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안케 작성일 : 2011-08-27 조회수 : 762
죽을 고비를 두 번씩이나 넘긴 그 미국인



      죽을 고비를 두 번씩이나 넘긴 그 미국인


 



그 미국인이야말로 천운을 타고 난 것 같았다.


그때, 요행스럽게도 19번 도로에 비상착륙하여 그 미국인을 구출했던 무장헬기 조종사가 미 공군 제 7전술기지에 돌아가서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거나, 몇 시간만 더 늦게 구출하러 왔더라면 그 미국인은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미국인이 한국군 소도산 전술기지에서 병원헬기에 구출되어 날아가고 나서, 몇 시간 후에 핵폭탄이 터져도 끄떡없다던 106mm무반동총 탄약고가 적들의 포탄이 공기통 창문을 통해 탄약고 안으로 정확히 날아들었다.


탄약고 속에 그 미국인과 같이 있었던 지원중대 소속 포반장과 포사수, 부사수, 탄약수 한국군 4명은 전원 전사했다.


 



그 미국인은 이번에도 저승문턱까지 갔다가 불가사의하게도 혼자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월맹군으로부터 타이어에 집중 사격을 받았다.


흰 픽업 자동차가 멈추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터에서 수색중대 본부와 제1소대가 수색정찰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기습공격을 받아 큰 피해가 났던 장소다.


수색중대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가 선봉에 서서 19번 도로 Q-커브공터에서 아군전사자 시신수습을 하러 들어가다가 장렬히 전사했던 곳에서도 그 미국인은 불가사의하게도 혼자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주월 한국군은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그 미국인은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핵폭탄이 터져도 안전하다는 탄약고 속에 며칠 동안 같이 있던 한국군은 전원 전사했는데도 비무장인 그 민간인만은 요행히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면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정신 무장된 그의 강인한 정신력이 두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용케 살아남게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2년 4월12일, 미군 무장헬기에 구출되어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 처음 왔을 때는 불안과 공포에 떨며 어두침침한 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 미국인에게 제 1중대 전술기지에 파견 나온 지원중대 소속 전우들이 물과 먹을 것을 챙겨주면서 잘 보살펴 주었다고 했다.


 



지난 번 맹호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이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를 방문했을 때부터 월맹군의 82mm박격포와 75mm직사포에 맞아 처음으로 제1중대장의 전령이었던 한 병장이 전사하였다.


사단 작전참모가 큰 중상을 입은 후부터는 계속 638고지에서 아래에 있는 600고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상공에 헬기소리만 나면 월맹군들은 박격포와 직사포탄을 쏟아 붓고 있었다.


보급 헬기가 착륙할 수 없었던 관계로 소도산 전술기지에 보급이 중단되었다. 물과 식량이 고갈되었다.


 



그 미국인 민간인에게 물과 먹을 식량을 챙겨주지 못했다.


배구장 공터에서 운반해 오는 포탄을 탄약고에 정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히 돌아가는 마당에 그 미국인을 돌봐 줄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아무도 거들떠 돌봐주는 사람이 없던 그 미국인은 배가 고파 쓰레기장을 뒤적이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으로 본의 아니게 이 처절하고 치열한 앙케 전투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는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유일하게 앙케 전투를 참관하게 되었다.


그는 죽을 고비를 두 번씩이나 넘기고도 불가사의하게도 살아남았다.


그는 기적처럼 살아서 미국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 당시,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 있는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뒤적이면서 불안과 공포에 떨며 울먹이던 나이와 이름도 모르는 그 미국인 친구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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