 기간에는 면회가 일체 사절되었고, 편지도 1년 또는 2년에 한번
보낼 수 있었으며 의료혜택은 전무하여 병에 걸리면 바로 죽는 것이었다.

말라리아 등의 열병과 뱀 전갈의 독충과 영양실조 및 미래에 대한 포기는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혁명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제거했다.
즉결처분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 인원은 30만에서 2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정확한 통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월남군인만 100만이 넘는 것을 감안할 때, 하사관 및 초급장교까지


수용소로 보냈으며   공무원 종교인 경제인 월남 정부 협조자와 그


가족까지를 포함하면 최소한 100만 명 이상의 상당한 숫자가 재교육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사이공 경찰에 소속 보도요원의 중위로 근무했던 구엔 반 호이(Nguen Van Hoi)는 1975년 6월부터 1979년 1월까지 수용소 생활을 하고난 후,
1985년 8월에 해상탈출을 할 때까지의 생활을 지옥으로 표현했다.

자유 월남 시절 사이공 대학생이었다가
1985년 탈출한 리우 딩 중(Lieu Dinh Dung) 학생의 수기 중에는 이런


지적이 있다.

나라를 망친 이유는 행정관료의 부정부패와 정당간의 극한 대립과


정의(正義)로운  사회를 구현하지 못했다. 공산분자에 관용을 베풀고,


처형을 못하고 감옥에 가두어  오히려 보호를 해주고, 반정부 과격데모를


중지시키지 못하여 패망하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때의 심경을 시 한 수로 대신했다.


 


멀리서 공산주의를 바라보니
금강석처럼 반짝이기에
무엇인가 궁금하여
가까이 가서 보니
그 것은 피로 범벅이 된 눈물이라네
.』


 


(월남 탈출33인의 수기「나라 잃은 사람들」중에서...)







     
    한현욱  2010/08/18 00:11:08 [답글] 수정 삭제
    우리나라도 월남과 비슷하여 지는것 같아 속이 뒤집어 지네요
    정재춘  2010/10/23 23:57:36 [답글] 수정 삭제
    지금 월남 다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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