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시드니 이민자 이야기 첫 번째)
글/ 김 건
1. 시드니 북쪽도시 고스포드, 시드니에서 1번 국도를 따라 한 시간여 북쪽으로 달리면 예로부터 호주 원주민들이 흰산(白山)이라 이름 붙인 맹그로브마운틴의 장엄한 산세(山勢)가 나타난다.
이 산(山) 자락을 따라 해변을 끼고 이어지는 구 도로(舊 道路)가 있다.
이 길이 지난 반세기 동안 가난한 이민자들이 좀 더 돈 벌이가 좋다는 노천광산(露天鑛山)이나 제철소(製鐵所)같은 일자리를 찿아서 북(北)으로 뉴카슬과 더 멀리는 브리스베인 퀸슬랜드 주 까지 줄지어 이동했던 바로 그 길이었다.
바다와 접한 이 센츄럴 코스트(Central Coast) 도로변은 어김없이 마을과 구멍가게와 값싼 술집과 모텔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들 마을 중에 가장 큰 마을이 고스포드였다. 주말 저녁이면 고스포드 펍(*선술집)에는 한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이들은 월남 전쟁터에서, 혹은 서부독일 지하 탄광에서, 혹은 중동 건설 현장에서 곧바로 귀국 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 좀 더 돈(Dollar)을 벌어 금의환향(錦衣還鄕)을 꿈꾸며 이곳 호주로 온 한국인 근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두들 한 주간 힘든 노동일을 마치고 이 값싼 선술집에 모여 고국(故國)을 생각하며 두고 온 부모 형제와 처자식들을 그리면서 아리랑을 불렀고 기타를 두드렸었다.
이런 이야기는 지금 호주 이민사(移民史)의 한 페이지요, 오늘의 도시로 발전한 고스포드 역사(歷史)의 한 장(場)이 되어 버렸다.
이곳은 또한 천혜의 자연 조건이 두루 갖추어진 곳이기도 하다. 병풍처럼 둘려 쳐진 맹그로브의 장엄한 산세를 보라.
이 높고도 수려한 산세가 급히 남태평양 바다로 빠져내려 산과 바다의 자연경관이 더욱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도시가 고스포드였다.
이같이 시드니 북부지역 마을들은 모두 맹그로브 산세가 바다로 떨어진 급경사 지형 위에 마을들이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
뒤늦게 승우가 이 동네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5년이 됐다.
승우는 기능직 소방 공무원의 정년을 간신히 채우고 곧 바로 시드니를 벗어나 도망이라도 치듯이 이곳으로 물러나 앉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승우는 전화벨이 계속해 울리는 소리를 잠에 취해 듣고만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소파에 기댄 채로 깜박 오수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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