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훈장이 무슨 소용이냐
권 병장은 처음으로 월남에 온 것을 한없이 후회했다.
온갖 복잡한 생각으로 후회스러운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권 병장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씨 팔! 죽으면 훈장이 무슨 소용이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권 병장 혼자뿐만 아니라 다른 전우들도 그와 똑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신임중대장 인사말과 훈시가 끝나고 벙커바깥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온 최지원 병장은 신임 중대장의 부임 인사말과 훈시를 듣고 실망이 컸다고 하면서, 신임중대장의 신상에 대해서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소상히 엮어대느라 바빴다.
신임중대장은 몇 번이나 소령진급에 탈락해, 이번 기회에 수훈을 세워 그 알량한 훈장을 받아 진급해보려고 수색중대장으로 지원했다는 소문과 재 파월까지 했다고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우리 병사들이야, 훈장이나 국립묘지에 안장시켜주니 하는 것은 관심 밖이며, 오직 살아서 부모형제와 사랑하는 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하나같이 바라는 심정일 것이라고 투덜거렸다.
“장교들이나 부 사관들도 무공훈장 받아 승진하여 명예 얻으면 뭐해! 죽으면 그만인 것을 ……”
“우리 아버지도 장교였는데 6.25전쟁 때 전사하셨기 때문에 어머니 혼자서 고생하는 것을 보고는 육사에 가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육사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신임중대장과 같이 올라온 수색중대 부관, 조만행 중위의 입장이 참으로 난처해보였다.
그는 귀국날짜를 약 20일 정도 남겨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앙케 전투가 터졌기 때문에 갑자기 귀국이 취소되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이 치열하고 처절한 앙케 패스 작전에 투입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귀국하여 그리운 부모형제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무척 상심해하는 얼굴이었다.
4월 12일 작전출동 첫날,
19번 도로 Q-커브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대신 수색중대 제2소대 임시소대장으로 부임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어처구니 없어하며, 어쩔 수없이 부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월남에 도착하여 약 2주간 교육과 훈련을 받던 신병들도 수색중대 부관 조 중위와 함께 도착했다.
이번 앙케 전투발발과 동시에 주월 한국군의 모든 귀국 장병들은 귀국이 취소되었다. 연대 내에서 실시하는 약 2주간 교육과 훈련을 받던 신병들도 남은 교육과 훈련을 생략하고 곧바로 앙케 전선으로 투입되었다.
뜻하지 않게 앙케 전선으로 투입된 신병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극도로 심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이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고참병이라고 전사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신참이라고 다 전사한다는 법은 없지만, 고참병들보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신참들이 더욱 더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이 전쟁터를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치게 되는 것은 삶에 대한 욕구로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수색중대도 새로 중대장이 부임해 왔고 수색중대 부관이었던 조만행 중위가 제2소대 임시소대장으로 부임해왔으니, 머지않아 수색중대도 특공대를 조직해서 밤에만 638고지에 수색 및 매복 작전을 수행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자, 밀려오는 두려움과 공포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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