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여! 내 조국이여! (제58회)
글/ 김 건
행방불명 된 교민 ①-6
문을 노크했다. 그러나 역시 대답이 없었다.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굳게 잠겨 있었다.
문득 복도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창이 준에게 보였다. 준은 비상 계단 쪽 창문을 열고 기어 올라 아파트 외벽으로 나왔다.
3층 외벽에 설치된 아파트 비상계단은 몹시 낡았고 녹이 슬어 있었다. 준은 가능한 아래쪽을 내려다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외벽에 손을 대고 천천히 옆으로 게 걸음을 걸어 마침내 2호실 방 창문 앞까지 도착했다.
창은 10cm 가량 열려 있었다. 준은 통풍을 위해 집 주인이 열어 두었으리라 생각했다. 누가 이런 모양의 자기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 전화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준은 창문을 충분히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온통 곰팡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준은 어질러진 침대를 돌아 옷장 문을 열어 보았다. 속에는 옷이 가득 쌓여 있었다.
몸을 돌려 욕실을 들여다 보니 화장실의 물은 한동안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돌아나와 거실로 들어섰다.
커피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는 한국어 잡지들과 한국신문의 날짜는 한 달전 것이었다. 부엌으로 들어가 보니 싱크대 설거지통 속 밥그릇들이 검은 곰팡이로 뒤덮혀 있었다.
분명히 집주인은 곧 돌아올 생각으로 '잠시' 집을 비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준이 걱정하던 바였다.
이 집 주인의 신상에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준은 생각했다. 김준은 이제 제빨리 돌아가 시드니주재 한국 총 영사관 경찰 담당자에게 신고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부엌을 한 발짝 나섰을 때 희미한 소리가 들려 준은 흠짓 놀랐다. 그것은 분명 문이 여닫히는 소리였다. 준은 긴장된 자세로 몸을 낮추고 조용히 기다려 보았으나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준이 거실 쪽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순간 준의 눈이 커다랗게 크게 떠졌다. 그는 그것을 보는 순간 공포감에 기절해 버릴 것만 같았다.
준의 눈에 보이는 출입문, 거기에 매달려 있는 방범용 체인줄이 아직도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의 오른손이 자동적으로 왼쪽 겨드랑이 밑을 더듬었다. 그러나 겨드랑이 밑은 허전했다. 준이 습관 처럼 겨드랑이를 더듬어 권총을 찾았으나….
준은 또다시 무슨 소리가 들릴 때까지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부엌 대형 냉장고 옆에 숨어 기다렸다. 침을 삼키기 조차 힘들 정도의 긴장감이 준의 심장을 압박했다.
이 때 갑자기 멈춰 있던 냉장고의 모터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준은 모터 소리에 너무나 놀라 그만 신음을 토해 내고 말았다.
적어도 5분 정도 더 기다려 보고 그 때까지 주위에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다면 이것은 나이 먹은 자기 착각으로 돌리고 재빨리 이 집에서 빠져 나가기로 준이 마음 먹었다.
준은 거실로 나와 다시 침실 안을 살폈다. 비상 계단 쪽으로 조금 전에 열어둔 창문이 보였다. 침실의 검은 커튼이 창문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또다시 오싹하는 공포감이 준을 엄습했다.
일 이초 쯤이면 방을 가로질러 밖으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시간을 계산했다. 그러나 그것은 준이 이루지 못할 하나의 소원이 되었다. 준이 열린 창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을 때 쏜살 같은 사람 그림자 하나가 방 문 뒤쪽에서 나타났다.
그림자는 준이 미처 대응할 준비도 하기 전에 명치에다 커다란 주먹을 날려 준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말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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