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한광덕 작성일 : 2013-02-08 조회수 : 964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회에 건의합니다.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회에 건의합니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행과 차질 없는 정권인수를 위해 노력하시는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큰 보람이 함께 하기를 먼저 기원합니다.


 


저는 국방부 위촉으로 국무총리 직속의 4.3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왜곡된 진상조사보고서의 채택(2003.10.15)과 이에 따른 노무현 대통령의 4.3사건과 관련한 정부차원의 공식사과(2003.10.30)에 대한 항의로 4.3위원을 사퇴했던 육군 예비역입니다.


 


이 글은 “4.3사건 추모기념일 지정과 관련된 박 당선인의 공약에 대한 내용입니다. 4.3사건에서는 경찰과 군의 희생이 있었고 무고한 주민의 다수 희생이 발생했었기에 그 희생을 추모하는 추모일 지정은 환영하면서도 43일을 추모일로 택하는 경우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합법성이 부정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굳이 특정 날짜를 기념일로 선정해야 한다면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했던 날짜를 별도로 택하는 방책이 검토되기를 건의합니다.


 


필자는 이한동 국무총리 주재하의 4.3위원회 전체회의(02.3.14)에서 제주 4.3평화공원의 명칭결정에 관한 토의에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었습니다. 4843일은 5.10선거를 반대하는 제주도의 남로당 무장대가 당시의 경찰과 선거관리위원들을 목표로 한 방화와 살해로 동족 간에 살육이 시작된 날이니 이 날이 평화를 상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를 강조하려면 “4.3”을 빼고 제주 평화공원이라고 하든가 굳이 “4.3”을 강조하려면 쌍방의 희생을 위령하기 위해 제주 4.3위령공원으로 하자는 요지였습니다.


 


이한동 총리가 7명의 장관과 12명의 민간 위촉위원들에게 제 의견을 묻는 과정에서 대부분 동의하고 넘어갔는데 강만길 위원이 반론을 제기 한 바, 4.3사건은 최초의 통일시도로 보아야함으로 먼 역사적 관점에서 원안대로 하자는 견해였습니다. 표결에는 붙여지지 않았고 결정도 보류되었었는데 4.3위원 사퇴 후에 제주4.3평화공원으로 결정된 과정은 모르고 있습니다.


 


4.3 무장폭동의 배경에는 구소련이 있었음을 이제는 온 국민이 알아야합니다. 소련의 비밀문서 공개로 북한 땅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라는 스탈린 비밀지령(45.9.20)이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에게 하달된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이니찌 보도: 93.3.26)


 


이 지령으로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설치(45.10.19)되며 북조선 공산당으로 개명한 후 194628일에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설치하고 북한만의 단독선거(46.11.3)로 도군 인민위원회의 각급 인민위원을 선출한 후 각 도군 인민위원회 대회를 평양에서 개최하여 우리의 국회에 해당되는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47.2.17) 했던 바 이는 대한민국 국회구성(48.7.17)보다 15개월이나 빨랐던 시점이었습니다.


 


스탈린 비밀지령에 따라 이처럼 북한을 조기에 장악했던 소련 군정은 UN 감시하의 남북 총선거였던 5.10 국회의원 선거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연장선에서 제주도에서는 4.3 사건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인구비례로 북한에 100명 남한에 200, 30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어야 했으나 북한의 선거거부로 남한에서만 198명이 선출되었는데, 제주도에서는 3명의 국회의원 중 1명만 당선이 되고 나머지 두 명은 투표율 미달로 이듬해에 재선거가 실시됐던 역사적 사실도 국민들이 알아야만 합니다.


 


4628일엔 인민군 창설이 있었고 36일엔 조선인민위원회명의로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단행되고 그리고 47121일엔 화폐개혁 까지 비밀리에 단행했던 상태에서 99절 정부수립 행사만을 우리보다 24일 늦게 해 놓고는 대한민국 건국(48.9.15)이 남북의 분단을 초래했다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민족 끼리를 배반한 원흉으로 억지 선동을 해 왔으니 이 기막힌 사실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확실히 알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따라서 4.3사건을 최초의 통일시도로 보아야한다는 강만길 4.3위원의 주장대한민국의 탄생이 거부된 인민공화국으로의 공산통일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4.3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은 강화하는 경우에도 43일의 기념일은 타 날짜가 검토되기를 4.3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위원으로서 간곡히 건의합니다.


 


1993년에 확인된 스탈린 비밀지령과 이에 따른 남노당의 지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여러 문서에서 확인되고 실제 4.3무장 폭동의 주모자였던 김달삼이 평양근교의 애국열사능에 통일혁명렬사의 비문을 받고 안장된 현장까지도 확인되었음에도 이런 사실 등은 반영되지 않은 왜곡된 진상조사보고서가 국방부(2)와 경찰(1) 위촉위원 3명 전원이 부동의 한 가운데 고건 총리 주재하의 4.3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03.10.15)되었음을 다시 밝힙니다.


 


필자는 4.3위원 사퇴 4년 후인 2007년에 북한 전문가의 도움으로 제주 4.3 무장 폭동에까지 인민공화국 영웅 1” (“김일성의 특사성시백)의 대남공작이 작용한 것을 주장할 수 있는 북한 노동신문의 특집보도가 1997526일에 발행된 것을 발견하고 그 때까지 10년이 넘도록 우리 사회에 공론화되지 않고 있었던 끔찍한 사실에 놀라면서 이 내용의 공론화가 대한민국 안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제 나름의 노력을 해 왔으나 역부족이었음을 알려드리며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회 여러분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아울러 호소합니다.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란 제목의 노동신문 특집보도 말미에는 김일성의 특사로 자신을 소개하는 성시백이 김구선생에게 평양에서 개최된 19484월의 남북연석회의 초청장을 전달하는 장면도 묘사되는 등 대남공작 활동의 규모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중대한 내용이 담긴 특집보도의 3년 전인 1994, 김영삼 대통령시절에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가 북송되었고 이 보도 3년 후인 2000, 김대중 대통령은 6.15 정상회담에서 돌아와 대남공작중단도 요구하지 않고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재차 북송했고 그 10년 후인 2007년에는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돌아 온 노무현 대통령은 한 달 만에 제주 4.3사건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하면서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는 발언을 계속했다는 것 등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현상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노동신문 특집보도 이후의 지난 15년 여 간에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발생해 왔다고 보십니까? 인수위원회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습니다. 핵과 미사일 협박보다도 무서운 것이 북한의 대남공작인 바, 우리는 이 대남공작의 최대허용 상태에서 12.19의 대선을 넘겼고 이제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년으로 15년째 공론화되지 않고 있는 문제의 1997526일 노동신문 특집보도의 내용을 아시면 우리가 넘겨 온 지난 세월을 깜짝 놀라며 돌이켜 보시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역량과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대한민국 국민들의 지혜와 판단력에도 다시 감탄하시게 될 것입니다. http://rokfv.com/jboard/view.php?code=23&uid=306&page=1&key=&keyfield (이 영문을 인터넷 주소창에 옮기고 enter를 누르면 나타날 것입니다.)


 


www.rokfv.com의 자유게시판 헤드라인과 인강칼럼에는 이 노동신문 특집보도의 내용과 의미에 관심을 갖도록 촉구했던 다양한 글 들이 올려져있으니 읽어 주시기를 바라며 그 중 몇 개의 제목만을 아래에 붙입니다. 아래제목을 네이버나 Google 등에서 탐색하셔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 6.25전쟁 10대 불가사의와 천안함 격침


* 대한민국의 위기시작은 1997526


* 사기를 당하면 개인은 패가망신,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 김 노 두 전임 대통령에게 따져 물어야 할 것


* 6.25 남침발발 62주년 덕우회 강연


* 죽창에 찔릴 각오로 쓴 글 역사에 남깁니다.


 


오늘이 설날이고 보름 후이면 박근혜 새 정부의 출범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의 앞날이 더욱 밝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인수위원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3.2.10. 17:00


한광덕() 육소장


www.rokfv.com


 


추신: 이 글은 인수위원회의 메일 접수 종료로 212, 우편으로 발송할 것입니다. 독자님들께서 더 추가 보완하고 하고 싶은 내용들이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며 우편 주소를 아래에 붙입니다.


() 110-230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18  한국금융연수원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유  윤 창 중 대변인


 박 근 혜 대통령 당선인 귀하


   


         

육공  2013/02/09 01:31:30 [답글] 수정 삭제
본문에 대한 내용은 완벽합니다.
교정해야할 부분이 보여 적었습니다.

본문 중간 15째 줄의 [살상해위가], -> 살상행위가
본문 밑에서 3째 줄의 [름 후이면] -> 보름 후이면
한장군님의 정의로움에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한장군님의 충정이 박 당선자의 심금을 울려주길 기원합니다.
한광덕  2013/02/09 18:24:20 [답글] 수정 삭제
육공전우의 교정 감사합니다. 일부를 보완하여 성우회, 재향군인회, 육사 총동창회 그리고 systemclub과 조갑제.com 까지만 옮겼습니다. 다른 더 많은 곳으로의 펌을 도와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총총
강국희  2013/02/09 19:41:33 [답글] 수정 삭제
한광덕 장군님의 그동안 글을 모아서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렸으면 좋았는데 그렇게 하셨는지요? 어제로서 마감한 것으로 아는데 안하셨다면 참으로 아쉽네요. 북핵보다 더 무서운 것이 대남공작이라는 말씀 백번 지당한 말씀이고 그 결과는 이미 우리 사회의 각분야가 적화되었다는 것으로 증명이 되고 있지요. 감사합니다. 대통령에게, 정치가에게 책임을 맡길수도 없고 들이 안하면 내나라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내가 하고 우리가 해야 합니다
강국희  2013/02/09 20:13:27 [답글] 수정 삭제
김일성의 6.25 남침시에 우리 군은 24일 비상경계를 해제하고 6월 10일 대대적인 인사이동으로 전방의 사단장, 육군본부 지휘부 대부분이 교체되어 막상 전쟁소식을 접했을 때는 자기 부대 실태조사 파악이 안된 상황이었으니 임전태세가 말이 아니지요. 더 이상한 것은 24일 육군회관 낙성식에 전후방의 많은 지휘관이 모여, 새벽까지 술 마시고 부대에 복귀하지도 못한 사람이 있엇고 군지휘부가 몽롱한 상태로 되어 기습공격을 받았을 때는 모양새가 말이 아니지요.

왜 이렇게 되엇는지 분명히 성시백의 공작인지, 또 다른 공작인지 밝혀져야 합니다.
한광덕  2013/02/09 20:29:42 [답글] 수정 삭제
제가 그동안 추적을 해 온 바로는 6.25 초전에서 국군이 후퇴를 할 때에 중앙방송은 녹음 방송으로 국군이 북진한다는 보도를 했는데---, 그 당시의 아나운서와 방송국장이 누구였으며 책임이 어디에 있었는지? 에 대한 조사조차도 진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시백은 당시에 조선 중앙일보와 신한 일보 등 10개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국군의 와해공작을 했다고 97년 5월 26일의 노동신문 특집보도에 기사화되어 있는데 -----, 나머지 신문사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 조차도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형근 대장이 그의 회고록에서 언급한 "6.25전쟁의 10대 불가사의"와 함께 현대판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강교수님께서 관심을 두시니 학계를 통해서도 연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인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도 메일 주소가 없어 할 수 없이 우체국이 열리는 날을 기다렸다가 우편으로 보낼 생각을 하면서 그 주소를 붙여 놓았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며칠을 걸려 작업을 하다가 그만 메일접수 마감일자를 넘겨버리고 말았나 봅니다.
강국희  2013/02/12 11:17:43 [답글] 수정 삭제
우리 현실은 참으로 어지럽고 그 원인은 김일성과 그 주체사상, 민족감상주의에 빠진 자들 때문이지요.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김구의 경우, 임시정부에서 독립을 위해 유혈투쟁강조, 이승만과 함께 반탁우익운동, 미군정의 통치권을 임시정부로 이관하라고 요구, 2차례 구데타 시도, 미군정이 우익세력불신-좌우합작추진동기 부여, 1947.11.30 이승만과 회담하고-소련의 거부로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될지라도 그 정부는 법리상이나 국제관계상으로 보아 [통일정부]라고 하면서 이승만의 노선에 찬성하였지요. 그러나 1948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되는 남북협상에 참석해 달라는 김일성의 특사 성시백 간첩[1950.6.27사형]으로부터 초청장을 전달 받고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북한노동신문1997.5.26특집] 그로부터 북한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유엔의 결의를 비난하고 미소양군의 철수와 남북한 동시선거를 주장하며 대한민국의 건국을 끝까지 반대하다가 안두희 총에 맞아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였지요. 민족화합을 누군들 싫어하겠으며 통일을 누가 싫어하겠습니까만, 스탈린/김일성의 공산주의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눈앞의 현실과 국제정세를 무시하고 통일/민족이라는 막연한 환상에 빠져 유엔이 지원하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끝까지 반대한 김구는 결과적 반역행위자일뿐입니다. 통합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다는 김구의 경력을 붙잡고 지금의 좌익들은 김구 중심의 민족역사관에 푸욱 빠져있어서 그 물결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고 봅니다. 이들이 1948.8.15 건국기념일을 반대하고 임시정부를 건국으로 봐야한다고 우기지요.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단체이지 국가건립에 필요조건이되는 [영토, 국민, 주권]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보는 것이지요. 맞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청운  2013/02/12 15:03:07 [답글] 수정 삭제
건망증환자로 알려진 대한국민인지라 사건발발후 1개월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생뚱맞은 소리나하고 성질머리가 급해서 빨리빨리는 한국사람보면 미국코메디 푸로에 흔히등장하는 말인데 한국근대사에 치욕적인 4,3 사건의 뒤밖인사실을 규명해야 된다는 일념으로 모질지 않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글월을 몇번씩 읽어보고 애국의 1인자로 박수를 보냅니다.

첨언컨대 15년간 좌파정권에 희석되어가는 의곡된 진실을 바로잡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18대 대통령을 박근혜님으로 선거에 총력을 기울린결과로 봅니다. 차제에 반공법을 그리도 없애려고 했던 적색분자들은 엄정한 법에의하여 처벌하고 인수위원과 박당선자 주변의 보좌진들도 두드리구 두드려보아야 할겄입니다. 님의 공약을 실천하려면 세비를 낭비하고 있는것부터 해야할것입니다. 즉은 국회의원들을 2백명이상줄이고 콤퓨터가 넘치고 있는현대에 공무원은 왜 늘립니까? 3분의 2는 줄이고 부정행위나 금품 수수행위는 3대까지 공무원의 자격을 박탈하는 법을 만드세요. 과감한 성품이 아버지를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온국민의 소원이라고 받아주세요. 이만 총총,,,,,
한광덕  2013/02/15 13:36:48 [답글] 수정 삭제
강국희 교수님이 바라보시는 명확한 역사적 사실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알려져야 할 텐데---
김구 선생은 1997.5.26의 노동신문에 보도된 대로, 훗날 6.25직전가지의 대남공작공로로 "인민공화국 영웅 1호"가 된 성시백의 공작에 넘어가 1948년 4월 평양으로 가면서 부터는 대한민국을 배반했던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현재에도 성시백의 2세, 3세가 우리 사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에 눈을 떠야만 자유 대한민국이 튼튼히 지켜 질 것입니다. 1997.5.26의 노동신문 특집보도에 대한 강국희 교수님의 각별하신 관심에 큰 힘을 얻으며 감사를 드립니다.
한광덕  2013/02/15 13:56:41 [답글] 수정 삭제
청운 선배님께서 제 고심의 일단을 읽어 주시고 노안에도 불구하시고 자상하신 답 글까지 올려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글을 E-Mail로 많이 옮겨 주시곤 하는 이 강성 선배님께서도 박근혜 당선인과 그 외 여러 주요인사 이름을 거명하며 모두 이 메일을 열어 보았다고 알려주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우체국이 열리는 지난 12일 아침, 등기번호 14192-0222-1036로 인쇄물을 배증 익일특급으로 발송했고 접수를 확인했음으로 전달은 확실히 된 것으로 알고 기다려 볼 것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선배님의 기대에 저도 공감하며 다 이루어지기를 빌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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