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기자
신 상병은 놈들에게 발각되면 AK-소총으로 무자비하게 사살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곧 바로 인정사정없이 무자비하게 확인사살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무서운 공포가 엄습해 왔다.
온 몸에 식은땀이 범벅이 되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야할지?
신 상병은 극도로 심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어떤 방법이든 살아남기 위해 별 생각을 다 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저 놈들에게 발각되어 무자비하게 확인사살당하기전에 얼른 손을 들고 나가서 목숨이라도 살려달라고 항복하면 살려줄까?
‘아니야! 지금 항복을 하게 되면 포로 신세가 되어 온갖 고초와 수모를 겪으며 북한으로 끌려갈지도 몰라!
북한으로 끌려가게 되면 나는 말 할 것도 없고, 우리 가족들까지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모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차라리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이대로 버틸 때까지 버티어 보자고 다짐했다.
온 몸이 물걸레처럼 흠뻑 젖은 채 불안과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고 있었다.
이때, 19번 도로 쪽 숲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놈은 시시덕거리며 총구에 끼워 신나게 빨아대던 담배를 얼른 꺼내 땅에다 비벼 껐다.
담배를 끼워 피우기 위해 뽑아 놓았던 탄창을 다시 끼웠다.
AK-소총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키며 총알을 장전하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숲 속을 향해 “따 콩!” 따 콩!~” 총을 쏘아대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마음 조리며 하얗게 질려 공포에 떨고 있던 신 상병은 이 기회가 하늘이 내린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신 상병은 전사한 전우의 영현 밑에서 재빠르게 기어 나왔다.
물소리가 나는 개울가로 기며, 뒹굴며 내려갔다.
개울가 바위틈 숲 속에 몸을 숨기고 날이 밝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고요한 정막을 깨뜨리며 가끔씩 들려오던 적들의 AK-총소리도 멈추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깔린 앙케 협곡에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신 상병은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렸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어느덧 4월 13일 새벽 먼동이 트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신 상병은 그때서야 그 자리에 총을 두고 그냥 내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 상병은 총을 찾으러 전사한 전우들의 영현이 널브러져 있는 공터로 살금살금 기어 올라갔다.
어제 밤에 확인사살을 하던 붉은 베레모를 쓴 적들이 아직도 있는지 살펴보았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는지?
주변은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대지도 않고 교교히 흐르는 달빛만 청승스레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신 상병은 조심스럽게 자신이 두고 온 배낭과 M-16소총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배낭과 총 뿐만 아니라 전사한 전우들의 배낭과 소총도 한 자루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간밤에 적들이 확인사살을 하면서 전사한 아군들의 배낭과 M-16소총을 상부에 전과보고를 하기 위해서 노획물로 수거하여 갔거나, 시장에 내다 팔기위해서 수거하여 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현지 시장에서는 M-16소총 한 자루의 가격이 미화 약 50-70달러 정도로 거래되고 있었다.
총기를 밀거래하기위해 전사한 아군의 소총을 다 수거해 가지고 간 것 같았다.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신 상병은 괜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에 얼른 개울가 은신처로 되돌아 왔다. 다시 개울가 은신처로 내려온 신 상병은 날이 밝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면 틀림없이 자신을 구하러 전우들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도 자신을 구하러 오는 전우들은 없었다.
주변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다.
공중에서는 헬기 한대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 먼지바람을 일으키면서 착륙했다가 이륙하여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헬기가 이륙해서 돌아간 후, 앙케 고개 위쪽 산 600고지에서는 “과~광!~” “꽝! 꽝!~”포탄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포탄이 계속 쏟아지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상공에서는 헬기 한 대가 계속 선회 비행을 하며 착륙을 시도하다가 포기한 듯 맹호 사령부가 있는 퀴논쪽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참 후, 방칸 상공으로부터 치누크 대형헬기 두 대가 굉음도 요란하게 앙케 고개 개활지에 착륙했다가 돌아갔다.
잠시 후, 방칸 상공으로 사라졌던 치누크 대형헬기 두 대가 또다시 앙케 패스 상공에 나타나더니 앙케 고개 19번 도로 옆 개활지에 착륙했다가 되돌아가고 나서도 한참 지났을까,
이번에는 작은 헬기 한 대와 적십자마크가 선명히 표시되어 있는 병원헬기가 공중에서 선회비행을 하는가 싶더니 앙케 고개 19번 도로 옆 개활지에서 연막탄이 피어오르는 지점을 향해 갑자기 급강하하여 내려앉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곧바로 상승하여 이륙한 병원헬기는 106후송병원 쪽으로 직행하고, 작은 헬기 한 대는 앙케 패스 상공을 몇 바퀴 선회비행을 하다가 빈케 쪽으로 사라져갔다.
하루 종일 헬기들만 공중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왔다 갔다 했지만, 지상에 신 상병이 은신해 있는 깊숙한 앙케 패스 개울가에는 아무도 얼씬도 하지 않아 밀려오는 적막감과 불안에 이제 살아 돌아간다는 것은 아예 엄두도 못 낼 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