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안케 작성일 : 2011-08-03 조회수 : 886
비굴하지만 살 수는 있으니까

 



      비굴하지만 살 수는 있으니까


 



수색중대원들이 허기와 갈증에 대한 불평불만을 터뜨리면서 배구장에 떨어뜨려놓은 탄약을 탄약고로 운반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중대본부에서 전달이 왔다.


수색 중대원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물과 보급품을 공수해온다는 전달이었다.


중대원 모두가 이젠 살았다고 기뻐 날뛰었다.


 


이곳에는 적들의 포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보급헬기가 착륙할 수가 없어, 공중에서 물과 보급품을 투하할 예정이라고 했다.


모든 병력은 탄약 운반하는 작업을 중단하고 벙커나 외곽초소에 들어가 있으라는 전달이었다.


헬기에서 물과 보급품을 공중에서 떨어뜨릴 때, 보급품에 맞아 안전사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순간, 방칸 쪽 상공에서 “투! 투!” “타! 타! 다 따!~” 헬기 굉음과 함께 작은 헬기 두 대가 나타나더니, 두 대중 한 대는 높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상공에서 선회비행을 하였다.


전투식량을 실은 2번 헬기는 계속 선회를 하며 대기하였다.


 


물을 가득 실은 1번 헬기는 소도산 전술기지 상공을 낮게 비행하면서 105mm~155mm포 장약 통에 담아 싣고 온 물을 공중에서 제 1중대소도산전술기지에 떨어뜨려주었다.


물을 다 떨어뜨려준 제1번 헬기는 사단사령부가 있는 퀴논쪽 방칸 상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지금까지 계속 높은 상공에서 선회하며 대기하고 있던 2번 헬기도 1번 헬기처럼 낮게 비행을 하면서 싣고 온 전투식량을 떨어뜨려주고 동쪽 하늘로 날아가 버리자, 그 뒤를 이어 3, 4, 5, 6번 헬기도 싣고 온 물과 보급품을 공중에서 떨어뜨려주었다.


 


공수해 온 보급품 중에는 캔 콜라와 캔 맥주도 수십 박스가 그득그득 채워져 공중에서 떨어졌다.


수색 중대원들이 살판이나 난 듯 환호성을 지르며 벙커 바깥으로 달려 나가 물과 전투식량, 캔 콜라, 캔 맥주를 정신없이 주워 먹으며 좋아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갑자기 638고지에서 적들의 82mm 박격포가 “꽝!~과 광!~” 떨어지기 시작했다.


적들은 보급헬기만 왔다가 날아가고 나면 틀림없이 아군들이 보급품을 주우러 벙커 속에서 바깥으로 나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서 즉각 포탄을 아군전술기지에 투하하는 것이다.


 


마치, 모이를 주워 먹으러 우르르 몰려나오는 병아리를 낚아채는 솔개와도 같이.


 


처음에는 보급헬기가 왔다 가면 적들의 포가 떨어진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배고픔과 갈증으로 눈이 뒤집혀 잠깐을 참지 못하고 방심하여 무작정 보급품을 주우려고 벙커바깥으로 나갔다가 전우 여러 명이 적들의 포탄에 맞아 전상을 입기도 했다.


 



제1중대 보급계가 다 주워 모아서 보급품 파악도 해야 된다면서 통제를 했다.



그러나


보급품이 제1중대전술기지 안으로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대전술기지 철조망 바깥 적진에도 떨어지다 보니, 그도 더 이상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제1중대 보급계에 가서 구차하게 차용증 쓰고 달라고 할 것 없이 적들의 포탄만 잘 피해서 눈치껏 주워 먹는 것이 임자였다.


물도 마음껏 마셨고, 전투식량과 콜라, 맥주를 양껏 주워 먹게 된 중대원들은 활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자연히 말이 많아졌다.


 


사단장이 격려차 순시를 끝내고 돌아가실 때, 헬기 앞에서 경계를 서다가 사단장이 느닷없이 점심은 먹었느냐고 권 준 병장에게 직접 물어보았을 때,


“식량이 떨어져서 점심을 먹지 못했습니다.”


얼떨결에 사실 그대로 대답했던 권 병장이 한 마디 했다.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사단장님께 보고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옆 전우들이 “잘했어!” “참 잘했어!” 서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분위기가 한창 재미있어지는데 서울대학을 나왔다는 최지원 병장이 그렇게 좋아할 것만은 못 된다고 찬 물을 끼얹었다.


 


군대라는 생리상, 사단장님이 연대장님에게 아주 심한 질책과 문책을 가하였으면 연대장님은 틀림없이 대대장님에게 더욱 더 심한 질책과 문책을 했을 것이고, 대대장님은 제1중대장에게 더 큰 문책과 지휘책임을 물었을 것이라고 그럴싸하게 말했다.


 


그렇게 되면 그 앙금과 감정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수색중대에 악 영향을 끼쳐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며 그가 내리는 나름대로의 추측을 통한 예단이었다.


“우리 수색중대는 완전히 미운오리새끼신세가 될 거야.”


 


그 당시는 예측을 하지 못하였지만, 이번 사건 때문에 수색중대는 91명의 적을 사살하고 큰 수훈을 세워서 천신만고 끝에 638고지를 두 번씩이나 공격하여 앙케 전투에서 승리의 주역이 되고도, 승리의 주역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는 황당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모두들 수긍을 하면서도, 그 까짓것 우리는 두렵지도 겁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어떤 전우는 차라리 고국에 있는 남한산성육군형무소라도 보내주면 두말없이 가겠다는 농담어린 진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비굴하지만 살 수는 있으니까.”


이 숨 막히는 생지옥 같은 앙케 패스 전쟁터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일념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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