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카암 작성일 : 2018-04-17 조회수 : 217
불좀 빌려 주실래요

"불 좀 빌려주실래요?"
속눈섶이 눈동자를 찌르면 라이터 불로 달군 마스카라 심으로 눈섶을 한 올 한 올씩
들어올리곤 하는데 사방 문이고 사방 벽뿐인 역내 화장실.
소녀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여인도 아닌 정체불명의 여자가 엉덩이를 찰싹 붙이면서
쉴새없이 금속성 소음을 내지르는 환풍기 사이로 씹던 껌을 탁 내뱉으며 하는 말
"그거 좀 빌려주실래요?" 하얗게 탈색한 머리 석류를 쪼개 보이듯 앙큼하게 생긴 입술로
이런...이런...하필이면 빌려갈 것이 불이라니...

아무런 경계도 없이 손을 내미는데 언뜻, 살 속 흰 뼈가 다 비치는 손목 보라색 색실을
무슨 염주처럼 걸친 자리에 일렬로 나란히 지진 담뱃불 자국 연약한 육체에게 으름장을
놓듯 지진자리 채 아물기도 전에 딱지를 칼로 긁어내고 같은 자리 몇번이나 더 번복해
가며 지져댔을 자국들.

팥알만하던 유두가 다 자라기도 전 몸 밖으로 발끈 성내려 할 때마다 꾸욱 눌러가며
깊이 잠재운 한 덩이 뜨거운 야성 같은 것이엇을까
그것은 일종의 자학이며 유년의 앙증맞은 전리품같은 것 보이는 것은 옳고 그름의
판단을 떠나 그 자체로서 신선한 자극이 아닌가

뜻하지 않아도 수전증을 앓고 뜻하지 않아도 다리를 절고 뜻하지 않아도 망각하고
뜻하지 않아도 칭얼대다 그렇게 몸이 늙으면 흉터도 늙어지나...전혀
.반쯤 열린 그녀의 가방 안에 비딱하게 고개를 내민 탬버린 비명이나 통증을 머금고
역류하는 단조로운 멜로디가 화장실 바닥 타일 위로 흥건하게 기어가
"룰루 랄라 ...나.름.대.로 노력중이야,"

나는 감히 나를 인질로 또 하루를 살았는데 그녀 때문에 나는 내가 더 잘 보여 그런데
빌려간 불은 언제 돌려 줄려나몰라.
함께 가는 길 다소 일방적인 구술의 형태로 일면식했더라도 다 그렇게 비슷하게 늙어 갈
것이므로 일체의 불평없이^^ .....

카암님의 대단한 글들을 가끔씩 들고와 함께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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