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한광덕 작성일 : 2016-11-03 조회수 : 270
대한민국 자유시민! 망국의 함정으로 빠질 것인가?  

   
                    
최근, 헌정질서파괴에 동원되는 각종 불순세력들의 활동이 억제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적화의 함정에 빠져 끝내 김정은 독재를 뒤집어쓰게 된다는 국가불행의 악몽을 떨치지 못해 밤잠을 설치며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목숨을 걸고라도 망국은 막아야한다는 절규입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6.25잿더미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우뚝 세운 것은 세계가 놀라는 기적중의 기적으로 온 국민의 자랑임에도 불평과 불만의 자극으로 나라를 망국으로 몰아가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으니 오호! 통재라! 이 국가불행의 씨앗이 어디에서 뿌려진 것입니까?  
 
사전에도 없는 ‘국가불행의 씨앗’이란 말을 썼습니다. 35년 군에 몸담고 예편 후엔 3년 동안 4.3위원 임무를 수행하다가 왜곡된 4.3진상조사 보고서(보고서작성 기획단장: 당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현 서울시장 박원순)의 채택을 완강히 거부하다가 막아내지 못한 채 사퇴를 해야 했던 육군 예비역 장교의 고통과 고뇌에서 잉태된 표현으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씨앗은 북한 동포들이 새빨간 거짓말에 ‘완전히 속았다’는 사실입니다.  ’완전히 속았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이 몰라서 ‘불행의 씨앗’이 켜졌습니다. 38선 이북에서는 소련군정하의 인민위원회(46.2.8, 김일성 위원장)가 단행한 무상몰수/무상분배 토지개혁(46.3.5)으로 북한에서는 한 때 스탈린/김일성 만세소리가 넘쳐났었습니다.  
 
그러나 6.25 정전 이후의 집단농장화 조치로 농민들은 다시 분배 받았던 자기 땅의 노예로 돌아가 배급에 의존함으로서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에는 300만이 굶어죽고 오늘에 와서는 3만이 탈북을 계속하면서도 거리에 나와 소규모의 ‘촛불시위’ 한번 도 못하는 인권부재/자유부재의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지 않았습니까?  세습독재체제는 최악의 국가불행 맞지요?  세습독재를 위해서는 인권/자유부재의 무한 독재가 불가피한바, 북한은 그 연장선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온갖 선전과 선동을 감행함으로서 오늘도 촛불시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씨앗은 38선 이남에서도 북에서처럼 스탈린/김일성만세를 숨어서 불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 불행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토지의 무상몰수/무상분배를 단행했던 김일성의 인민위원회는 조선은행권의 비밀화폐개혁(47.12.1, 당시 남북공용)을 단행한바, 남쪽에서는 이 사실을 즉시 파악하고 대응치 못했던 결과로 상당기간 폐기된 북한화폐가 공작금으로 전환되면서 또 다른 국가불행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용도 폐기된 북한 화폐를 선박으로 운반했던 ‘김일성 특사’가 존재했음이 97.5.26의 노동신문 특집보도로 들어난 바, 그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아 팔자를 고쳤던 행운아(?)들이 절대충성을 강요받는 종북 원조가 됨으로서 우리 사회의 불평과 불만을 여러 형태로 확대하기 때문입니다. 대북무역상으로 위장했던 ‘김일성 특사’(성시백)는 ‘조선중앙일보’와 ‘광명일보’등의 10개 신문사를 운영하는 등의 막강한 영향력 행사의 공로로 사후 북한 영웅 1호가 되었던 바, 그의 찬양보도(“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 Google에서 제목으로 탐색됨)가 97.5.26에 노동신문에 대서특필되었던 것임을 강조합니다. 우리 언론은 침묵했습니다!
 
4.3사건 당시의 ‘조선중앙일보’ 기사를 당시의 타 신문 몇 개와 비교만 해도 그가 4.3사건에도 개입했음을 증명할 수 있었기에 4.3위원 사퇴 4년 후에 97.5.26의 특집보도를 처음으로 접했던 저는 그 때부터 이미 10년이 지나고 있었던 이 특집보도에 대한 관심촉구가 대한민국 안보의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전파노력을 계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스템 클럽의 지만원 박사가 15년의 연구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5.18은 북한의 침략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조차도 신문과 방송을 통해 공론화 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http://rokfv.com/jboard/view.php?code=1&uid=2228&page=1&key=&keyfield=  
 
우리의 현실이 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4.3사건을 연구했던 대한민국 예비역 장교로서 목숨을 걸고 주장합니다. ‘북한 영웅 1호’로부터 다량의 북한화폐를 제공받았던 후손들이 대한민국 발전의 혜택은 다 누리면서도 북한이 망하는 날에는 신분노출로 살 수 없게 된다는 절박감에서 북한붕괴를 막는 노력 때문이며 무서운 것은 북한과의 내통가능성입니다.

내통의 가능성은 소위 대한민국의 ‘민주화투사’라고 자찬하는 사람들이 북한사회의 인권신장과 민주화에는 일체 무관심하고 침묵하면서 오히려 대한민국의 민주화/인권신장과 산업화 발전의 1등 공신인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6.25의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까지도 친일파로 몰아가는 억지행동에서도 감지되지 않습니까?    사퇴한 4.3위원으로서 감히 주장하는 또 하나의 중대 사실은 5.18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제 2차 판결(97.4.17) 직후에 북한 영웅 1호의 찬양보도(97.5.26)가 있었다는 연계성입니다. 5.18민주화는 북의 공로였으니 적절히 보상하라는 신호탄이었다고 저는 암시해 왔습니다.

대통령 김대중은 이 사실에 침묵한 채 63명의 미전향장기수를 북송해 주었고 대통령 노무현은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고 주장하면서 한 차례씩의 정상회담을 하며 일방적 퍼주기에 전념했던 것이니 그 당시 이 두 대통령의 비서실장은 누구였으며 오늘 현재는 어느 위치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 지? 국민들의 관심이 지향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인류최고의 가치인 UN에서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을 놓고도 북한에 대하여 굴종적인 자세를 보였던 대통령 출마 예정자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최근의 최순실 파문으로 덥혀지고 있는 현실을 통탄하면서 이 기회에 1980년의 광주 5.18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2차판결(97.4.17)직후에 있었던 북한의 대남공작 찬양보도(97.5.26)에 대한 오랜 침묵이 크게 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국가불행 발아의 씨앗에 눈을 뜨고 북한 영웅 1호의 대남공작 찬양보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기만 하면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파문으로 촉발되고 있는 광화문 촛불시위에서의 분노표출도 속히 진정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조국의 땅과 바다와 하늘을 지키고 있는 현역의 육해공 및 해병 장병들도 예상되는 각종도발에 경계의 큰 눈을 뜨게 되어 각자의 임무완수에 더욱 매진할 것을 확신하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릅니다.   2016. 11.8   (예)육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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