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한광덕 작성일 : 2016-05-24 조회수 : 285
대한민국의 참 민주화 투사는 과연 누구였는가?

대한민국의 참 민주화 투사는 과연 누구였는가?

국군과 경찰관의 제복은 생명까지도 나라에 바친다는 명예의 상징이기에
의사나 간호사의 의복보다도 더욱 성스럽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며
그 명예가 존중될 때 평화가 깃들고 평화가 지켜질 때 발전도 가능합니다.

36년의 일본식민통치를 박차고 난 후의 반 토막 건국에서 6.25남침을 막아내고
발전하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오기까지는 온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형언할 수 없는 희생과 고통에 눈물겨운 온갖 비극까지도 따라야만 했었습니다.  

이 형언불가의 고통과 비극은 대한민국을 발전시켜왔던 기초토양이 되었었기에
바야흐로 온 국민들이 서로 서로 위로와 격려를 하며 자랑스러운 태극 깃발 아래
더욱 큰 하나로 뭉칠 수 기회였는데도 불구하고 2,000년의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국군과 경찰을 양민학살주범으로 몰았던 결과로 오늘의 광화문 네거리에는 군복입고
활보하는 휴가 장병들 모습이 거의 보이질 않고 경찰관들이 시위 군중들의 매를 맞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하는 장소로 변했으니 도대체 이를 어찌해야만 한다는 말입니까?  

국군과 경찰이 양민학살의 주범이 결코 아니었음을 주먹을 쥐고 감히 주장합니다!!
대한민국의 참 민주화 투사는 차라리 6.25때 공산군 남침을 막아낸 6.25 참전용사 들이었었고 월남에서 국군의 명예를 빛내며 고속발전의 여건을 제공한 월남참전 용사들이였다고 광화문 거리를 막아놓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싶어지니 이것이 어느 한사람만의  울분입니까?  

4.3 폭동 당시의 현지신문보도 몇 개만 알려졌어도 국군/경찰의 명예는 지켜졌을 텐데 4.3보고서작성 기획단장 임무를 맡았던 ‘아름다운 재단’상임이사(현 서울특별시장)이 국방부/경찰자료를 무시한 왜곡된 보고서를 작성하여 당시대통령의 정부차원사과까지 유도해 내어 나라를 지킨 국군과 경찰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결과였습니다!  

5.10 제헌국회의원 선거 이틀 전인 48년 5월 8일자 제주발 동아일보와 타 신문에는 “목포에까지 김일성군이 내도했으니 안심하라”는 거짓말 선전/선동이 나타나 있고 제주남로당 각급 인민위원회에서는 스탈린과 김일성을 명예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토지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시작되니 친일경찰을 사살하라”는 선동까지 있었던 바, 순경 1만원, 형사 3만원, 총경 100만원”등의 살인현상금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당시 쌀 한가마니 가격 300원)  

  4.3진상조사보고서의 어디에도 위 사실은 기록되지 않고 그 선전/선동으로 발생된 무장폭동의 불가피한 진압과정에서 수반된 주민들 희생만을 강조하며 국군과 경찰을 양민학살주범으로 몰아갔으니!! 오래오래 국방부위촉 4.3위원의 울분으로 남았습니다.  

오늘, 오래된 울분을 다시 왜침은 금년의 5.18 36주년 정부 행사장에서 행사주관부서장인 국가보훈처장관이 철지난 행진곡의 합창/제창문제로 추방을 당했던 광경때문입니다. 36년 전의 5.18 당시에도 북한 특수전 부대요원들의 은밀 침투 대남공작이 대규모로 진행된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이런 철면피한 불상사건이 일어나다니!!
  
5.18관련 대법언의 2차 판결(97.4.17)직후에 북한은 그들의 대남공작활동을 노동신문 특집보도로 공식인정/찬양(97.5.26)했던 바, 이는 5.18에 북의 공작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신호탄이었음에도 이 사실조차도 묵인 한 채 이미 두 차례의 정상회담까지 추진되었음을 상기하며 이제라도 1997.5.26의 특집보도에 대한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합니다:“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렬사”(Google에서 “제목”탐색)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이 있음으로 48년의 4.3과 80년 5.18에서 희생당한 분들과 후손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야 하겠지만 그 배경에 북한의 대남공작이 작용했던 사실도 강조했어야만 했는데 남북의 화해(?)를 위해 침묵함으로서 오늘의 불가사의한 정국으로 확대됨을 개탄하며 경계의 일대강화를 촉구/촉구합니다.  

경계에 눈만 뜨면, 동구의 여러 나라를 소련위성국화 했던 스탈린방식의 거짓선전선동에 북한 동포들이 속았던 결과가 그 후 한반도 비극의 출발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우리 고교생들도 더 이상 전교조선생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고  세상의 앞날을 멀리 내다보았던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혜안에 탄복하게 되면서 자민주주의의 길을 함께 결어온 혈맹의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고마움도 새롭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일본식민통치 종식도 미국에 대한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서 출발했기에 해방에 대한 고마움도 미국으로 지향되는 것이 당연했음에도 소련군의 토지무상몰수/분배에 대한 선전/선동 연장선에서 미군은 일본군을 계승한 점령군으로 매도되면서 소련군이 민족의 해방군으로 한 때 통하던 기현상도 말끔히 바로잡아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맹호 제1진의 포병소위로 월남전 참전 중, 월맹정규군 대대의 기습공격으로 중대장과 다수병사들이 전사와 부상을  당했던 66년 8월 9일 밤의 월남 ‘두코전투’에서 아군의 포탄 고갈상태에서 미군 포병 2개 포대의 직접 화력지원과 배속된 미군 전차 1개 소대의 즉각 지원을 받으며 죽음의 순간을 넘겨야 했던 월남참전 용사의 가슴 속에는 미국과 미국군대는 대한민국과 국군의 영원한 친구!! 라는 교훈이 새겨졌습니다.  

군 전역 후 4.3위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에서 온 국민과 함께 나누고 싶은 중대한 첩보는 미/소 군정시절에 북쪽의 농민들은 토지무상분배로 스탈린/김일성 만세를 불렀던 반면에 남쪽에서도 비밀리에 단행된 북한의 화폐개혁(47.12.1)으로 용도 폐기된 조선 은행권다량을 공짜로 제공받고 스탈린/김일성만세를 숨어서 불렀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며 이들의 대부분이 절대종북의 원조가 되어 활동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에게는 북한붕괴가 곧 개인 신상정보의 노출로 직결된다는 절박감에서 민주투사 의 명예를 얻고도 북한의 인권과 자유에는 침묵을 강요받았고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며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을 양민학살주범으로 몰아가는 선봉에 설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경계의 큰 눈을 떠야만 할 것입니다. 
  
온 국민들이 경계의 큰 눈만 뜨게 되면 대한민국의 참 민주화투사는 6.25의 공산침략을 막아 낸 6.25 참전용사와 월남참전 용사들이고 그리고 오늘 현재 군복을 입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현역의 국군장병과 경찰이라는 사실이 보다 명확해 질 것입니다. 

두 손 모아 비는 것은 우리들의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힘껏 가슴을 펴셔서 광화문 네거리에 매 맞는 경찰관부터 사라지고 단정한 군복으로 휴가를 나와서 가슴을 펴고 활보하는 국군장병들의 모습이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보이는 것이며 온 국민들도 휘날리는 태극기 깃발 아래 크게 하나로 뭉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참 민주화 투사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두서없이 줄입니다.

2016. 5.24일 아침에  경기도 용인 솔내 마을에서   
(예) 육소장  (전) 4.3 중앙위원회 위원(2003. 10.15일 사퇴)
코멘트 작성자 :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