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이광묵 작성일 : 2011-03-05 조회수 : 926
맹호작전에서

 


당시에 필자는  맹호 천하1연대 12중대 3소대장을 하였습니다.


 


1970년  맹호작전에서 중대는 작전명령을 나의 소대에게 하노이 계곡 입구에서 정찰 및매복임무를 부여, 임무를 수행


 


하고자 우리 소대원은 3대의 헬기에 나누어  계곡 입구 의 높지 아니한 산에서 랜딩을 하였습니다. 마지막 헬기가  


 


공중에서 얕게 떠있는 상태로 소대원들이 뛰어 내리는데 갑자기 풀숲에서 총소리와 아울러 날아오는 탄환에


 


소대원중 송화섭하사가 쓰러지고 뒤이어 2명의 소대원이 소리를 지르며 피를 쏟고 있었습니다.


 


소대장인 나는 전주에 사는 이인우 통신병을 데리고 부상병 옆으로 뛰어가 우선 간이 치료 및 지열부터 하고 있는데


 


중대에서는 지휘보고 독촉에 간단한 보고 및 포격사격을 요청함과 동시에 구급헬기를 요청하였으나 베트콩의 강력한


 


저항으로  우리소대원들간의 촟격전이 근 2-3시간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며 우리 포병의 지원사격이 밤새 이루어져서


 


공포의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소대는 앞뒤가 분간도 할 수 없는 어둠의 쟝글속에서 계곡을 끼고 골짜


 


기로 내려가 포격 요청을 하였기에 크레모아 설치도 못하고 뜬눈으로 부상병을 보살피다가 도저히 구급헬기를 기다


 


릴 수가 없어 새벽녁에 아군의 요청된 포탄 속을 뚫고 3명의 부상병 후송하는데 그 전우애는  각자 자기의 생명을 두


 


려워 하지도 아니하고 전우를 살려보겠다는 의협심을 지금도 잊지못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베트콩들을 두려워 하지도 아니하고 전우를 살리겠다는 그 전우애는 우리 소대원뿐


 


만이 아니라 참전 전우들은 전부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런 전우들로 뭉친 전우들이기에 처음만나도 어색하지 아니하


 


고 반갑고 서로 의지하고픈 심정일 것입니다.


 


결국 2명은 숨을 거둔 고인이 되었고 송하사는 광주에서 상이용사로 생활하고 있는데 연락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


 


다.


 


전우여러분!  


 


우리 전우들은 고국을 위해 이렇게 생명을 아낌없이 받쳤습니다. 가끔 고인이된 전우 생각이 많이 나지요.


 


저는 그때 아군 포병의 폭탄소리에 한쪽귀를 듣는것이 상실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당시의 작전이 자주 생각이


 


나서 전투수기로 남깁니다.

정재성  2011/03/07 03:23:03 [답글] 수정 삭제
이 전우님, 일찍일어나서 이 감동적인 수기를 읽습니다. 당시 보병 소대장의 감회와 몸서리치게 아픈 감정을 감히 누가 추측인들 할 수있겠습니까. 저 역시도 초급장교로서 주워진 임무를수행 했었습니다만 직접 전투에 참전하진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작전 수기를 읽을때마다 많은부담을 느끼곤 합니다. 이 전우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용환(박..맹호)  2011/03/07 10:40:16 [답글] 수정 삭제
이광묵소대장님!
그때 아군포소리에 한쪽귀에 못들으시는군요..
전우님에 이 실전 전투수기가(이곳에는 전투라는걸 모르는 젊은이들도 보고계십니다.)
많은 분들에게 전투가 무엇인지를 일께워준다봅니다.
몸서리치는글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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