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안케 작성일 : 2011-07-30 조회수 : 972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 왔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는 했지만


 



다시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칠흑 같은 어둠이 앙케 협곡에 내려 깔렸다.


신 상병이 품었던 실낱같은 희망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절망과 실망에 젖어들었다.


끝없는 나락으로 한없이 내동댕이치듯 굴러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심한 불안과 공포에 떨다가 정신이 획 돌아버린 것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산짐승들이 개울가에 물을 먹으러 눈에 파란불을 켜고 모여들고 있었다.


총이 없어 더 무섭고 두려웠다.


엄습해오는 공포와 무서움에 떨었다.


‘이제 이 자리에서 꼼짝없이 죽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자신을 구출하러 오지 않는 전우들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너무나 무서워 견딜 수가 없다고 하면서 계속 울먹였다.



바위틈 속에서 기어나온 적들이 죽은 전우들의 영현을 툭툭 차면서 정글화도 벗겨서 신었다.


아군의 배낭에서 전투식량도 꺼내 먹었다.


적들은 아군의 영현을 AK-소총으로 쿡쿡 찔러보고 있었다.


붉은 베레모를 쓴 두 놈이 점점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다.


신 상병은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면서 또다시 울먹이고 있을 때였다.



이때, 중대위생병이 다가왔다.


김 상병은 위생병에게 신 상병이 AK-총알이 스쳐가는 충격에 정신을 잠시 잃었다가 깨어났다고 말했다.


적들이 확인 사살하는 것을 보고는 그 엄청난 충격으로 신 상병이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당장 106후송병원으로 후송을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대 위생병에게 말했다.


대위생병은 겉보기에는 멀쩡하다고 하면서 휴식과 안정을 취하면 정신이 돌아올지도 모르니 며칠만 두고 결과를 지켜본 후에 후송을 결정해야 될 것 같다고 답답한 소리를 했다.


신 상병은 그럴 리 없겠지만,


“이 치열하고 처절한 전쟁터를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될 자해하는 장병들과 꾀병 앓는 나이롱환자가 너무 많아 잘못 후송시켰다간 문책당하기 십상이다” 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신 상병은 수색중대소속이라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못 되니 일단 수색중대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해 대었다.



앙케 전투 그 당시에는 106후송병원으로 후송되어 오게 되면, 정말로 적과 싸우다 전상을 당했는지? 아니면 자해인지? 꾀병인지? 나이롱환자인지여부를 따져 옥석을 가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수도 없이 실려 오는 환자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영향이 엄청난 역효과를 초래하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사실이기도 했다.


전투력상실은 물론이고, 장병들의 사기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만일, 부정한 방법으로 후송되어 온 환자들이 있으면 곧 바로 남한산성육군형무소로 보낸다는 으름장을 놓아가면서, 후송되어 온 환자들을 일일이 조사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비일비재하였다.



제11중대는 수색중대원들의 전사한 영현수습작전과 행방불명된 전우들의 구출작전을 대강 마무리하고, 앙케 고개로 철수하는 제11중대를 따라 중대위생병과 김춘주 상병이 신상철 상병을 부축하여 앙케 고개를 거쳐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에 있는 수색중대원들에게 데려다 주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신 상병은 4월 15일 수색중대전원이 638고지를 공격하기 위해서 출동하면서도 외상은 가벼워 보이지만 자꾸만 ‘저 붉은 베레모를 쓴 놈들이 ……󰡑횡설수설하며 히죽히죽 웃는 것이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 같아 작전병력에서 열외(제외)시켜 혼자만 제1중대 전술기지에 남겨놓고 출동했다.


수색중대 신 상병은 전사한 전우들의 영현 속에서 적들의 눈을 교묘하게 피하여 며칠째 계곡물을 마셔가며 천신만고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 왔었다.



고향인 강원도 평창군 두메산골에서 같은 마을에서 자란 순애와 결혼해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그때 잃어 던 정신이 안타깝게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받은 엄청난 공포의 충격으로 정신적 공황에 빠져 획 돌아버려 반미치광이가 되다시피 변한 그는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쓰고 있는 빨간 모자만 보기만 하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빨간 베레모’를 쓴 두 놈이 다가오고 있다󰡑고 기겁을 하면서 개울가로 뒹굴며 기어 내려가서는 바위틈 속에 숨어서 불안과 공포에 오들오들 떠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했다.



결국은 신 상병은 귀국 3년 후,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여왔다.


 


 




마틴리(맹호기갑)  2011/08/09 18:38:14 [답글] 수정 삭제
신상병 소식에 마음이 아픕니다.
안케  2011/08/09 18:38:14 수정 삭제
신 상병처럼 전쟁스트레스 중후군에 걸린 전우들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전상으로 인정하여 보훈혜택이라도 받는데, 우리 나라는 전상으로 인정해 주지 않아 보훈혜택도 받지 못하는 이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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