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한광덕 작성일 : 2014-01-25 조회수 : 594
“목포까지 김일성 군이 내도하였으니 안심하라”?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회는 정상적으로 존재하는가?


 



보이는 "제목"을  1948년 5월 8일자 동아일보의 “제주도 폭동 현지답사” 제하의   “최고 100만원의 현상살인지령, 극악 무자비한 폭상(爆狀)”이란 소제목 기사에서 뽑았습니다. 지난 1월 22일, “4.3희생자추념일” 입법예고에 따른 문제점을 정부에 건의하는 세미나가 프레스센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음에도 현장의 열기를 어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느낄 수 없어 경각심을 함께 갖기 위한 필자의 몸부림입니다. 


 


1948년 5월 8일이라면 한반도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5.10선거) 이틀 전입니다. 이날 기사에 “제주도 인민위원회”가 읍면동에 인민해방군을 조직하고 “목포에까지 김일성군이 내도하였으니 안심하라”고 선동하며 “순경 1만원, 형사 2만원, 경위이상 3만원의 살인현상금을 걸고 경찰관 살해를 촉구”(당시 쌀 한가마니 가격, 300원)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5월 8일 이전의 여러 신문에서는 제주 남로당의 각급 인민위원회 결성대회에서 긴급동의로 스탈린과 김일성이 명예위원장에 추대되고, “곧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시작 된다” “친일경찰을 사살하라”는 등의 선동문구가 발견됩니다.


 



이들 기사만 보아도 5.10선거를 부정했던 4.3무장폭동의 성격과 배경을 직감할 수 있음에도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소련군정이 단행했던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1946년 3월 5일)과 비밀화폐개혁(47.12.1일)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 미친 영향은 기술되지 않았고, 오로지 그 폭동의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주민들의 희생만을 강조, 국군과 경찰이 학살주범으로 묘사되어 대한민국의 정통성까지 부정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었는데 -------이제 급기야는 그 폭동의 개시일자를 선택하여 “4.3희생자추념일”로 정한다고 하니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회는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까?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기획단(단장,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박원순)에서 작성된 이 보고서가 군과 경찰을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제안한 수정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상태로 2003년 10월 15일, 고건 총리 주재하의 4.3위원회에서 강행 통과되던 날, 국방부와 경찰위촉의 4.3위원 3명 전원은 서명란에 “부동의” 서명을 했고 일괄사퇴를 선언했음을 다시금 밝히는 바입니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걷어찰 수 있었던 전환점은 미국에 대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었기에 민족해방의 기쁨에 대한 감사는 일단 미국으로 향하는 것이 정상이었음에도 토지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대한 기대를 자극하는 선전선동 효과로 미군은 일본군을 계승한 점령군으로 매도되었고 소련군만이 민족의 해방군으로 환영 받는 기현상이 발생했었고 지금도 그 뿌리가 남아있음을 보게 됩니다.


 



UN의 축복으로 통일국가를 세우는 절호의 기회였던 5.10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거부했던 4.3무장 폭동의 배경에는 소련의 스탈린이 있었음이 쉽게 확인됩니다. 왜냐하면 5.10 선거를 기초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일단 건국되었으면 모든 폭동은 자동소멸 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정권수립(48.9.9)이후에는 오히려 한라산의 인공기 계양이 증가되고 폭동의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고, 창설초기의 국군선배들이 어렵게 4.3무장 폭동의 진압에 나섰던 것이며, 살인현상금을 걸었던 경찰관 살해로 시작된 4.3의 비극이 더욱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확인할 것은 북한의 소작농민들이 무상으로 분배 받았던 그 토지가 그 후 집단농장으로 바뀌게 되면서 드디어는 3백만이 굶어 죽어도 3대 세습독재에 데모 한번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며, 그들에게는 제주도 주민들이 겪어야했던 비극보다도 상상을 초월하는 훨씬 중한 비극이 오늘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동구라파 여러 나라를 소련 위성국으로 만들었던 스탈린 방식의 무상분배에 완전히 속았던 것이고 그 결과가 오늘의 북한 현실이라면 제주도에서의 4.3무장 폭동진압은 오히려 국군과 경찰의 위대한 업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며, 많은 공부를 해서 세상의 앞날을 멀리 내다보았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혜안과 용기와 함께 자유 우방국 미국에 대한 고마움도 더욱 새롭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왜곡된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수정보완 없이, 그리고 제주도를 수학여행 하는 학생들에게 반 대한민국 정신을 주입하는 제주 4.3평화기념관 전시물 내용의 대폭적 개편이 완료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다는 이유로 “4.3희생자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다는 논리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동시에 부정하는 중대한 반역이 될 수밖에 없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제주 4.3사건과 관련하여 온 국민이 알아야 할 사실 한 가지만 더 부언합니다. 제 9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이형근 대장은 “군번 1번의 외길인생”이란 자서전에서 당시의 군 수뇌부가 일선부대의 남침징후 보고를 묵살 내지 무시한 사건과, 6월 24일 저녁의 육군 장교 클럽 낙성파티, 6월 11일부터 발령되어있던 비상 경계령의 6월 24일 0시 해제, 그리고 6월 25-27일간의 국군후퇴를 반격북진으로 허위 보도했던 중앙방송 등의 10가지 사건을 “6.25전쟁의 10대 불가사의”로 열거하고 이 불가사의가 풀려야만 국가의 백년대계가 보장될 것이라 설파했으나 그 이후 정부차원의 규명노력을 저로서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일이 그 해답을 우리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김정일은 1997년 5월 26일,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라는 노동신문 특집보도를 통해 “김일성특사” 성시백의 대남공작 업적을 대대적으로 공식 찬양했기 때문입니다. 이 특집보도만 정독하면 남침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된 배경에는 물론 제주도의 4.3무장폭동까지도 성시백이 영향을 미친 정황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위기시작은 1997년 5월 26일”이라는 글로 이 특집보도의 존재를 알리는 노력을 해 왔으나 모든 언론과 방송은 아직도 침묵하고 있음을 애국시민들에게 고발합니다.


 



성시백은 상해 임시정부시절 장개석 총통의 ‘수도경비사령관’에 해당되는 胡宗南 장군의 유능한 참모로 알려졌으나, 실제는 18세 때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던 골수당원으로 대 국민당 공작원으로 활동했던 중국공산혁명의 공로자였으며 중국 사람들도 그가 조선 사람임을 몰랐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대남공작 적임자를 물색하던 중 그가 조선 사람임을 알고 주은래에게 “성시백을 우리에게 보내주어 조선 혁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을 했고 주은래가 그를 조선 공작조직에 인계했던 것입니다.



김일성으로부터 “서울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밀명을 받고 일본비자로 입국하여 대북 무역상으로 위장, 북한의 무상몰수 토지개혁과 비밀화폐개혁에서 발생된 무한대의 공작자금을 선박으로 제공받으며 대남공작 공작활동을 하던 성시백은 간첩으로 체포되어 6.25 남침 발발 이틀 후에 처형된 바 있으며, 그 공로로 김일성으로부터 “인민공화국 영웅 1호”칭호를 부여받았던 것입니다.


 



공화국 영웅 1호의 공작활동을 찬양했던 특집보도가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되지 않은 가운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대통령 김대중은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조건도 없이 북송해 주었고 대통령 노무현은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는 막말을 계속했던 끔찍한 사실까지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97년 5월 이후 증가했던 각급 각종 명칭의 위원회 활동을 돌이켜 볼 때 국방부 위촉의 4.3위원으로 활동했던 필자는 이 특집보도에 대한 장기간의 침묵이야말로 그간 우리사회의 각종 비정상을 초래했던 원인과 배경이 되어왔다고 확신하며 제 2, 제 3의 성시백이 또 다른 위장활동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감히 목숨을 걸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이 글을 읽으신 독자들께서는 “4.3희생자추념일” 시행에 수반되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훼손을 기초로 여러분 나름의 다양한 견해를 추가하셔서 지역의 국회의원들과 안전 행정부로 제출하시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제주 “4.3희생자추념일” 선정 시행에 앞서 먼저, 진상조사보고서가 수정되고 제주 4.3평화 기념관의 반 대한민국적 운영도 시정되고 문제의 노동신문 특집보도에 대한 지난 15년의 침묵에 대해서도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대 전기가 마련될 것을 사퇴한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의 한사람으로 박근혜 대통령께 간원하는 바입니다.


 



2014.1.27일, 경기도 용인에서


(전)제 27대 국방대학교 총장


www.rokfv.com 인강칼럼


 



추신: 앞서 올렸던 글의 보이는 제목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난 1월 22일, “4.3희생자추념일” 입법예고에 따른 문제점을 정부에 건의하는 세미나에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내용상의 사실관련 책임은 전적으로 제 개인에게만 있음을 밝힙니다. 이 글이 더 많은 인터넷 게시판과 e-mail로 온 나라에 전파된다면 생애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jajulbo@gmail.com


 


 

김동일  2014/01/25 17:29:51 [답글]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자유논객연합 김동일입니다.
항상 열정적으로 제주4.3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군님같은 분들이 계셔서 제주인사들도 용기를 가지고
4.3을 바로잡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진실은 송곳처럼 튀어나오리라 믿습니다.
장군님의 건승 건투를 빕니다.
한광덕  2014/01/25 20:19:38 [답글] 수정 삭제
site의 webmaster 가 해외출장 부재로 글이 중간에서 짤리는 것을 해결못하고 있는데 ---
그 상태에서 방문해 주시고 다녀가신 기록을 남겨 주셨네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제주도 현지에서 자유수호협의회의 본부장과 자유논객연합의 회장으로 바쁜 가운데
찾아 주셨으니 월남참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곳의 전우들과 서로 통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야말로 제주도 현지에서 4.3사건의 진실을 알리고자 분연히 일어선 김동일회장과 같은 분이 계시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용기백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우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제주 자유수호협의회와 자유논객 연합의 주소도 이곳에 남겨주시기를 바랍니다.
김동일  2014/01/25 22:28:28 [답글]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자유논객연합 김동일입니다.
이글을 논객넷에도 게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광덕  2014/01/25 22:28:28 수정 삭제

자유논객연합과 월남참전 전우들이 서로를 알게 된다면 커다란 구국의 함성이 만들어 지리라 믿습니다. 그곳의 주소도 남겨 주시기를 바라며 다시금 환영합니다.
inf247661  2014/01/29 12:45:34 [답글] 수정 삭제
'안전 행정부'는 지난 12월 17일, 4월 3일을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로 입법 예고했으며;
反對 意見이 있는 개인, 기관 혹은 단체는 2월 26일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제출할 때에는 성명(기관 혹은 단체인 경우에는 명칭과 대표자 성명),
주소 및 전화번호를 기재토록 되어 있으며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

안전행정부 의정 담당관실 전화 02- 2100-3149 팩스 02-2100-4091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209 정부종합청사 (우)110-760
노도포이경호  2014/02/07 09:58:56 [답글] 수정 삭제
참으로 애국자이십니다. 건강이 안좋은신데도 오로지 나라사랑에 온갖힘과 정열을 쏟으시는 한장군님의 건강부터 관리해주시기를 바라오며, 4.3 사건에대한 내용이 나올때마다 관심있게 생각하는데 북한괴뢰집단 인민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경찰,무고한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한것은 심히 잘못된것이나, 이를인정하고 4.3희생자 추모일로 정해 추모하는것인지요. 아님 무고한시민들을 폭도로인정한체 4.3희생자를 추모일로 정한것인지? 저도확실한내용은 잘모르겠지만 국가에서 기념일로정하게 될때는 국민에게 확실한 내용을 알려야 수긍을 할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4.3사건은 물론 기타 여러가지의 사건에 접하다보면 북한 인민군들의 악랄하고 무자비한 만행을 기성세대일부와 현젊은 세대들이 모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한없이 있을뿐입니다. 장군님 간곡하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은 애국도 좋고 나라사랑도 좋지만 우선 건강하시기바랍니다.
한광덕  2014/02/18 16:14:47 [답글] 수정 삭제
이 경호 전우의 질문에 생각을 하다가 또 하나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4.3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왜곡된 보고서의 채택을 거부하고 동번사퇴를 했던
동국대학웍의 경찰행정학과 교수와 많은 토의도 했답니다.
그 글이 이 글 바로 위에 실려있으니 궁금증이 풀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노도포 모임에서
또 많은 이야기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총총
노도포이경호  2014/02/19 10:13:11 [답글] 수정 삭제
궁금증은 풀렸습니다. 다만 4.3사건당시 제주도 인민위원회에서 경찰등 무고한 시민에게 행한 살인행위자체를 인정하고 억울하게 폭도로묘사된 그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것으로 생각한것이지 성시백의 영향을 받아 경찰들에게 살인현상금을 걸고 각종만행을 저지른 제주도인민위원회의 죄상은 밝혀져야할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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