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안케 작성일 : 2011-03-18 조회수 : 2716
월맹 특공대 장교의 증언


월맹 특공대 장교의 증언


 


 


 


 그때을 잊을 수가 있을가



 

주월 한국군이 월남에서 철수한 지 약 2년여 만인 1975년 4월 30일 10시 20분에 라디오 방송을 통해 월맹군들에게 무조건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월남공화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월남공화국이 패망한지 약 17년이 지난 1992년 12월 22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과 우리나라는 수교에 합의했다.



대한민국 MBC-TV방송국에서 대한민국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국교 수교를 경축하는 기념으로 베트남전사에서 최대 격전지였던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로 불렀던 638고지 현지에서 특집방송을 방영했을 때,


지금도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치가 떨리고,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 생각조차 하기 싫은,


수많은 젊은 목숨을 빼앗아 간 원혼이 서린 전우들의 피로 물들여진 영현들이 쌓이고, 몸서리쳐졌던 악몽 같은 꿈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한 많은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638고지의 낯설지 않은 풍경이 TV화면에 뜨는 순간,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죽어가던 전우들의 모습이 새삼 클로즈업되어 왔다.


39년 전 그때 ‘피의능선, 죽음의고지’ 라 부르던 앙케 패스 638고지 9부 능선 참호 속에 엎드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절망과 공포에 떨며 몸부림치고 울부짖던 전우의 마지막 숨져가는 모습, 고국에 계신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피맺힌 절규가 생생히 떠올라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당시의 절박한 순간을 생각할 때 살아있다는 것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고 아직까지도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주월 한국군은 638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많은 피를 흘리며 공격을 감행하였고, 월맹특공대들은 638고지를 사수하기 위해서 천혜의 요새와 같은 벙커와 참호 속에서 방어 작전을 펼쳤던 그 곳 638고지 정상에서 월맹군 제3사단12연대63대대 제450특공대장교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앙케 패스 638고지 9부 능선 바위 밑에 엎드려 공포에 떨었던 그때를 잊을 수가 있을가>


 



그때, “한국군(따이한)들은 쓰러지고 쓰러져도 끈질기게 인해전술작전으로 계속 밀고 올라오는 바람에 할 수없이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 증언하고 있다.


주월 한국군병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 병사보다 용감하고 강했지만 앙케 전투에서의 전략과 전술작전은 월맹군이 한국군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적군으로서 서로가 총부리 겨누며 죽고 죽이며 싸웠던 사이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하던 그 월맹군특대장교에게 거짓 없이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하지만, 맹호기갑연대수색중대가 앙케 작전에서 작전기록(전투상보)을 완전히 누락시키고 앙케 작전을 지휘했던 주월 한국군지휘부는 앙케 작전의 진실을 왜곡한 반면, 그 당시에 서로 싸웠던 적이었던 월맹군특공대장교가 앙케 전투에서 수색중대가 펼쳤던 전공을 진실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마틴리  2011/04/18 20:37:02 [답글] 수정 삭제
마음이 아프네요 ~~
안케  2011/04/18 20:37:02 수정 삭제
마틴리님 안녕하세요?
꽃피고 새우는 4월이 오면 그 때의 처절하고 치열했던 앙케 전투의 모습이 새삼 내 뇌리에 클로즈업 되어 오는것 같군요.
이 작가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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