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inf247661 작성일 : 2015-03-21 조회수 : 586
月刊紙 사상계 편집장 '장 준하'일당들의 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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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光復軍)의 歸還(귀환)★ ㅡㅡㅡ '장 준하'일당들의 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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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군의 '철석부대'에 배속되어 中國의 民主系 '장 개석' 과,
        共産系 '모 택동'과가 체결한 第2次 國共 合作 연합군과의
전투를 위하여 '열하(熱河)'에 가서 있다가,
                   1945.8.15 를 불의에 맞이한 '박 정희'중위는,
中國의 北京으로 南西進, 中國의 民主系 '장 개석'과
                    연합하고 있던 光復軍에로 들어가서 合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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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 中에는 滿州軍 先輩인,
신 현준大尉 (봉천 5기,해병 사령관,중장, 경북 금릉 태생,在美)와,
이 주일中尉 (신경 1기,육사 7특,대장, 감사원장, 함북 鏡城 태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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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復軍은 이들을 맞아들여 北京 地區 직할대대를 編成했다.
                                      지휘체계는;
대대장 신 현준, 제1중대장 박 정희, 제2중대장 이 주일, 제3중대장 윤 영구(학병 소위),
정훈참모 '정 필선(광복군 지하 공작원)' 등으로 짜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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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中國에서는 光復軍 조직이, 압록강을 渡河하여, 國內로 進攻,
                 그대로 國軍이 된다는 展望이 支配的이었다.

   그래서, 日本軍에서 脫出한 우리 靑年들은, 대거 光復軍을 찾아갔고, 光復軍측에서는
   이들 全員을 收容, 國內로 進攻 行進할, 10萬이라는 大軍을 目標로, 增編을 거듭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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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平壤으로의 개선을, 꿈꾸고 있던, 中國의 共産系 '모 택동'과 聯合하던
    延安派는, 光復軍 北京대대를,  저들에게로 탈취; 전향시키기 위해, 工作員들을 침투시켰다.

    그 대표는 '조 덕준(일명 조 덕진)'이라는 者였다.

   光復軍 요원으로 위장 침투한, 이들 延安派 工作隊員은,
          北京대대 요원으로 하여금, 저들 隊員으로 포섭하여, 쿠테타를 단행, 基幹 將校들을 감금했다.

  '박 정희' 中尉도 2차나 연금, 갖은 고문을 당하고, 회유를 받았으나,
                끝까지 버티다가, 結局은 그냥 釋放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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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共軍의 비호를 받고있던 左翼系의 발호는,
     光復軍 참모처장 '최 용덕' 將軍 (초대 국방부 국방차관, 공군참모총장)이
   北京 地區 책임자로 부임하자, 갑자기, 돌연, 종적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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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편, 重京의 임시政府側에서는, 美軍과의 聯合作戰에 依한 國內 정진은 좌절됐다 해도,
         國內로의 개선 行進만은 기필코 斷行한다는 前提아래, 日本의 駐韓 日本軍 總司令部의 항복을 接受키 爲해,
한.미 합동 先發隊(선발대)를 파견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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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光復軍 대표로;

  *이 범석장군(초대 국무총리兼 국방부 장관, 1952년도 제3대 내무부 장관),
   *김 준엽(고려 대학교 총장 역임),

   *장 준하(사상걔 편집장, 배낭지고 등산 다니다가 추락사),
   *로 능서(魯 能瑞) 선생,
   *미국군 등 21명과 더불어;

해방 2일 뒤인; 1945.8.18일 새벽; 美軍들이 提供한 美 C-47 輸送機로, 中國 西安(서안)을 떠나,
7시간 18분 만인, 1945.8.18.오전 11:18분 경; 京畿道 汝矣島(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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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거기에는, 길다란 日本軍 軍刀(군도)를 뽑아, 손에 執刀(집도)까지 한,
               日本軍 현역 將校들의 地揮아래;
               소총에는 着劍(착검)을 하고, 안면부(眼面部)에는
                 防毒面(방독면)까지 쓴, 1개 中隊 규모 兵力들이,
              포위망을 형성, 압축해 좁혀 오고 있었다.
           탱크도 機關砲를 조준하고,  대기해 있었다.
         잠시 후, 포위망이 끊기면서,
       朝鮮軍 司令官 '향월 량부'
    {香月 良夫,고우 쓰끼, ゴウ スギ }가,
  將校團을 이끌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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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美 선발대(先發隊)는 비행 中
                           영등포(永登浦) 상공에서 뿌리다 남은,
                     한글과 日本語로 된 전단 살포문
            {傳單 撒布文,ちらしい, 찌라시이,撒}을 건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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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엔 降服 接受 次 오게 된 經緯가 적혀 있었다.
      駐韓 日本軍 銃司令官 '고우 쓰끼'{ゴウ スギ, 향월(香月)}는,
  日本 本土 東京(동경) 總司令部로부터의 아무런 指示도
없으니, 滿 24時間 內에 撤收, 이륙(離陸)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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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황(天皇)이  無條件 항服한 只今,
              東京 總司令部의 指示가, 무슨 必要가 있느냐?! 』

                          라면서, 抗辯 했으나, 通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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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쓰끼'{香月(향월), ゴウ スギ}가  물러나고,
    日本軍 大領이 나타나,   선발대(先發隊) 일행을
       안내하여, 주연(酒宴)을 베풀고,  휴식(休息)하도록  했다.

        이들은 朝鮮 HOTEL에 投宿, 1945.8.18일 밤을 지내고는,
    다음날, 日本軍으로부터, 美 C-47 輸送機 給油(급유)를 받고,
  다시 中國으로 美軍 飛行機를 타고, 되돌아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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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時日이 지날수록 情勢는 더욱 惡化돼 갔다.
     滿州와 北韓에 쏘련軍이 進駐하고, 共産당 조직들이 定着돼 가자; 압록강을 渡河하여,


        國內로 개선 進軍하려던, 當初 계획했던 通路도 막히고 말았다.

雪上 加霜으로, 서울에 進駐해 온, 美國軍 軍政도, 우리 臨時政府와 光復軍을 끝내  承認치 않고,
        個人 資格으로만 入國을 許用하는 바였다.
{왜 그랬었을까요??? ㅡ장 준하 편집장 같은 자들의 비겁한 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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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탈과 좌절에 빠진 우리 光復軍들은 할 수없이, 全員, 武器를 놓고, 階級章도 떼고; 그런 뒤;
          個人 資格으로, 美軍들이 提供하는, LST 를  타고, 歸國(귀국)  上陸(상륙)할 수 밖에 없었다.

신 현준, 이 주일, 박 정희 等, '北京대대' 간부들은, 중국 天津(천진)에서 乘船하여; 解放 이듬 해;
    거의 1년이 다 되가는, 1946.6월, 경상남도 釜山港(부산항)에 上陸 도착 後, 곧 바로,


        美軍 헌병(憲兵, MP}들에게 체포되어, 監禁되었다가, 풀려났다. 日本軍 將校들이라는 理由였다.

그러나, 中國 上海(상해)에서 乘船한 사람들은, 대부분 京畿道 仁川港(인천항)에 上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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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한편에서는, 만주에서 쏘련軍에 호출되어져 갔었었던,
      '정 일권'(丁 一權)대위는, 곧 바로 쏘련軍들에게 연행되어져서,

체포, 검거된 身分으로 突변;  Siberia  류형(流刑) 列車로 護送되어, 輸送되어지던 도중, '하르빈驛(역)' 近處에서,
쏘련軍 護送 步哨를 때려 눕히고, 劇的으로 脫出, 만주 大陸과 압록강을 渡河하여,
平安北道 신의주 까지 천신 만고,  도달, 平壤으로 왔다.

거기에는, 최 주종將軍 등, 만주국 首都인 신경地區 保安司令部에
          있다가, 먼저 歸國한  만주系들과  劇的으로  合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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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조 만식'先生의 秘書室長이 되어 있는;
                           '백 선엽(白 善燁)'중위
                         {훗날; '김 창룡' 암살 사건 재판장,
                      제1군사령과,육군총장,합참의장,
               체신부장관, 스페인.프랑스 전권대사 역임}
          를 만나서, 北韓의 現 情勢 推移를 물었다.

'백 선엽'中尉는;
                 '金 日成'이가  쏘련軍의 背景으로, 權力을 掌握,
             全 國土의 共産化를 急速히 推進해 나가고 있는바,
         자기 동생 '백 인엽'을 데리고, 함께 38선을 越境(월경),
     서울로 向(향)하여, 서둘러 南下(남하)하라고 勸告(권고);
  다음날, 이들은 서울을 向해 떠났다.
떠난 지, 며칠 後, '백 선엽'장군도 38선을 넘어, 서울로 南下(남하)했다. 이 때가, 1945.12월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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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8.15 당시, 日本의 首都, 東京의 首都경비司令部格인
        近衛 師團에 있던, '유 재흥'大尉(일 육사 55기, 군영, 합참의장,유공사장)은, 9월에 歸國할 수 있었으나;

그의 부친인 '유 승렬'大領 (일 육사 26기,소장,사단장,충남 공주 태생)도,
'이 종찬'少領 (日육사49기,소장,陸軍大學 총장,참모총장,국방장관,대사歷任)등은;

南太平洋 戰線인 New GUINIA에서 연대장을 하다가, 解放을 맞이하여, 美軍에게 체포, 歸國이 늦었고,
                                      고생도 여간 아니었다한다.

'유 승렬'장군은 風土病까지 얻어 들어와, 歸國 뒤, 한 달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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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응준'대령은 함경남도 元山에서
'김 석원'大領은 평안남도 平壤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로의 歸鄕이 빠를 수 있었던 편에 속한다.

↑육사졸업생(중앙 일보사刊, 1984.3.1 3판),장 창국著, 53.54.5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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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청취 급, 열람에 감사 !  'TROT 333 KR'任께도  감사드리옵니다.

歸國船(이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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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
얼마나 이쳤던가? 태극 깃발을 ! 갈매기야, 울어라!  파도야,  춤춰라 !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

돌아오네,돌아오네 ! 부모형제 찾아서 ! 몇 번을 울었던가? 타국 살이에!
몇 번을 불렀던가? 고향 노래를!  칠성별아, 빛나라!  달 빛도, 흘러라!
귀국선 고동소리 !  건설은 크다 !

돌아오네, 돌아오네! 백의 동포 찾아서! 얼마나 찾았던가? 우리 해방을!
얼마나 찾았던가? 우리 독립을?  흰 구름아, 날러라!  바람은, 불어라!
귀국선 파도 우에 새날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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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범석:초대 국무총리 겸 초대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1952년도)



                      한심 합니다.  우리나라 軍隊의 시발이 불행 !
★김 준엽:고려대학교 총장. 대학생들 데모 진원지.
          요새는 왜 데모 않.못.없는가 ?  뉘기가 한국병 만든 원흉?
★장 준하: 사상걔 편집장.
          배낭 지고 험한 산악 등산 다니는 인내심과 투쟁력으로,
             주한 일본군 사령관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었어야지,,,!
        술 '酒(주)', 잔치 '宴(연)' 베풀어 받고, 그런 자들과 함께
            호텔에서 잠자고 다시 복귀, 비행기 여행하다니,,,?!
         해방 후, 군 복무를 ,,. 국회 국방위원장이였었니 ,,.

※강(强)한 자(者)에게 관대(寬待)한  者(자),
                    정작 寬待해야할 者에겐 잔인.악착.끈질기다.
여 불비 례,   총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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