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한광덕 작성일 : 2017-12-30 조회수 : 214
급(急)!!! 적화방지 구국위한 필수정보


급(急)!!! 적화방지 구국위한 필수정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이은 문제인 촛불 대통령의 등장으로 온 나라에 총소리가 들릴 듯한 공포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1950년 6.25 불법남침 때 김일성의 인민군이 점령했던 지역마다에 죽창을 들고 나타났던 붉은 완장의 인민위원회 모습이 여기저기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 어려운 시기에 육해공군 및 해병대의 국군장병들이 부화뇌동 없이 북괴군에 대한 경계의 큰 눈을 뜨고 있는 믿음직한 자세이며, 6.25전쟁과 월남 전선에서 혈맹의 우의를 쌓아 온 주한미군이 국군장병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내를 활보하는 국군과 미군장병들을 대할 때 마다 격려의 박수를 치고 싶지 않으십니까!!!



북괴군의 6.25 불법 남침 당시 국군선배들이 낙동강까지 밀려서 최후 방어선을 힘겹게 지키고 있을 때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대한민국 구국의 돌파구를 마련했듯이 북괴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서도 한미연합의 신의 한수가 성공적으로 터질 것을 하늘에 빌며 국민들도 함께 힘껏 가슴을 폅시다!!!



가슴을 펼 수 있는 확신의 기초는 UN감시하의 제헌국회의원 선거(48.5.10)를 통해 8.15에 건국을 선포한 대한민국이 UN으로부터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며 그 기초위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만세!”가 애국가 가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자유 민주와 반공정신을 빼어 닮은 Trump 미국 대통령이 최근 우리 국회 의사당의 연설에서 6.25 잿더미위에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발전 기록을 소상히 기억하고 미국의 지원도 함께했음을 보람으로 여기며 “놀랍게 엄청 성공한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미국의 진정한 우방이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밝힐 때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치는 대한민국 헌법수호이기에 김정은의 지령을 받는 듯한 촛불대통령의 명령과 지시에 대해서는 군/경찰은 물론 각급 공무원들에게도 침착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거부할 의무와 권리가 있을 것이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했으니 우리 국민들도 경계와 질책의 목소리를 내야만 할 것입니다.



특히 국정원과 기무사의 대공기능이 극도로 약화된 오늘의 현실에서는 온 국민이 북한의 대남공작에 큰 눈을 떠야만 하겠기에 국방부 위촉의 4.3위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에서 우리의 과거사 중에서 9개 사실을 뽑아 ‘적화방지/구국위한 필수정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제 멋대로의 작명이라고 질책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라며 아래에 붙입니다.


-아래-



1. 1945년의 8.15해방 기쁨은 미국에 대한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서 비롯되었음에도 38선의 남/북에 ‘스탈린 만세/김일성 만세’소리가 들렸던 원인만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소련 군정은 “스탈린 비밀지령(45.9.2)”으로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민위원회를 구성(46.2.8)하여 일본에 대한 증오심 충동으로 지주들을 숙청하고 그들의 토지를 공짜로 빼앗아 소작농들에게 무상 분배(46.3.5)함으로서 ‘스탈린 만세/김일성 만세’가 터졌고 소련군에게는 인민해방군의 별명까지 붙었던 것입니다.



2. 7.27 정전 후에는 무상분배 되었던 토지가 서서히 집단농장의 소유로 전환되어 농민들도 모든 것을 빼앗겨 토지의 무상분배는 새빨간 거짓말이 되고 말았음에도 이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면했던 지주들은 38선을 넘어와 대한민국 반공투사(필자는 7세 때 부모님을 따라 38선을 도보로 넘었음)가 되었고 무상분배에 속아 ‘스탈린 만세/김일성 만세’만세를 불렀던 순박했던 북한 농민들은 배급을 받아야만 연명이 가능했기에 김일성에게 무한독재를 허용하여 부-자-손 세습독재를 받게 된 것입니다. 김일성은 지주와 농민 즉 민족전체를 배반했던 거짓말의 합리화를 위해 철저한 내부통제가 필요했고 외부와의 접촉차단으로 선전선동을 계속하여 우리 사회에도 주사파가 등장했던 것을 깨우쳐야 합니다.



3. 미군정하의 38선 이남에도 ‘스탈린 만세/김일성 만세’가 있었음은 아는 사람만 압니다. 김일성의 인민위원회는 조선은행권의 비밀화폐개혁을 단행(47.12.1일)한 바 이에 대한 조치결여로 북에서 버려진 조선은행권(당시 남북공용)이 38선 이남으로 운반되었고 일확천금을 공짜로 선물 받았던 행운아(?)들이 ‘스탈린만세/김일성만세’를 남몰래 불렀던 것입니다. 이 화폐를 선박으로 운반했던 대북무역상(who?)이 존재했고 행운아들의 만세장면 사진기록과 신상자료는 대한민국에는 없습니다.



4. 김일성의 인민위원회로부터 일확천금을 공짜로 선물 받은 행운아들(who?)은 그 후손들까지도 대한민국 발전의 혜택을 모두 누리고 높은 출세까지 하면서도 북한체제의 붕괴 시에는 신분노출로 생명이 위험하다는 암시/협박으로 북한의 세습독재에 충성을 강요받음으로서 대한민국사회에 끈임 없는 불행을 초래해 온 암이 되고 말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름이 알려진 이 땅의 ‘소위 민주 투사’들이 북녘 동포의 인권과 민주화에는 철저히 침묵하면서 오히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 독재자로 몰면서 대한민국의 건국과 정통성까지 부정하는 기이한 현상은 의문의 대상이며 철저한 관찰과 감시야말로 적화방지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5. 38선 이남에서도 북한식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따르자는 주장이 컸으나 사유재산개념에 투철한 미군정은 이를 허용할 수 없었음으로 남북의 동포들에게 감사의 대상이었던 미군이 일본군을 계승한 점령군으로 매도되었고 대한민국까지도 미국의 식민지라는 선전선동이 통했던 과거사도 역사교육으로 깨우쳐야 합니다. 이승만 박사는 제헌국회의원선거(48.5.10)로 선출된 대한민국 초대국회의 의결을 거쳐 당시 토지가격의 80%를 지주에게 인정해 주고 소작농들은 3년에 걸쳐 그 대금을 지주에게 분납하게 하는 유상인수 유상분배(사유재산 보호)정책을 국회의결을 통해 실현함으로서 오늘 날의 자유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토대를 마련했던 것이며 남한의 농민들은 북괴군의 6.25 불법 남침 시에도 자신들이 지켜야 할 사유재산이 있었기 때문에 용전분투를 했던 것입니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유상인수 유상분배의 선견지명이야말로 하늘의 축복이었음을 온 국민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6. 필자는 4.3위원 사퇴 후에 1948.5.8일자의 제주발 동아일보 기사에서 “목포까지 김일성군대가 래도 했다. 곧 토지의 무상몰수 무산분배가 시작되니 친일경찰을 사살하라”는 선전선동이 통했음을 발견했고 당시 경찰관의 살해 현상금까지 걸렸던 사실을 확인(순경:1만원, 형사:3만원, 총경: 100만원, 당시 쌀 한가마니 300원)했습니다. 48년의 5.10 제헌국회의원의 선거를 거부했던 4.3무장폭동의 배경에 북한의 토지개혁과 비밀화폐개혁이 있었음을 확인한 필자는 이 사실이야말로 대한민국 국군의 명예회복과 사기진작을 위한 필수정보라는 생각에서 제 나름의 전파노력을 해 왔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7. 5.10선거를 거부했던 4.3 무장 폭동의 결과로 제주도에 할당된 3명의 국회의원 중 투표율 저조로 1명만 당선되고 나머지 2명은 다음해의 재선거에서 선출되었고 남과 북의 국회의원 총수는 300명 (인구비례로 남 200명, 북 100명)이었으나 북한의 선거불참으로 제주도 2명을 결한 198명의 초대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제헌절 1948.7.17) 공포했던 사실도 온 국민이 확실히 알아야만 합니다. 토지개혁과 비밀화폐개혁까지 단행했던 김일성의 인민위원회는 사실상의 국가였기에 UN감시하의 남북 자유총선거(5.10선거)를 거부했으며 대한민국 건국(48.8.15) 3주 후인 9월 9일에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나서는 이승만 박사가 단독정부를 먼저 구성하여 민족을 배반 했다는 억지 선전선동을 해 왔던 것입니다. 사실상의 민족배반자는 지주와 농민들을 시차를 두고 모두 배반했던 김일성이었음에도 이 사실조차도 중고교생들의 역사교과서에는 반영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8. 필자는 김정일이 6.25남침 직전까지의 대남공작을 공식인정 및 찬양한 사실을 4.3위원 사퇴 후에 발견하고 놀라야 했습니다. 6.25남침 이틀 후에 간첩죄로 처형(50.6.27)되었던 “성시백”이 사망 44년 후인 97년 5월 26일자의 노동신문에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로 대서특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조선은행권을 서해를 통해 선박으로 운반했던 대북무역상이었던 것입니다. 이미 10년이 지나고 있었지만 이 97.5.26의 노동신문 특집보도야말로 국가안보를 위한 절대필수 정보였기에 그 때부터 “공화국 영웅1호의 대남공작”, “대한민국의 위기시작은 1997년 5월 26일”등의 글로 세상에 알렸으나 언론과 정보기관은 침묵하였습니다.



9. 이 침묵 속에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김정일이 공식인정/찬양했던 대남공작의 즉각 중단조차 공식요구 하지 않고 두 차례의 정상회담(6.15, 10.24)을 이미 추진했던 것이며 그 햇볕정책의 결과로 오늘 우리에게 돌아 온 것은 혈맹의 우방인 미국 국민들까지도 북한 독재권력 집단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함께 받게 되었다는 기막힌 사실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97.5.26 대남공작 찬양 특집보도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5.18 사건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두 번 째 판결(97.4.17)로부터 불과 49일후였다는 사실에 특별한 관심이 요망됩니다.



이 49일의 시차가 무엇을 의미했겠습니까? Systemclub 지만원 박사의 15년 연구결과와 참깨방송 김종환 대기자의 현지답사보도/대담 그리고 탈북 작가 이주성씨의 ‘보랏빛 호수’ 등으로 80년 5.18 당시의 북한 특수군 대규모 침투 공격행위는 이미 널리 알려진 오늘이지만 97년 5월 당시의 김정일은 숨어있는 공로가 북한에 있음을 강조한 “신호탄”이었다는 것이 (전)4.3위원의 판단이며 주장입니다.



97.5.26 이후 북에 무상 제공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일단 접어두고 우선 닥아 온 평창올림픽에서 김정은의 요구가 무엇인지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의 확실한 폐기약속 없는 북한 팀의 참가는 결코 환영할 수 없을 것이며 만일 참가하는 경우에도 저들의 대남공작활동에 국민 각자가 발휘하는 경계와 감시의 눈초리가 강력해야만 적화방지의 구국이 가능할 것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이상 9개 항목의 적화방지 구국위한 필수정보가 가정과 직장과 마을과 학교에 널리 알려져서 적폐청산(?)의 깃발아래 70여 년 전의 김일성 인민위원회 활동을 연상시키는 공포분위기부터 깨끗이 사라지기를 염원합니다. 우선 우파 정당내부의 패거리 싸움부터 중단되어야 합니다. 북의 공작에 눈감은 채 서로 싸우다가는 모두 공멸이기 때문입니다. 애국가를 못 부르게 되고 태극기도 내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승만 건국대통령께서 강조하셨던 “뭉치면 살고 혜지면 죽는다.”의 경구를 온 국민이 명심하여 단합된 지혜로 우선 닥아 온 평창올림픽부터 무사히 마치기를 바라며 국방부 위촉의 4.3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의 참 민주투사는 대한민국 국군이었음을 주장해 왔기에 앞으로도 영원히 대한민국을 튼튼히 지켜 갈 육해공군 및 해병대 후배 현역 장병들의 무운장구를 하늘에 빌며 화이팅을 제창합니다. 대한민국 현역장병 파이팅! 대한민국 향군 파이팅!! 그리고 주한 미군 파이팅!!! 입니다



2018.1,12.15:00


(예)육 소장


(전)4.3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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