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한광덕 작성일 : 2015-05-24 조회수 : 920
대남사업관련 김일성 비밀교시(1)


                    대남사업관련 김일성 비밀교시(1)
 



(저자 김 용규 소개)


전 인민군 대좌, 김일성 대학 졸업, 
6차의 대남 공작임무수행 공로로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 수령.1976년 9월 20일, 7차 남파시 귀순 권유에 불응하는 조원 2명을 사살하고 단독의거, 귀순 후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안보행정학과 졸업 치안본부 및 경찰대학 공안문제연구소등에서 근무
현제 3세계 전략연구소 소장저서 : 시효인간 (단행본) 소리 없는 전쟁(대남공작 비화소설)외 다수필자가 그를 처음으로 만난 곳은 자유시민연대의 한 모임에서였으며 그는 동아일보에
투고했던 “영화속 ‘赤旗歌’ 너무했다” 란 글을 읽은 독후감을 이야기하며, 한권의 팜플렛을
건네며 일독을 권했습니다.“실미도” 제작배경에는 "김일성의 비밀교시"가 있다고 보아야 하니 팜플렛의 내용 중 특히
“문예활동”부분을 읽어 보라고 주문하였습니다.
“대남사업관련 김일성 비밀교시”는 사회의 주요 인사들과 주요일간지 및 월간지에 배포됐음에도
기사화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빨리 알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되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제 자신의 실명으로 올리는 결심을 하였습니다.www.vietnamwar.co.kr을 방문하시는 전우들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이 내용이 온 나라에 전파되기를 바라며, 내용을 필요에 다라 선택해서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해준 서현식 전우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2004. 6.20. 예비역 육군소장전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03.10.15사퇴)


추신:
2004년에 올렸던 이 “비밀교시”는 알 수없는 이유로 vietnamwar.co.kr에서 327개의 다른 글들과 함께
2010년 말에 모두 사라지는 고통이 있었으나, 상당한 세월의 경과 후 이 글들이 google.com에서 ‘한광덕’
을 탐색하면 통째로 나타나는 기쁨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라질 때 까지 실렸던 답 글들이 지워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바톤을 받은 rokfv.com의 인강칼럼에서 새롭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총총, 


2015.5. 23일, 
경기도의  솔내마을에서   인강 배


 
   동 북 아 전 략 연 구 소
 
 2003년 10월   
 
목         차
 


Ⅰ.  개   요
   
1)  문제의 제기    
2)  비밀교시와 당 정책
Ⅱ. 혁명전통계승 전국혁명     
1)  후계체제확립      
2)  전국 혁명     
3)  전쟁 준비      
4)  남북 대화
Ⅲ.  지하당 공작         
1)  통일전선 공작       
2)  상층 공작      
3)  노동계 침투       
4)  국군와해 공작        
5)  법정 옥중투쟁       
6)  문예활동       
7) 교포공작       
8)  해외공작       
9)  범민련 운동      
10)  비밀단속      
11)  결정적 시기


Ⅳ.  결 론 ○ 김정일의 군정 간부회의 어록○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



Ⅰ.  개  요
 
1)  문제의 제기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 전술에 관한 문제는 이미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무수히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극히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좌·우 대립의 틀 속에서 흔히 흑백논리로 일관되기가 일수였고, 학술적 연구라는 명분 아래 그 진수가 왜곡 전달됨으로써 과거에는 물론. 오늘 현재까지도 정부당국의 대북 정책 수립과 국가안보체계 확립에 많은 혼돈을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후에도 조국통일 3대 헌장 관철,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보안수사대 해체 등 북한의 대남 공세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일각에는 다소 <변화>를 보이고 있는 북한의 겉모습에 환상을 가지고 <햇볕정책>에 위안을 느끼며 통일이 다 된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을 모르는데서 비롯되는 무지의 표현이며 극히 위험한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 송두율 교수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공방 과 그것을 <남북관계>로 미봉 하려는 정치권의 작태는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북 맹 증의 대표적 표현이다. 물론 송두율 교수를 감옥에 가두는 그것이 능사로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일부 정치권에서 미봉하고 있는 것처럼 덮어놓고 관용을 베푼다는 것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전 조선혁명이라는 미명 하에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는 북한 노동당 규약은 아직 그대로 살아있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송두율 교수는 이 투쟁에서 30여 년 동안 활약한 핵심공작원이다.


  누구나 노동당에 입당할 때에는 당과 수령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입당선서를 하고 입당한 다음에는「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입각하여 임무 수행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신임을 받으며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송 교수가 18 차례나 평양을 내왕하며 수십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고, 김일성 장례식에 장례위원으로 참배했다는 것은 그만큼 충실했다는 증거로 된다. 그러니 만큼 송 교수는 법앞에 응분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 국회에서는 그런 거물 공작원을 놓고 정치 공방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주지의 사실과 같이 북한의 대남 전략 전술에 대해 학술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당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데서, 특히 남조선 혁명과 통일정책에 관한 중요한 전술적 문제일수록 <김일성 비밀교시>에 따라 극비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문헌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북한의 대남 공작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김일성 비밀교시>를 잣대로 하여 그들이 구사하고 있는 전략 전술의 진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1968년 7월 8일,  노동당 3호 청사 부장회의에서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역설한 바 있다.“동무들은 우리 당의 전략 전술적 문제들에 대하여 공개해야 할 것과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 공개해서는 안될 것과 공개해도 무방한 것들을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전략전술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곧, 군사행동에서 작전기밀을 누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에서 패배를 자초하는 관건 적인 문제로 됩니다···통일전선전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당이 남조선의 민족자본가와 부농, 종교인들을 일시적인 전술적 동맹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누가 우리하고 손을 잡겠다고 하겠습니까? ···  그러므로 지하당 통일전선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히 다루어야 하며 당내에서도 극비에 붙여야 합니다.”   위 인용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전략전술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군사행동에서 작전기밀을 누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의 패배를 자초하는 관건 적인 문제로 되는 것만큼 공산주의자들은 당의 전략 전술적 문제들에 대하여 각별한 보안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공개해서는 안될 극비 사항에 대해 각별한 보안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활용하고 있는 북한의 공개, 일반화된 공식문헌에서는 그들이 공개해도 무방한 그 이상의 전술적 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북한의 대남 공작 전술을 연구함에 있어서 그들이 공개, 일반화하고 있는 자료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귀중한 1차 자료라 할지라도 대공 정보학적 차원에서 재고되어야 하며, 역사적 경험 자료들을 역 추적하여 그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대한민국의 안보상황이 오늘처럼 이렇게 위태롭게 된 것도, 북 핵문제를 비롯해 반미 자살테러가 국제적인 초미의 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도 바로 김일성 비밀교시가 그대로 관철된 결과이다.


  이처럼 김일성 비밀교시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문헌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북한의 비밀교시 자료들을 수집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료의 전술적 가치로 볼 때, 충분한 자료가 수집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를 그대로 사장시킨다는 것도 전문가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절박한 사정으로부터 당 연구소는 그간 여러 경로를 통해 자유를 찾아 월남 의거한 전 연락부 지도핵심 공작원들의 진술과 각종 연구 지에 인용된 <김일성 비밀교시>를 분야별로 정리,「북한」지(2001년 10, 11, 12월 호)에 연재함으로써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많은 전문가들의 권유와 호응에 힘입어 이번에는 김정일의 비밀 어록 등보다 많은 자료들을 수집 보강하여 소책자를 발간하게 되었다.  미흡하나마 이 소책자가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 활동에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서두에 대신한다.2) 비밀교시와 당 정책   국제공산주의 운동역사를 더듬어 볼 때, 그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수령, 당, 계급간의 관계에서 당은 혁명의 참모부이며 수령은 당(계급)의 <최고 뇌수>라는 맑스-레닌주의의 명제 아래 수령의 지위와 역할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북한에서는 다른 모든 공산국가와는 달리 수령의 권위가 절대화, 신격화되고 있으며 김일성 주체사상 외에는 그 어떤 사상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당이 국가 위에 군림하고 수령의 교시가 곧 법으로 통한다. 모든 선거는 당에서 추천한 단일 후보에 대한 찬반투표로 실시되며 100% 참가 100% 찬성으로 당선된다.  
  당과 정부의 모든 의사를 결정하는 당 대회라든가 당 중앙 전원회의 등에서도 모든 사안이 김일성의 혁명사상과 이론에 기초하여 보고서가 작성되고 보고에 대한 요식 토론을 거쳐 만장일치로 가결되며, 공개해서는 안될 주요 시책들은 김일성의 <비밀교시>에 따라 비밀리에 집행되고 있다.
  특히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목표로 하는 대남 공작은 법적 통제 속에서 남한 정권을 전복하는 혁명전쟁인 것만큼 비밀사업 원칙에 따라 비합법으로 전개되게 된다.  이로부터 남북 대화를 비롯한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과 전술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연구활동에서 김일성 <비밀교시>를 숙지하는 문제가 필수적 요구로 제기되지 않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김일성 <비밀교시>에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하며 그것을 잣대로 하여 북한의 모든 전략 전술적 의도를 심층 분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김일성의 비밀교시가 곧 그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열쇠로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공개 일반화하고 있는 공식 자료에 매달려 나타난 현상을 액면그대로 보게된다면 본의 아니게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은 물론, 그 어떤 연구성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Ⅱ. 혁명전통 계승   김일성의 <비밀교시>는 혁명발전의 매 단계, 매 시기마다 정치·경제·군사·문화·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비공개로 행해지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지도핵심 간부가 아니고서는 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한 <김일성 비밀교시> 자료를 입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본 소책자는 혁명전통 계승과 남조선 혁명, 조국통일에 관한 <비밀교시>를 요약 정리하는 데 한정시키지 않을 수 없음을 미리 고백해 둔다.


1) 후계체제 확립   북한에서 후계자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시기는 1973연대 초엽이었다. 소련에서 스탈린이 사망된 후 후르쇼프가 스탈린 개인숭배주의 배격운동과 함께 그의 묘까지 파헤친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하자 김일성은 조선에서 제2의 후르쇼프가 나타날 것을 우려하여 연안파를 비롯한 당내 반대파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무소 불 위의 1인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하지만 김일성 가계 우상화에 회의를 느끼는 이완 감정은 권력 층 내부에서  조차 하루도 가셔질 날이 없었다.  남노당 숙청, 연안파 숙청, 갑산파 숙청에 이어 1969년 1월, 인민군 당 4기 4차 전원회의에서 인민무력부 내에 군벌주의 종파를 형성했다는 이유로 김창봉, 허봉학, 최광, 김양춘, 최민철, 김정태 등에 대한 대대적인 군부 숙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72년 2월, 김일성이 둔부 수술 관계로 병실 침대에 누워 있을 당시에도 내각 부수상 김광협, 사회안전부장 석산 등 그 측근들은 문병도 가지 않은 채 주연 상을 베풀어 놓고 후계자를 운운하는 등 지배층 내부에서 수령의 권위를 훼손하는 경향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러자 김일성은 1973년 2월, 당 중앙 정치위원회를 긴급 소집하고 후계자 옹립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최근 소련 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이 심한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것은 후계자를 잘 못 선정한 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공산주의혁명, 이것은 한 두 대에 이루어 질 수 없는 노동계급의 숙명적 과제이며 역사적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척한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수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건재해 있는 동안에 그 위업을 계승 할 수 있는 후계자를 잘 선정하고 그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공고하게 다져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련과 중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그 어떤 풍파에도 끄떡없이 혁명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스딸린은 말렌꼬프를 후계자로 선정했고, 모택동은 임표를 내세웠기 때문에 혁명의 대가 끊기게 된 것입니다. 혁명의 대를 이어나가자면 혁명의 2세, 즉 젊은 세대를 후계자로 내세워야 합니다.


  혁명 1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권력에 탐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당내에는 아직도 권력을 넘보는 종파들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4기 4차 인민군 당 전원회의에서 폭로된 바와 같이 창봉이는 인민무력부장 겸 내각 부수상이라는 직위를 남용하여 2인자로 자처하면서 인민무력부 내에 소 왕국을 꾸려놓고 자기가 후계자라고 떠들고 있었는데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또 어디 있습니까?···내각 부수상 김광협이도, 사회안전부장 석산이도 역시 같은 놈들입니다.  이 자들은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 술자리를 벌려놓고 다음은 누구차례다 하면서 내가 죽기만 기다리고 있던 놈들입니다. 그래서 이 자들이 항일투사이지만 묵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 후계자 문제가 거론되니까 일부 동무들이 조직담당비서를 들먹이고 있는 것 같은데 김영주는 내 동생이지만 혁명 1세이기 때문에 안됩니다.  혁명1세가 권력을 넘겨받으면 권위도 서지 않고 종파를 극복하기도 어렵습니다.    지난날 우리가 남로당 파를 비롯해서 연안파, 갑산파 그리고 군부 종파들로부터 얼마나 거센 도전을 받았습니까?


  그놈들이 감히 나한테까지 도전장을 던졌는데 누구를 무서워하겠습니까?···나도 설흔 네 살에 당수가 됐지만 나이 30대이면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인 혁명 2세들로 후계체계를 꾸려주고 권위도 세워주고 자리를 공고하게 다져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혁명의 대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후계자로 내세워야 하겠습니까? ··· 솔찍이 말해서 내가 마음놓고 권력을 넘겨줄 수 있는 그 적임자는 정일이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정일이 한테 는` 이러저한 말성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렸을 때 일이고 조금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정일이는 배짱도 있고 끝까지 해 보겠다는 혁명가 적 기질이 있습니다. 모자라는 것은 가르쳐주고 채워주면 됩니다.  정일이를 후계자로 추대하고 그 주변에 우리 항일투사 2세들을 앉혀놓고 우리가 옆에서 지켜주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나보다도 정일이를 절대화하는 데로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일단 후계자로 추대한 다음, 그의 권위를 헐뜯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에 대한 조직적 통제를 강화하고, 그들에게 잡생각을 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만들어 2일 생활총화를 제도화하고, 유일사상체계에 어긋나는 온갖 불순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인 날카로운 사상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 정권기관 간부들은 물론,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매일 초상화 앞에서 선서를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도록 함으로써 항상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하고 오로지 당과 혁명을 위하여 대를 이어가며 충성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돌이켜 볼 때 해방 후 반세기에 걸치는 북한 노동당의 역사는 각 파벌간에 영도권을 쟁탈하기 위한 끊임없는 패권 다툼과 피의 숙청으로 얼룩진 수난의 역사였다. 


1당 독재의 그 무서운 철권통치 하에서도 김일성 일파로 하여금 그토록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숙청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남노당 파를 비롯한 연안파, 소련파 등 당내 반대파 세력들의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사실들이 그대로 입증해 준다.  1953년, 남로당 숙청에 이어 8월 종파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연안파 숙청, 소련파, 갑산파, 군부숙청 등 수많은 정적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드디어 김일성 1인 독재체제를 확립했지만 북한의 권력 층 내부에서는 심지어 항일투사들 속에서까지 김일성 족벌 세습체제와 당의 유일사상체계에 반기를 드는 세력들이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이렇게 항일투사라는 측근들까지도 믿을 수 없게 되자 김일성은 조선에 제2의 후르쇼프가 나타날 것을 우려하여 급기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소집하고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옹립하기 위한 각본을 꾸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김일성의 이러한 각본에 따라 정치위원회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추대, 결정한 다음 1973년 2월에 그를 당 조직, 사상담당비서로 임명함과 동시에 김일, 최용건, 최현, 박성철 등 자기 측근의 2세들을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및 정무원의 부장, 부 부장급으로 등용하고 김정일의 후계체계를 뒷받침하는 3대 혁명소조를 급조하여 김정일의 권력체계를 다져 나갔다. 


이렇게 하여 김정일은 전 세계 공정한 여론의 비난과 조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그의 후광을 업고 당과 군, 행정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쥔 절대 권력자로서 김일성에 버금가는 <향도의 별>, <통일의 구성>, <떠오르는 태양>으로, 김일성 족벌 왕조의 황제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2) 전국 혁명   공산주의혁명 논리에 의한다해도 자본주의 제도를 타파하는 노동계급의 사회주의혁명은 변증법적 원리에 따라 자본주의사회의 내적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대립물의 투쟁으로서 남한혁명은 어디까지나 남한사회 내부의 동인에 의해서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공산주의자들은 남한혁명을 전 조선혁명의 한 부분, 즉 전 조선혁명에 복무하는 지역혁명으로 간주하고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기지에 의거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는 명분아래 해방 후 오늘까지 대남 혁명 수출을 집요하게 시도해 왔다.  그러나 6·25 동란을 거치면서 1952년 말, 53년 초에 이르러 남한지역에 잔존해 있던 이현상 빨찌산부대와 남도부 빨찌산부대들이 일망 타진되고, 다른 한편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자행된 남로당 숙청으로 말미암아 북한의 대남 공작 역량은 전무한 상태로 떨어졌다.  이로부터 북한은 휴전 이후 빈터 위에서 대남 공작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전후 복구건설 시기인데다 경제사정이 어려웠던 관계로 대남 공작에 많은 힘을 기울일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60년 4·19가 일어나자 김일성은 남조선혁명정세가 성숙된 것으로 판단하고 노동당 4차 대회에서 “남조선 현지에 맑스-레닌주의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고 이효순을 국장으로 하는 「남조선사업국」과 그 예 하에 대남공작 전담 부서로 「연락부」, 「문화부」, 「작전부」, 그리고 대남 공작원 양성기지인 「중앙당 정치학교」를 신설하는 등 대남공작 기구를 대폭 확장하고 6·25 당시 의용군으로 월북한 수 천명의 남한 출신들을 공작원으로 선발하여 대남공작을 본격적으로 재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60연대에 들어 대남 공작을 다시 본격화하면서 김일성은 정세가 변화될 때마다 3호청사 부장회의 또는 대남 공작요원들과의 담화를 통해 지하당 공작을 비롯한 통일전선공작, 상층침투 및 노동계 침투, 군 와해공작 등 공작 관련 비밀교시를 내렸다. “우리는 조국을 통일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두 번 놓쳤습니다. 그 한 번은 6·25이고 또 한 번은 4·19입니다. 6·25 때에는 박헌영의 허위보고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4·19 당시에는 연락부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서 놓쳐버렸습니다.  그때 내가 함경도 지방에서 현지지도 하던 도중에 4·19가 터졌다는 보고를 받고 평양으로 달려올 정도로 연락부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4·19는 남조선 혁명정세가 무르익은 징조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4·19와 같은 좋은 기회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동무들도 이런 각오를 가지고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남반부 출신들은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없어서는 안될 우리 당의 귀중한 보배들입니다. 내가 왜 남반부 출신 간부들을 보고 <금싸라기>라고 했겠습니까?···  남반부 출신들의 입장에서 볼 때 조국통일! 이것은 곧 자기 고향을 해방하고 부모 형제 자매들을 구출하는 투쟁과 직결됩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국토의 1/2과 인구의 2/3를 해방해야 할 과업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 주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남반부 출신 간부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남반부 출신 간부들을 가리켜 <금싸라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남반부 출신 간부들이 더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헌신적으로 투쟁하도록 하자면 그들에게 전망 직급도 주고 <금싸라기>처럼 아끼고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반부출신 간부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 투쟁할 수 있습니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아직도 적지 않은 공작 조들이 연고지 공작에 매달리고 있다는데 그런 공작은 가급적으로 삼가 해야 합니다.  연고 선을 이용하는 공작은 처음 발붙이는데는 유리하지만 혈연관계로 얽혀진 조직은 가족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기 일수이며 공고한 조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결론입니다.  때문에 연고지 공작은 엄호연락 거점을 구축하는 것으로 그치고 당 조직관계는 발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지하당 조직공작은 군중들 속에서 대상을 물색 선정하고 원칙적인 교양과정을 거쳐 당원으로 입당시키고 조직관계를 발생시켜야 합니다.”  (1975년 10월 3호청사 확대간부회의)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거두들을 모두 숙청하고 사형까지 시켰기 때문에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는 우리 공화국 북반부에 대해서 배타의식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적들은 이것을 좋은 악 선전 자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무들이 남조선에 내려가서 대상공작을 할 때, 박헌영이 미제의 고용간첩이었다는 사실과 배철이도 3·8선을 넘어 북으로 들어올 때 자 총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북반부에 들어와서 종파행위를 한 그 죄 행을 낱낱이 폭로하고 남로당을 숙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의 사정에 대해 잘 설득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남조선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우리 당의 통일정책과 노선을 지지해 나설 수 있습니다.(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남조선 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머리 속에 박혀있는 공미 사상을 뿌리뽑는 것입니다.  미국 놈들을 무서워하는 공포증을 빼버리지 않고서는 계급의식과 민족의식을 높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동무들이 남조선에 내려가서 공작을 할 때, <프예블로호 사건>이라든가 이번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같은 실례를 들어가며 미국 놈들은 겁이 많은 놈들이고 죽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는 종이 범이라는 것을 잘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번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번에는 미국 본토가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소문을 은근히 퍼뜨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조선 인민들이 더 용기를 가지고 반미투쟁에 떨쳐나설 수 있습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우리가 일제 식민지 통치시기에 나라의 절반 땅만 해방시키자고 항일 무장투쟁을 했겠습니까?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미국 놈들이 남조선을 강점했기 때문에 아직 통일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  결국 조국통일의 관건은 미국 놈들을 몰아내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 놈들이 월남에서 손을 뗀 것처럼 남조선에서 물러나게 하자면 미국 놈들이 골치가 아프도록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주한미군의 야수적 만행과 각종 비인간적 범죄사실을 낱낱이 폭로하고 국제적으로 여론화하는 동시에 세계 도처에서 반미운동을 일으키고 미국 국민들이 반전운동을 일으키도록 해야 합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3) 전쟁 준비   1960연대에 들어서면서 중·소 이념 분쟁이 격화됨에 따라 사회주의진영의 통일단결이 약화되고, 남한에서의 5·16 군사혁명과 쿠바의 카리브해 위기사태 등 국제정세가 긴장되게 되자 김일성은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노선」과「4대 군사노선」,「경제건설과 국방건설 병진 노선」을 제시하고 막대한 예산을 군사비로 지출하며 각종 군수공장을 신설 확장하는 등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후 김일성은 1965년 <통킹만 사태>로 인한 월남전의 확대와 68년 1월 청와대 육박사건, <프예블로호> 나포 사건 등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긴장될 때마다 당 군사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비공개 회의석상에서 전쟁준비를 다그칠 데 대해 역설하였다. “남조선에서 미국 놈들을 몰아내야 하겠는데 그놈들은 절대로 그냥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언젠가는 미국 놈들과 다시 한번은 꼭 붙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전쟁준비를 다그쳐야 합니다··· 


현 시기 전쟁준비를 갖추는데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 전쟁역사에는 수백, 수십 건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지만 미국이 개입하지 않은 전쟁이 없었고, 그 모든 전쟁이 타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었기 때문에 미국 본토에는 아직까지 포탄 한 발 떨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미국 본토가 포탄 세례를 받게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에는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미국 국내에서는 반전운동이 일어날 것이고 거기에 제3세계 나라들의 반미 공동행동이 가세되게 되면 결국 미국 놈들이 남조선에서 손을 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무들은 하루 빨리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자체 생산 할 수 있도록 적극 개발해야 합니다.”  ( 1968년 11월 과학원 함흥분원 개발 팀과 의 담화 ) 


“<프예블로호>가 최 첨단기술로 장비된 미 국가안전국 소속 정보 함이라는 보도가 나가니까 벌써 소련 군사 고문단에서 눈독을 들이고 <프예블로호>를 감식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주문이 왔다고 하는데 절대로 그냥 공개하면 안됩니다.    그 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가지고 얼마나 신경전을 벌였습니까? ···감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더라도 이번에는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야 합니다.  이번에는 소련에서 <프예블로호>를 보기 위해서도 미사일을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968년 4월 국방과학원 확대간부회의)  


“지금 미국 놈들은 <프예블로호>가 나포됐다고 해서 태평양 함대의 군함 32척을 원산 앞 바다에 깔아 놓고 보복을 하겠다고 공갈을 치고 있는데 아직 그 선원들이 우리 손에 잡혀있기 때문에 미국 놈들은 함부로 불질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도 않고 두려워 할 것도 없겠지만 전쟁은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합니다.  이번에 또다시 전쟁이 붙게될 경우에는 그 규모와 가열 도에 있어서 6·25 당시와는 비교도 안됩니다.  설사 전쟁에서 우리가 이긴다고 해도 양쪽 모두 쑥밭이 되겠는데 그 동안 건설해 놓은 거 다 파괴시키고, 한 절반 죽은 다음에 통일을 시키면 뭘 하겠습니까?···  그러나 미국 놈들이 끝까지 전쟁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사생결단을 하고 싸워야 합니다.  이번 전쟁은 우리 민족의 생사 존망을 좌우하는 판 가리 싸움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우리가 진격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말고 진지를 사수해야 합니다.  적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하면 갱도를 짊어지고 퇴각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그 동안 힘들여 구축해 놓은 지하갱도가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현대전은 전방과 후방이 따로 없는 입체전이며 장기전입니다. 현대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은 장기전에 상응하게 누가 더 많은 전략물자의 예비를 조성하느냐 하는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적어도 3년 분 이상의 전략물자의 예비를 조성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실사를 시켜보니까 식량은 6개월 분도 여유가 없습니다. 그 동안 농업위원장이 나한테 허위보고를 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식량배급을 줄여서라도 3연분 이상의 군량미를 비축해야 합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해서는 방어전과 함께 적 후 종 심에 제2전선을 형성하고 배후를 강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보여단 주력부대가 삽 시에 종 심으로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경보여단은 배후를 강타하여 적의 군사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주나 동두천에 있는 미군 기지를 하나 포위하고 미군 부대를 인질로 잡아두는 작전을 시도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번에 보니까 미국 놈들은 죽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는 겁이 많은 놈들입니다.   미군 부대를 인질로 잡아두는 작전이 성공되기만 하면 전쟁은 의외로 빨리 종결될 수도 있습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내가 왜 땅굴을 파라고 했겠습니까?··· 땅굴은 경보여단 주력부대가 순시간에 적 후 종 심에 침투할 수 있는 유일한 침투로 입니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그런 방법으로 대 병력이 침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돈이 들더라도 시간이 있을 때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 땅굴을 미리 파두어야 합니다.  지금은 물론 힘도 들고 어렵겠지만 일단 전쟁이 일어났다 하면 그 때에는 이 땅굴이 몇 십 배의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막상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방어에만 급급해도 안 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 본토를 강타해야 합니다.  미사일을 가져야만 때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남미에 나가있는 특공대를 투입시키고 교포 조직을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핵폭탄이 없으면 화학무기를 살포해도 됩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 본토에 혼란이 일어나도록 하기만 하면 됩니다. 본토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 널려 있는 미군기지를 폭파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매운 맛을 보게되면 미국 국내에서는 반전운동이 일어날 것이고 미국 놈들은 갈팡질팡 하게 될 것입니다.” (1974년 8월 당 군사위원회) 


“고속도로가 있으면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우리가 도로를 확장하지 않고 철도도 복선으로 깔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방어선이 무너져 전선이 밀리게 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적 기계화 부대의 발목을 잡아두기 위해서 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동구라파 전선에서 물밀듯이 밀고 들어가던 히틀러 군대의 진격속도가 어디서 멎었습니까?···  소련 국경을 넘으면서 멎었습니다. 소련의 철도가 국제 표준 규격보다 한 뺨 정도 넓었기 때문에 독일 군 군용 열차가 탱크부대의 뒤를 따라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스탈린이 숨 돌릴 여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전선이 무너져 우리가 뒤로 밀리게 될 경우에 적 기계화부대의 발목을 잡아두자면 지금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철도도 단선 그대로 놔두고 도로도 재래식으로 그냥 놔둬야 합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이번에 또다시 전쟁이 붙게 될 경우에 이번에는 제공권을 장악해야 합니다. 6·25 때에 우리가 제공권을 빼앗겨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까?···그래서 그 동안 우리는 공군력을 증강하는데 많은 힘을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월남전에 공군을 지원했던 것도 조종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월남전에서 소련, 중국, 그리고 우리 비행대가 교대로 하노이 상공을 지켰는데 우리 비행대가 지킬 때에는 미국 놈들의 비행기가 하노이에 못 들어 왔다고 합니다. 그만큼 미국 놈들도 우리를 무서워합니다···제공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군력을 증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 대공, 공대 공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포 화력으로 반 항공 망을 형성하고 명중률을 높이도록 해야 합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데서도 이론에서는 뒤지지 않았고 장비가 문제라고 하는데 결국은 돈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외화를 벌어드릴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 외화를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아편이라고 하는데 그런 거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한번 대담하게 시도해 보십시오 아편은 마약이니까 저 양강도 고산시대에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특별 구역을 만들어 놓고 통제를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약은 국제법상으로도 문제될 수 있으니까 말썽 없도록 해야 합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현 휴전상태에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모든 힘을 전쟁준비에 쏟고 있는 것이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이로부터 북한은 전후 복구건설의 어려운 시기에도 중공업의 우선적 발전, 특히 군수공업 발전에 힘을 집중하고,「자립적 민족경제건설 노선」과「경제와 국방 병진노선」이라는 미명 아래 해마다 GNP의 20∼25%에 해당하는 막대한 예산을 군사비로 지출하면서 전쟁준비에 광분해 왔다.  그 후 60연대 중반에 이르러 월남에서의 <통킹 만 사태>와 1968년 <프예블로호 사건> 등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긴장되게 되자 김일성은 정세가 악화될 때마다 당 군사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비상 대책회의를 열고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자위적 국방이라는 구호아래 전쟁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와 김일성 사망으로 국제적 고립이 가중되자 김정일은 <우리 식 사회주의> 와 <선군 정치>를 표방하며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고난의 행군을 강행하여 마침내 핵·미사일 개발을 완성시켰다.   


그 결과 오늘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공갈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세계 제5위의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북한은 전군 간부화, 전민 무장화, 전군 현대화, 전국 요새화를 기본 내용으로 하는 4대 군사노선에 따라 모든 군인들이 한 등급 이상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간부 군대>로 훈련되어 있고, 110만 이상의 정규군에 <교도대>, <노농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 등 전 인구의 1/3 이상이 무장되어 있으며, 전방과 후방의 주요 군사시설들이 모두 지하갱도에 대피할 수 있도록 전국이 요새화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핵·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현대적 신형무기, 대량살상무기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이제는 미사일 수출국으로서의 `위용`을 떨칠 수 있게 된 것이다.4) 남북 대화   공산주의자들의 대화 전술은 혁명정세가 불리할 때, 시간을 벌기 위해 구사하는 위장 평화공세의 한 수단이며 공개 합법적인 통일전선 전술이다. 


60연대 중 후반의 동베를린 사건, 통혁당 사건 등  연이은 대형 사고로 말미암아 대남 공작이 돌연 침체기를 맞게되자 정세를 관망하던 북한은 때마침 남측에서 제의한 적십자회담에 응하지 않을 수 없어 휴전 후 처음으로 남북 대화가 성사되게 되었다.  1972년 8월 제1차 남북 적십자회담(평양)이 개최될 당시 김일성은 회담 대표들과의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된다고 하니까 일부에서는 통일이 무르익어 가는 줄 알고 있는데···이산가족 찾기라는 그 자체로서는 흥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적십자회담을 통해서 합법적 외피를 쓰고 남조선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트일 것 같으면 회담을 좀 끌어보고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것 같으면 남조선 측에서 당장 받아들일 수 없는 <반공법 철폐>, <정치활동의 자유>와 같은 높은 요구조건을 내걸고 회담을 미련 없이 걷어 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이 회담장을 우리의 선전무대로 이용해야 합니다.” 


“적십자 이염도 좋고 인도주의 원칙도 좋지만 문제는 혁명의 이해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현 단계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든가 서신교환, 자유왕래 같은 것은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반공법이 철폐되고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자유왕래도 해 볼만 하지만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니까 적십자회담에서도 너무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끌면서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만약 회담이 진척되어 이산가족 상봉단계에까지 간다 하더라도 판을 크게 벌리지 말고 이산가족 상봉도 우리의 감시 권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남조선 측에서 우리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여 이산가족들의 자유왕래가 실현되고,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될 경우에 대비해서 월남자 가족들과 월북자들 가운데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해서 공작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켜 두어야 합니다.  지금 월남 자들 가운데에는 돈을 많이 번 갑부도 더러 있지만 밑바닥 인생을 헤매는 서민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이들 모두가 우리 혁명의 기본 동력으로 될 수 있습니다. 월남 자들은 그 동기와 경위가 어찌됐든 우리 공화국을 배신하고 남쪽으로 도주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죄 의식을 느낄 수도 있는데 통일이 되면 일체 과거에 대해 묻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혁명을 하다 보면 때로는 암초에 부디 칠 때도 있고, 계급적 원수들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공산주의자들은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계급적 원칙을 철저히 고수해야 하며 한치도 양보하지 말고 완강하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협상과 대화도 하나의 전투입니다. 적과의 전투에서 양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설사 협상이 결렬된다 해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왕에 결렬될 바에는 담 벽도 문이라고 두들겨 억지를 부려서라도 적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계급적 원수들과는 타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적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혁명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우리가 남조선 당국자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대화를 통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그들과 타협을 해서 현상을 유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화가 결렬될 경우에는 그 책임을 적들에게 넘겨씌워야 합니다. 동무들은 항상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북반부에는 민간단체가 없지만 남조선에는 그 이름도 잡다한 민간단체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자생적 민간단체들도 있고 우리가 만든 민간단체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지 실정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남조선 당국자들을 반민족적 분열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민간단체를 만들어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 통일열기를 북 돋구고 각종 조직 단체들을 동원하여 민간통일운동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문제를 둘러싼 모든 대화에서 적들을 피동에 몰아넣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Ⅲ 지하당 공작   지하당 공작이라고 하면 남한으로 파견되는 공작원들이 지하당을 구축하고 동조세력을 규합하여 혁명역량을 형성하며 남한의 자본주의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모든 공작활동을 말한다.  지하당은 문자 그대로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비합법 혁명조직인 만큼, 그 모든 활동은 비밀리에 행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지하당의 모든 공작활동이 비밀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그 중에는 일반 당원들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각급 지도부의 핵심 간부들에게만 시달되는 극비 사항이 있다. 그것을 공작 영역 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통일전선 공작   통일전선이란 혁명의 일정한 전략적 단계에서 당면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각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 인사들과 정치적 연합을 실현하는, 즉 동맹자를 전취하기 위한 공작활동을 말한다.  공산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혁명은 대중을 위한 대중 자신의 사업인 만큼 대중 자신이 참가하지 않고서는 승리 할 수 없으며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은 누가 더 많은 군중을 쟁취하는가 하는 그 여하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김일성은 남한의 각계 각층 광범한 동조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통일전선공작전술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동무들은 우리 당의 전략 전술적 문제들에 대하여 공개해야 할 것과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 공개해서는 안될 것과 공개해도 무방한 것들을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전략전술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군사행동에서 작전기밀을 누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에서 패배를 자초하는 관건 적인 문제로 됩니다···  통일전선전술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당이 남조선의 민족자본가와 부농, 종교인들을 일시적인 전술적 동맹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된다면 누가 우리하고 손을 잡겠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지하당 통일전선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히 다루어야 하며 당내에서도 극비에 붙여야 합니다.”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각 당 각파, 각계 각층 인사들과 제휴 합작을 하고 그들과 통일전선을 한다고 해서 합작 상대에게 용해되거나 혁명의 목적에 위배되는 무원칙한 단결을 운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현 정권을 타도하고 우리 수중에 정권을 장악하자는 데 있는 만큼, 통일전선공작을 단순한 공동행동으로, 동등한 연합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통일전선체 내에서도 엄연히 주종관계가 있어야 하며 여기에서 합작 상대에게 먹히울 수 있는 그러한 통일전선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통일전선공작에서 또한 우리가 주목을 돌려야 할 것은 전술적 동맹대상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동맹대상이 부농이나 민족자본가라고 해서 덮어놓고 경계하고 경원시 한다면 결국 그들은 반혁명의 편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전술적 동맹대상의 2중성을 고려하여 단결하면서 투쟁하고 투쟁하면서 단결하는 원칙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놓치지 말고 우리편으로 끌어 당겨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통일전선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 그들과 합작은 못할망정 반혁명의 편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압력을 가해서라도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통일전선 공작에서 상 하층에 대한 개념을 똑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층통일전선을 위주로 해야 한다고 하니까 어떤 둥무들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들을 무조건 하층으로, 그리고 정계, 사회계, 종교계의 지식층 인사들을 상층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실제로 통일전선공작을 수행하는 그 집행단위가 어디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각급 지하당 지도부이며, 각급 지도부가 1 대 1로 상대하는 대상 조직은 그 지역 단위에 있는 각 정당 사회단체 개별적 인사들입니다.  따라서 그 정당 단체의 지도부는 상층으로, 그리고 그 조직의 일반 구성원은 하층으로 구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신분과 지위로 볼 때에는 상류층에 속하는 정계인사라 하더라도 그가 소속 정당 단체의 일반 구성원일 경우에는 하층의 개념에 속하게 되고, 반대로 노동조합의 말단조직을 공작대상으로 했을 때에는 사회적 신분이 노동자이지만 그 조합의 간부들은 상층의 개념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또 하층통일을 위주로 해야 한다니까 일부 동무들은 그저 덮어놓고 하층공작에만 매달리고 있는데···하층통일을 위주로 해야 한다는 우리 당의 방침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남조선에서는 신민당을 비롯해 각 군소 정당들과 언론단체, 종교단체의 상층 지도부가 군사정권을 반대하여 아주 잘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 정당 단체 상층 지도부의 경향성이 좋을 경우에는 상층공작을 위주로 하여 적극적인 공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빠른 시일 내에 보다 많은 공작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 


“지하당 통일전선공작은 적들의 탄압 속에서 재야인사는 물론, 때로는 우익단체 인사와도 접촉하게 되는 것만큼 항시 적인 위험을 동반하게 되며 고도의 기술을 요하게 됩니다. 때문에 각급 지하당 지도부는 이 사업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말고 전문적인 특수 공작 조에 전담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전문공작 소조 원들도 대상과의 접촉 범위와 노출정도에 따라서 수시로 교체해야 합니다. 그래야 적들의 탄압으로부터 피해 범위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1968年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2)  상층 공작   “지금 남조선에는 5·16 쿠테타로 말미암아 폭삭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 모두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해 이를 갈고 있으며, 그 중에는 정치인들도 있고 구 관료도 있고 양식 있는 지식인, 종교인, 언론인들도 많은데 김종태와 같이 우리하고 선이 닿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혁명가들이 대담하게 접근해서 좋은 대상을 물색해야 합니다. 김종태와 같은 사람 서너 명만 잡게 된다면 남조선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도, 조국통일의 대 사변을 맞이하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1969년 12월 대남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칠레에서의 아옌데의 경험은 선거를 통해서도 정권을 탈취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옌데가 실패한 원인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다음, 너무 급진적으로 개혁을 서두르다가 역 쿠테타를 당한데 있습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말미암아 민심이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남조선 인민들의 반 박정희 감정을 잘 유도하여 OOO과 같은 명망 있는 인물들을 내세운다면 국회에도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대 국회공작에서도 프락치 공작에 그치지 말고 의석을 확보하는 공작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974년 5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유성근(전 서독 주재 한국대사관 노무관)의 경우를 볼 때, 남조선에는 고등고시에 합격되기만 하면 행정부, 사법부에도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앞으로는 검열된 학생들 가운데 머리 좋고 똑똑한 아이들은 데모에 내몰지 말고 고시준비를 시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열 명을 준비시켜서 한 명만 합격된다 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됩니다.  그러니까 각급 지하당 조직들은 대상을 잘 선발해 가지고 그들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고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 양면으로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1973년 4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중앙정보부나 경찰조직에도 파고들 수 있는 구멍이 있습니다. 공채 시험을 거쳐 들어갈 수도 있고 학연, 지연 등 인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남조선에서는 간부사업이 그 어떤 당적, 계급적 원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흔히 권력층의 인맥관계에 의해 좌우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 제도의 본질적인 약점입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김종필, 이후락, 윤필용 간에 치열한 3각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들의 알력과 갈등, 학연, 지연관계를 잘 이용하면 권력 핵심부에도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1973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남조선에 내려가서 제일 뚫고 들어가기 좋은 곳이 어딘가 하면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이력서, 보증서 없이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고, 그저 성경책이나 하나 옆에 끼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헌금이나 많이 내면 누구든지 신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신임을 얻어 가지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미끼를 잘 던지면 신부, 목사들도 얼마든지 휘어잡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공작원들이 남조선의 현지 실정을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 하는데 달려있는 것입니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요즘 남조선에서 지식인, 종교인들이 아주 잘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남조선에 내려가서 지식인의 탈을 쓰고 박혀야 합니다.  현 단계에서는 노동자, 농민 열 명 스무 명을 포섭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학생, 지식인 하나를 잡는 것이 월척을 낚는 것으로 됩니다. ···  또 남조선에는 흔한 것이 교수 박사입니다. 그 가운데 빽이 든든한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어렵게 박사 학위를 따고서도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실업자나 다름없습니다. 요행 대학 교수로 들어갔다 해도 인맥관계에 밀리어 연구활동의 기회를 얻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렇게 춥고 배고픈 교수, 박사들에게 프로젝트를 하나 따주는 형식을 취한다면 그들을 얼마든지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3)  노동계 침투   “학생 지식인들의 운동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혁명정세를 더욱 격화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야 합니다. 노동계급이 일어나야 군사독재 정권을 강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조선 노동자들은 한국노총이라는 어용노조에 얽매여 있고, 또 복수노조 금지법, 쟁의 조종법, 과 같은 각종 악법으로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기를 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조선 혁명가들은 노동자들 속에 깊이 파고 들어가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고 투쟁을 통해 부단히 단련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결정적 시기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노동계 침투공작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공작성과가 금방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기피하면 누가 대신 해주겠습니까?···그런 정신상태를 가지고 어떻게 혁명을 한다고 하겠습니까? 그 머리부터 뜯어 고쳐야 합니다.  조직에서 맡겨주는 혁명과업을 지상 명령으로 알고 무조건 끝까지 완수하는 혁명가 적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공작은 힘이 좀 들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해결하는 그런 사업기풍을 확립해야 합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전태일의 분신 자살···! 이것이 얼마나 좋은 선동 자료입니까···? 물론 청계천 피복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보잘 것 없는 조직이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태일을 영웅으로 만들고 추모사업회도 가지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조선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더 단결할 수 있고, 그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지 않고 그 정신을 본받게 됩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노동계에 침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투쟁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조직원을 산업현장에 새로 입사시키는 방법과 각 공장 노동자들 속에서 경향성이 좋은 노동자들을 외부에서 물색하여 포섭하는 방법 등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학생운동 출신 핵심당원들을 고졸자로 신분 위장하여 취직시키는 방법이고, 후자의 경우는 중요 위장취업 조건이 여의치 않은 공단지역 곳곳에 <노동상담소>  <야학 방> 같은 것을 차려놓고 노동자들이 몰려오게 하여 자연스러운 대인관계를 형성해 가지고 물색 포섭하는 방법입니다. 지하당 조직들은 현지 실정에 맞게 각 산업 현장에 핵심들을 침투시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자들을 의식화,  조직화해야 합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한국노총은 관제어용단체이며 각 산업현장에 이미 조직되어 있는 노동조합은 바로 그 한국노총의 산하 조직입니다.  이러한 어용노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노동운동을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때문에 지하당 조직들은 각 단위 사업장  노조들을 와해시켜 그것을 점차 지하당의 영향하에 흡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용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조합원들을 포섭 쟁취한 다음 노조 집행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노조 간부들과 조합원들 사이에 이간을 조성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다음 번 선거에서 새 집행부를 신망 있는 우리 사람으로 교체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청년학생, 도시 빈민 할거 없이 전 민중들이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 각층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투쟁을 조직 전개하여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 1980년 5월 3호청사 부장회의 ) 


“각 단위 노조를 조직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계급은 그 어느 다른 계급계층 보다도 가장 혁명적인 계급이며 업종도 다양하고 광범한 영역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강 유력한 혁명적 조직으로 강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별, 업종별로 묶고, 전국적 규모의 조직으로 확대하고 정치세력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 사업장에서 일어난 파업투쟁을 지역별 연대파업으로, 전국적인 총 파업으로 확대시킬 수 있고 노동계급의 혁명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1987년 10월, 대남사업담당 요원들과의 담회)


4) 국군 와해공작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의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주력군을 튼튼히 꾸리는 공작과 함께 반혁명적 무장력인 국군을 혁명의 편으로 돌려세워야 한다는 것이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논리이다.    이로부터 김일성은 대남 공작원들과 면접할 때마다 군 침투공작의 중요성에 대해 누누이 강조해 왔다.“남조선 괴뢰군은 작전 지휘권도 없는 미제의 고용병으로써 식민지 대리정권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이며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반혁명 무장력 입니다.  괴뢰군을 와해 전취 하지 않고서는 조국통일의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과거 1948년에 있었던 여·순 군인폭동과 표무원, 강태무 대대의 의거입국 사건은 좋은 경험으로 됩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혁명역량을 꾸리는 사업과 함께 괴뢰군을 와해 전취 공작에 항상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 1968년 1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 


“남조선 괴뢰군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징집된 용병이기 때문에 사상적 지주가 없고, 사명감도 없으며 군복을 입은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이들이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총을 잡아야 하는지! 자각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혁명의 편으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각급 지하당 조직들은 괴뢰군을 와해 전취할 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이 사업을 대담하게 벌여나가야 합니다.”  (1968년 1월 상 동 )  “군 침투공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중, 하층 장교들입니다. 지금 중, 하층장교들 중에는 직위 불만 자들이 많은데 그 대부분이 비 육사출신이며 또 육사출신들 가운데서도  타 지역 출신 장교들은 경상도 출신 들 한테 밀리어 소외감을 갖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출신지역과 육사, 비 육사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그들을 자극하고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면 얼마든지 혁명의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1968년 1월, 상 동 )   


“연락부에서 아주 큰 일을 했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동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역시 흥미 있는 대상은 예비역 장교들입니다. 이들은 많은 현역 장교들과 선, 후배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남조선 사회는 돈 없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군에서 제대된 후에도 능력이 없으면 별 볼일이 없겠지만 대상에게 별 보다 빛나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돈 잘 버는 사업가로 등장시킨다면 많은 장교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비역 장교를 포섭하여 얼굴 마담으로 잘 이용하면 장교들과의 대인관계를 넓혀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1975년 2월 대남 공작원과 의 담화)  “과거에는 학생들에게 군 입대를 기피하도록 선동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남조선의 사회환경이 달라졌고, 학생들의 의식도 달라졌습니다.  남조선 군대가 식민지 고용병이고, 또 군대의 위상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오히려 자원 입대하도록 적극 교양 해야 합니다.  대 국군 공작을 보다 진공 적으로 벌여나가기 위해서는 학생운동에서 검열되고 단련된 핵심들을 집단 입대시켜 그들로 하여금 동료 사병들을 의식화하고 포섭하도록 하여 군대 내에 조직을 부단히 확대시켜 나가야 합니다.”                                     (1988년 8月 대남 공작원과 의 담화) 


“윤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령부가 쑥밭이 되고, 괴뢰 군부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흔들리고 있습니다.  <양심선언> 한 마디가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킨 것입니다.  남조선의 군대를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병사들과 중, 하층장교들을 포섭 쟁취하는 공작과 함께 필요한 시기에 탈영, 항명, 하극상, 양심선언과 같은 각종 형태의 투쟁을 조직 전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종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을 전국적으로 벌여 군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군부 상층을 압박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군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지휘 통솔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1990년 10월, 대남사업담당 요원들과의 담화)


5) 법정·옥중투쟁   법정투쟁, 옥중투쟁 전술은 지하당 조직원들이 남한의 수사기관에 체포됐을 경우에 법 체제의 미비점을 역용 하여 조직의 비밀을 엄수하고 피해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교활한 전술이다.    원래 공산주의혁명은 자본주의제도를 부정하고 폭력으로 전복하려는 적대행위인 것만큼, 법적으로 규제되기 마련이며, 활동 과정에는 어쩔 수 없이 체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일단 체포되게 되면 수사기관으로부터 고문을 당하기가 일수이고 각종 회유공작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이럴 경우에 대비하여 공산주의자들은 조직의 안전과 비밀을 고수하도록 하기 위해“혁명의 길에서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이라는 구호 아래 사상교양을 강화하면서 혁명적 지조를 지키고 조직의 안전과 비밀을 목숨으로 사수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가 있을 때마다 김일성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혁명적 절개를 꿋꿋하게 지키고 혁명가답게 장렬하게 최후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남조선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 혁명가들이 적들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기본이지만 만부득이 적들에게 체포될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불가피하게 체포됐을 때에는 우선 모든 증거를 인멸시키고 유력한 변호사를 금품으로 매수해서 내세워야 합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우리의 유일한 방조자입니다.  변호사에게 백 만원 쓰느냐 천만 원 쓰느냐 하는 그 액수에 따라서 그의 말소리가 달라집니다···그리고 법정에 나서게 되면 예심과정에 있었던 진술내용도 모두 번복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왜 예심과정에 그렇게 진술했는가` 라고 판, 검사가 물으면 경찰에서 하도 무지하게 고문하기 때문에 고문에 못 이겨 가 진술했던 것이라고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그러면서 고문당한 상처와 흔적을 내보이며 적들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전횡을 가지고 역습을 들이대야 합니다. 그래야 죄가 감면될 수 있고 잘하면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습니다.”    (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고문을 하는 것도 기술이고 고문을 당하는 것도 기술입니다.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씩, 둘씩 불기 시작하면 또 나올 것이 있는 줄 알고 더 고문하기 때문에 결국 비밀은 지키지도 못하고 다 불어버린 다음에도 계속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될수록 고문을 적게 당하고 비밀을 지키면서 고문을 이겨내려면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완강하게 버텨야 합니다.  그리고 고문을 기술적으로 모면하기 위해서는 고문이 시작될 때, 먼저 자해행위를 해서 까무라쳐 버리는 방법을 쓸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고문하는 쪽에서도 흥미가 없기 때문에 제풀에 꺾이게 됩니다.”                                    (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설사 법정에서 실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해도 혁명가들은 언제든지 구출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혁명가의 지조를 굽히지 말아야 합니다. 적들의 회유와 기만술책에 넘어가 전향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전향을 해 가지고 감옥에서 풀려난다 해도 어디에서 누가 사람대접을 해 주고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겠습니까?  지금 적 아 간에는 치열한 사상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혁명가의 운명은 혁명의 길에 나설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더럽히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최후를 장식하기 위해서는 불요불굴의 혁명정신으로 옥중투쟁을 줄기차게 벌여야 합니다.”                                   (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남조선을 가리켜 법치국가라고 하고, 또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하지만 역시 돈과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것이 황금만능주의에 물 젖은 자본주의사회의 법조인입니다.<유전무죄요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듯이 판사, 변호사의 농간에 의해 사건이 뒤집히는 예가 허다합니다. 이것이 오늘 남조선의 법 실태입니다.    현지 당 지도부는 남조선의 이러한 법 체제의 미비점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중대한 사건일수록 법조계, 종교계, 언론계의 조직망을 총동원하여 사회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사면팔방으로 역공을 펼쳐야 합니다. 그래야 법정 싸움에서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통일혁명당 지도부가 파괴됨으로써 우리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김종태 동무는 적들의 고문에 의해 옥사했지만 혁명가로서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탈옥도 시도하고 법정투쟁도 잘했습니다.  김종태 동무가 이렇게 묵비권을 행사하며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기 때문에 그 하부조직들이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이 동무에게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 주어야 합니다.···그래야 남조선 혁명가들과 조직성원들이 김종태 동무처럼 옥중에서도 혁명적 지조를 끝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1968년 12월 3호 청사 부장회의) 


“박종철 사건을 계기로 남조선 대공기관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지하당 조직들은 때를 노치지 말고 안기부와 남영동 대공분실을 고문집단으로 몰아붙여야 합니다.  인권변호사를 앞세우고 언론, 종교단체 등 재야 정치인들을 총 동원하여 여론 공세를 퍼부으며 학살 주범 처벌과 국가보안법 철폐, 공안기구 해체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정치활동의 자유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1987년 2월 3호청사 확대간부회의)


6) 문예활동   혁명적 문학예술 작품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사람들의 의식을 개조하는 가장 좋은 사상교양 수단으로 된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논리이다.  이로부터 김일성은 남조선의 작가, 예술인들을 포섭, 쟁취하는 공작과 함께 남조선 인민들 속에 더 많은 혁명적 문학예술 작품을 창작, 보급하는 문제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남조선에서 들여온 영화, 비디오를 보니까 거기에도 재능 있는 작가 예술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잘 나간다는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고 절대 다수가 실업자나 다름없는 형편입니다.  이들에게 혁명적 세계관을 심어 주기만 한다면 훌륭한 걸작들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지하당 조직들은 남조선의 작가 예술인들을 더 많이 포섭하여 혁명가로 만들고 그들이 외롭지 않게 똘똘 뭉쳐서 혁명적 필 봉을 들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묶어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작가들이 창작한 한편의 시가 천만 사람의 가슴을 감동시키고,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우리의 혁명적 노래가 적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지금 남조선의 문예인들이 아주 잘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더 높은 혁명적 열의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교양자료를 주고 창작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사실주의에 기초하여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니까 그 진수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쉽게 말하면 작품 창작을 사실주의에 기초하되 혁명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명에 유리하게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주의에 기초한다고 해서 있는 사실을 그대로 형상 하려 한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고, 그런 작품을 가지고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문학예술에도 허구라는 것이 있고, 또 작가들의 기교에 따라서 얼마든지 과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심금을 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하당 조직들은 남조선의 작가 예술인들이 사실주의에 구애되지 않고 대담하게 혁명적 기교를 발휘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남조선 인민들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숭 미 사대주의 사상을 뿌리뽑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작가 예술인들로 하여금 미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과 야수적 만행, 그리고 비인간적인 각종 범죄 사실을 폭로하는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이 잘 팔리지 않을 경우에는 지하당 조직들이 책임지고 팔아주고 대대적으로 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실망하지 않고 더 좋은 작품을 창작 할 수 있습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단화)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도 만들고 노래도 짓고, 좋은 그림도 많이 그리도록 해야 합니다.···어떤 동무들은 돈이 많이 든다고 난색을 표한다는데 우리가 항일 빨찌산 투쟁을 할 때, 돈이 있어서 <피바다> 극본을 쓰고 연극 공연을 했겠습니까?···그러나 지금은 북반부의 강력한 사회주의 혁명기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무서워 주저하겠습니까?    문제는 우리 혁명가들의 열정입니다. 돈이 들면 얼마나 들겠습니까? 돈 드는 거 아까워하지 말고 대담하게 일을 벌려야 합니다. 남조선 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혁명 투쟁에 동원할 수만 있다면 억만 금이 들어도 해야 합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영화나 소설 같은 작품을 창작하는 것도 남조선의 작가들에게만 맡겨두면 안됩니다. 장편소설을 하나 쓸려고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많은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우리의 작가, 예술인들을 많이 동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책도 남조선에서 찍은 것처럼 출판사와 작가 이름을 붙여서 우리가 만들어서 남조선으로 보내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많이 창작해서 보급하는 것입니다.”  (1976년 8월 대남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7) 교포공작   “우리 공작원들이 남조선에 내려갈 때, 가지고 가는 카메라, 시계, 라이타 같은 장비품을 어디에서 구입해 들여옵니까? ···그런 것도 머리를 잘 써서 장비담당 부서와 긴밀하게 연계를 가지고 풀어나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해외 교포들 가운데에는 장사하는 사람도 많다는데 우리가 그들의 물건을 많이 사주면 필요한 장비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그 교포들을 우리편으로 만들기도 쉬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신발공장을 경영하는 한 재일 교포가 일본정부의 민족 차별 정책으로 말미암아 공장 문을 닫을 형편에 처해 있다는 보고를 받고 내가 그 신발을 몽땅 사서 평양으로 보내라고 했는데 그 후 그 재일 교포는 완전히 우리 사람이 됐습니다.”   (1976년 2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지금 해외에 나가 사는 교포들은 그 대부분이 사업하다 실패를 했다 든 가 아니면 정치적인 관계로 도피했다 든 가? ···여하튼 남조선에서는 살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권력 싸움에서 밀려난 전직 고관들도 있고, 예비역 장성, 실업가, 교인들도 많은데 일부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자리가 없고 먹고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좋은 먹이 감입니까?···이들에게 미끼를 잘 던지기만 하면 두 팔을 걷고 우리를 따라올 것입니다.”  (1976년 2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해외로 이민 간 교포들도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들이 오죽했으면 고향을 등지고 이민을 갔겠습니까? ···이민을 간 교포들 중에도 성공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절대다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절망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으며 형편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현 정권에 대해 이를 갈고 있습니다. 이런 교포들을 잘 포섭해서 묶어 세우기만 한다면 강력한 혁명역량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1976년 2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해외교포들 속에서 조직을 결성할 때에도 북과 연계되지 않고 교포들 자체로 묶은 조직인 것처럼 명칭을 잘 위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조선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그리고 활동력 있고 천부적인 기질을 가진 대상들을 잘 훈련시켜 직업적 혁명가로 키워야 합니다. 해외 교포들은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세계 각국을 마음대로 내왕할 수 있는데 활동조건이 얼마나 유리합니까?”      (1976년 2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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