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차경선 작성일 : 2011-03-05 조회수 : 979
잘있거라 고국 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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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고국산하여




1970년 10월 5일 :


그 환호! 그 함성, 그 인파, 태극물결, 꽃 테프, 꽃술,  그리고 석별의 아쉬움에 울고 웃는 부


 


모형제 동료들이여! 아직도 어제의 부산항 그 환송식이 눈에 선한데, 지금은 망망대해, 보


 


이는 건 오직 시퍼런 바닷물과 파도, 그리고 웅장한 군함의 엔진소리뿐, 아무도 감히 농담


 


이나 서로에게 상처 될까 말 걸기를 삼가고 있다. “나는 야 그 이름 무적의사나이 그 이름


 


도 찬란한 백마부대 용사들 .....” 지금도 부산항의 군악대환송연주소리가 귀에 쟁쟁하고,


 


뭉클한 서러움이 가슴을 메운다.  이젠 누구도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전쟁터로 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 아니 무지하게 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무지무지하게 두렵고 떨리고 겁


 


이 난다. 열흘쯤 후면 전쟁터에서 나 스스로 내목숨을 보존해야만 한다. 죽음도 두렵지만


 


그보다 더, 부상당해서 불구가 되지만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身體髮膚 는 受之父


 


母 요, 敢不毁傷 이 孝始之也 라.(우리의 몸은 부모께로 받은 것이므로 이를 잘 보존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로다) 한 말씀처럼 옛사람들은 자기몸이라해도 자기 것이 아니고 따라


 


서 머리털 하나라도 감히 건드리는 것은 불효라 해서 평생을 상투머리로 살았다지 않는가.


 


농촌 어려운 살림에 자식하나 잘되기를 바라고 대학공부까지 끝마쳤는데 남의 나라 전쟁


 


에서 자식을 잃으면 죽어 없어진 나는 모르겠지만 내 부모님들은 어쩔까? 싶다. 그러나 차


 


라리 죽어 없어지면 잊을 수나 있으련만, 다리하나, 혹은 팔뚝하나라도 잘리어져 돌아오면


 


평생토록 두고두고 부모마음이 어떨까?를 생각하면 정말로 상상하기조차 싫어진다. 난, 종


 


교가 없지만, ”만일 하나님, 부처님, 신령님 계신다면, 이 전쟁에서 나를 보호하소서. 혹 내


 


가 부상을 당해야한다면, 차라리 죽게 해 주십시오.  팔 잘리고 다리 없는 상이용사는 정말


 


로 안 됩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볼 적마다 맨날 눈물로 살아가실 불쌍한 내 부모


 


때문입니다. 6개월 후 지금의 모습으로 지금 가는 이 길을 되돌아오도록 정말로 부탁하나


 


이다. 침상에 멍하니 앉아서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 보니 갑갑하고 답답하고 어쩔 줄을 모


 


르겠다. 이미 반년 전에 공수특전단으로 배치 받았을 때부터 예정된 수순이라고 수없이 다


 


짐하고 각오하고 오늘에 이르렀음에도 자꾸만 앞일을 걱정하고 있구나. 내 의지대로 내 맘


 


대로 될 것도 아니고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면서 말이다.  마음을 돌리려


 


고 갑판위로 올라갔더니 벌써 많은 병사들이 수평선을 바라보며, 조금은 긴장이 풀어진 듯


 


농담이나 담소도 하는구나.  그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는데, 돌이킬 수 없다면 고민해 무


 


얼 하랴.........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래도 신이 있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소원은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끔찍한 부상으로 불구가 될 바엔 차라리 내 스스로 목숨 끊을 수 있는 마지막 힘


 


을 내게 남겨주소서!  정말로 부탁하나이다.!




                                                                                                                                                                                                                                                                             


 <1970년 월남파병 함상에서쓴 일기 중에서>




그날의 일기장을 30년이 지난 오늘 읽으며, 그때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진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날의 기도대로 비늘하나 털끝하나 상하지 않고 오늘까지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아니한가?  그땐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전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이 어렴


 


풋이 지나간다.  내가 어렸을 땐 6.25 전쟁 직후라서, 전몰자나, 상이군경이 참으로 많았다.


 


사지 멀쩡한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 때였으니 팔 다리 없는 그분들이야 말해 뭣하랴, 목발


 


집고 이집 저집 구걸하는 사람, 팔이 없어 쇠갈고리하고 이 마을 저 마을 동냥하든 상이용


 


사들, 때론 얼마나 힘들었으면 위협적인 언행으로 동냥질하던 때였으니 어린 마음엔 그들


 


이 굉장히도 무서웠고 목발, 쇠갈고리, 그것은 무섭고 소름끼치는 악한 것으로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으니, 차라리 죽음이 낳을거란게 이해되고, 짐작이 간다. 그들이 누구인가?


 


이 나라와 민족을 몸까지라도 바쳐서 지켜온 자유수호의 산증인이요 우리의 형제, 우리들


 


의 부모들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오늘 생각해보면 나는 참으로 작고 이기적이며 이웃을 사


 


랑하지 못한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절박한 소원을 다 들어주신 하나님


 


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온 나 스스로가 부끄럽다. .


 


 





 




차경선  2011/03/05 12:16:33 [답글] 수정 삭제
제 블로그에 있는 저의 작전일기를 오늘부터 게재하겠습니다
이 일기는 제가 파월당시 작전지에서 쓴 일기를 최근 컴퓨터에 당시의 글 그대로를 올린 것입니다.
저는 작전중에 작은 수첩하나와 모나미 볼펜 한자루를 비닐에 칭칭 쌓아 포켓에 넣고 다니면서 그때그때의 상황을 메모했다가 귀대하면 이를 일기로 써 왔는데 최근에 이를 컴퓨터에 저장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 올려진 날짜와 시간은 정확히 그때와 일치하는 것이랍니다
여러분의 사랑을 기대합니다
박용환(박..맹호)  2011/03/07 10:57:12 [답글] 수정 삭제
전란이후에 쇠갈코리 상이용사들의 가정방문 (가정이라해야 초근목피로 근근이)
을하면 나이 어린 우리들이야 숨을곳을 찾는게 우선하고..

그 상이용사들이 다녀가면 합심원이라는 이기붕씨(자유당시절 정 부통령성함)졸게들이
바스쿠리(스레기 주워담는 등에걸러메는거)걸러메고 갈고리를 한손에쥐고 또 한손엔
찝게를 휘두루면서 가정방문.. 그러면 우리들은 또 숨을곳을 찾아 다니고..그러다
하루 세월을 보내곤 하였지요...오죽하면 마을 어느집에 초상이 생겨도 바스쿠리 걸러멘
그들을 우선 불러서 따끈한 술에다 주머니에 몇푼이라도 넣어주어야 초상행사를 치룸니다
멋모르고 갸들에게 신고안하고 초상치룰시엔 그 행사는 엉망으로 만드는 그들은 안하무인.

그후 5.16후엔 합심원 그사람들은 현역들에게 이끌려서 혼쭐나는걸 직접 목격하곤
스스로가 환호성을 올렷던 기억이 아스라이 남니다만..
마틴리(맹호기갑)  2011/07/04 10:58:33 [답글] 수정 삭제
부산항을 떠나던 그 착잡했던 심정.... 당시의 상황이 머리속에 전개가 됩니다.
부산항을 바라보면서 살아서 돌아올수있을까..
당시를 회상할수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빨리 읽고 싶네요.
감사드립니다. 후쿠오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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