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맹 특공대 장교의 증언
그때을 잊을 수가 있을가
주월 한국군이 월남에서 철수한 지 약 2년여 만인 1975년 4월 30일 10시 20분에 라디오 방송을 통해 월맹군들에게 무조건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월남공화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월남공화국이 패망한지 약 17년이 지난 1992년 12월 22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과 우리나라는 수교에 합의했다.
대한민국 MBC-TV방송국에서 대한민국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국교 수교를 경축하는 기념으로 베트남전사에서 최대 격전지였던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로 불렀던 638고지 현지에서 특집방송을 방영했을 때,
지금도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치가 떨리고,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 생각조차 하기 싫은,
수많은 젊은 목숨을 빼앗아 간 원혼이 서린 전우들의 피로 물들여진 영현들이 쌓이고, 몸서리쳐졌던 악몽 같은 꿈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한 많은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638고지의 낯설지 않은 풍경이 TV화면에 뜨는 순간,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죽어가던 전우들의 모습이 새삼 클로즈업되어 왔다.
39년 전 그때 ‘피의능선, 죽음의고지’ 라 부르던 앙케 패스 638고지 9부 능선 참호 속에 엎드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절망과 공포에 떨며 몸부림치고 울부짖던 전우의 마지막 숨져가는 모습, 고국에 계신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피맺힌 절규가 생생히 떠올라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당시의 절박한 순간을 생각할 때 살아있다는 것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고 아직까지도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주월 한국군은 638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많은 피를 흘리며 공격을 감행하였고, 월맹특공대들은 638고지를 사수하기 위해서 천혜의 요새와 같은 벙커와 참호 속에서 방어 작전을 펼쳤던 그 곳 638고지 정상에서 월맹군 제3사단12연대63대대 제450특공대장교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앙케 패스 638고지 9부 능선 바위 밑에 엎드려 공포에 떨었던 그때를 잊을 수가 있을가>
그때, “한국군(따이한)들은 쓰러지고 쓰러져도 끈질기게 인해전술작전으로 계속 밀고 올라오는 바람에 할 수없이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 증언하고 있다.
“주월 한국군병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 병사보다 용감하고 강했지만 앙케 전투에서의 전략과 전술작전은 월맹군이 한국군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적군으로서 서로가 총부리 겨누며 죽고 죽이며 싸웠던 사이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하던 그 월맹군특공대장교에게 거짓 없이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하지만, 맹호기갑연대수색중대가 앙케 작전에서 작전기록(전투상보)을 완전히 누락시키고 앙케 작전을 지휘했던 주월 한국군지휘부는 앙케 작전의 진실을 왜곡한 반면, 그 당시에 서로 싸웠던 적이었던 월맹군특공대장교가 앙케 전투에서 수색중대가 펼쳤던 전공을 진실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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