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한광덕 작성일 : 2015-03-08 조회수 : 299
주한 미국대사 테러를 보는 육군예비역 소회

이름 모르는 나라의 한 관광객이 테러를 당했더라도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할진대 혈맹의 동맹국인 주한 미국 대사가 강연의 연사로 초청을
받고 참석했다가 그 모임의 한 회원으로부터 백주에 테러를 당하다니!!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까?
통한의 아픔으로 우선 Mark Lippert 대사의 빠른 쾌유를 빌면서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있을 미국 국민들에게도 깊이 고개를 숙입니다.
 
대한민국은 휘날리는 태극기 깃발 아래 온 국민들이 가슴을 넓게 열고
봄여름 가을겨울의 금수강산을 찾아오는 외국 관광객들을 환영하면서
삼성 현대의 핸드폰과 자동차 등등도 그들의 나라에서 큰 사랑을 받을 때에
  후손들의 번영도 보장될 것이기에 다시는 김기종 류의 테러가 없을 것을
  군경과 함께 온 국민이 다짐하고 이를 온 세계에도 알려야만 하겠기에
  확실히 명심해야 할 사실 몇 가지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 대한민국 최초의 제헌국회의원 선거였던 1948년 5.10 선거 이틀 전의
제주발 동아일보 기사에는 “목포에 까지 김일성군이 내도하였으니 안심하라”는 선전과 “순경 1만원, 형사 2만원 총경 100만원”의 살인 현상금으로 경찰관 살해를 선동했던 사실이 발견됩니다. 쌀 한가마니에 300원하던 옛 날 이야기지만 대한민국의 자유시민이라면 이 사실만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2. 이 선전선동에는 소련군정이 북한에서 단행했던 무상몰수무상분배의 토지개혁(1946.3.5)이 숨어 있었으며 제주도에서는 각종 테러로 5.10 선거만 거부하고 미군만 철수하고 나면 친일파 지주들을 숙청하고 불쌍한 농민들에게 토지의 무상분배가 실현된다는 기대심리가 통하고 있었습니다.
 
3. 금번 테러를 감행한 김기중 머리에도 과거의 선전선동이 통했던 것으로 보이는 데 그가 간과한 것은 소련군정에 의해 무상으로 분배됐던 토지가 차후 집단농장으로 바뀌면서 북한 농민들은 일제 때 보다도 비참한 그 땅의 노예로 전락되어 지금은 3대 세습독재에 항거하는 거리의 데모한번도 시도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지난 날 소련군을 ‘민족 해방군’이라고 환영하며 ‘스탈린 만세’ ‘김일성 만세’를 불렀던 것을 뉘우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 반면, 38선 이남의 미군은 상당한 정치적 자유를 허용했기에 이 승만 박사는 5.10 선거를 통한 대한민국 건국(48.8.15)후에 국회에서의 논의를 거쳐 유상인수 유상인수의 토지개혁을 실현함으로서 오늘날 개인의 재산과 인권이 존중되는 자유대한민국을 이룩했으니 미국이야 말로 앞으로도 영원히 삶의 가치를 공유해야 할 혈맹의 동맹국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새빨간 거짓 선동을 뿌리부터 경계하고 거부해야할 권리와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5. 함께 놀라야 할 사건은 1997년 5월 26일, 6.25남침도 북침이라며 오리발을 내밀던 북한이 북한 ‘영웅 1호’ 성시백의 대남공작을 공식 인정 및 찬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대법원의 5.18 2차 판결(1997.4.17.) 1개월 후였음으로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북한이 공식인정한 대남공작의 중단을 공식요구하지 않고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임했다는 사실이며 그로 인해 북한의 대남공작을 논하는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 지난 17년간의 북한 대남공작에 대한 무관심한 침묵의 결과로 많은 불가사의 한 사건이 발생해 왔고 금번의 김기중 테러사건도 그 중의 하나라는 것이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4.3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사퇴를 해야 했던 육군 예비역의 소회입니다. 이 침묵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한 온 국민의 관심이 요구되며 이제라도 국가 정보기관에서 소상히 밝혀주기를 사퇴한 4.3위원으로 요구합니다.
 
7. 북한 ‘영웅1호’ 성시백의 당시 활동을 연상케 하는 사건으로 소련 군정이 비밀리에 단행했던 북한의 화폐개혁(1947.12.1.)있습니다. 비밀의 효과로 상당 기간(4-6개월?)동안 폐기된 북한 화폐가 공작금으로 전용될 수 있었는데 ‘대북무역상’으로 위장 활동했던 성시백은 용도 폐기된 북한 화폐를 선박으로 운반하는 위치에서 김일성 비밀특사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 농민들에게는 토지의 무상 분배 특혜(?)가 있었던 반면에 38선 이남의 남로당 특정인물에게는 무한대의 북한화폐 특혜가 주어졌기에  그들의 후손 중에는 오늘도 북한을 종주국으로 받들며 ‘제2의 성시백’이 되고자 노력할 가능성까지 있다는 사실입니다.
 
8. 상해 임시정부시절의 성시백 역할까지 파악하고 97년 5월 26일의 노동신문의 성시백 찬양 특집보도(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를 숙독하면 오늘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는 성시백 2세의 모습까지도 보이게 되며 4.3무장폭동 당시에도 성시백의 공작이 작용했다는 주장이 충분히 가능함을 밝힙니다.
 
이 특집보도의 존재를 4.3위원 사퇴 4년 후에야 확인할 수 있었던 필자는 이 사실의 신속한 전파를 위해  무한 노력했으나 정부와 언론의 관심촉구에 실패하고 있음을 밝히며 인터넷에 올려있는 글 하나만 아래에 붙입니다.
Mark Lippert 주한 미국 대사의 테러사건이 북한 ‘영웅 1호’ 찬양 특집보도에 대한 지난 17년의 침묵을 깨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 아직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테러 방지법의 신속한 통과에도 기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지난 17년의 침묵이 공론의 광장으로 옮겨지면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도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일방적으로 손상되었던 국군과 경찰의 명예도 크게 회복되어 전국의 도시에서 자랑스러운 군복을 입고 활보하는 국군장병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2015. 3. 9
인강 한광덕
http://rokfv.com/jboard/view.php?code=1&uid=2228&page=1&key=&key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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