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전우 작성일 : 2010-10-02 조회수 : 1711
내가 참전한 월남전의 한국군(2)

그렇게 3년의 군 생활도 1년여를 남기고 강원도 오음리에서 월남 적응훈련을 마치고 머리카락, 손 발톱을 잘라 봉투에 넣으니 죽기를 작정하고 떠나는 길이지만 나의 이 분신들을 가족들이 받을땐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겠구나 하는 허무하고 참담하면서도 참으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선발대로 차출된 나와 일부 인원이 춘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환송식을 하는데 차창밖을 내다 보니 어떤 전우들은 어찌 알았는지 가족들이 나와 이름을 부르며 서로 손을 흔들며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을 보며 형님 한 분과 누님 가족이 계시지만 참전 자체를 알리지 않았으니 찾아 올리 만무하건만 그래도 혹시 하며 두리번 거리던 내 모습이 처량해 보일 것 같아 눈물을 머금으며 그렇게 청량리역 용산역을 거쳐 아마도 새벽 2,3시경 부산항 제3부두에 도착했다.


 




백마승선.jpg


 


바다구경 이라곤 진흙과 뻘밭인 인천 앞바다만 두어번 잠시 가보았을 뿐이고 역과 부두는 당연히 멀리 떨어져 있을것이란 선입견 때문에 3부두에서 내려 앞쪽 무지 커다란 건물쪽으로 일렬로 향하는데 그것이 우리가 월남까지 타고 갈 수송선이라는 것은 배 앞에 다다라서 배와 연결되어있는 울렁대는 연결다리를 밟고서야 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열차가 부두까지 들어 올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당시의 내 상식으로는 아니 내 상상력과는 너무 먼 큰 배에 넋이 나갈 정도였다.


 


그 배는 미국 수송선 바레트호로서 25,000t급이라 했다. 우리 26제대 육, 해, 공, 해병대 등 본대들이 다 타면 2,000여명이 탄다고 하니 2,000여명이면 사단 병력인데 입이 벌어질밖에...


 


우리 배식조는 10명 정도로 기억되며 후미 선실 한 칸에 배치되어 배식조장을 맏아 미군과 통역의 식당 관리 및 배식 요령을 익히고 식당입구에서 배식 관리를 하는 한편 우리 선실 관리까지 맡게 되었다.


 


가정이 없이 지내오던 나였지만 서울토박이인 나인지라 친구들 선배들 덕에 상류들의 집들도 호텔도 다녀 보았지만 이 큰 배는 호텔도 상류층 집들도 나의 짧은 상식을 모조리 부셔버리기에 충분했었다.


 


많은 환송객들이 부산을 출발하는 우리들을 향해 태극기며 손수건이며 맨손을 흔들며 울부짖는 모습들을 식당 선창으로 내다보며 고국땅과 마지막이랄 수 있는 환송객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고 가족들, 친구들, 떠오르는 지난 기억들을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전장으로 향하는 병사들의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맡은 임무를 수행하려 애를 쓰며 많은 전우들이 서울구경도 제대로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수송선 내의 모든 시설들이나 식품들에 전우들의 놀람은 나 못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너희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속의 신사 한국군임을 항상 명심하라"던 어느 지휘관의 말씀이 생각나 전우들에겐 뭐 별스럽지도 않은 뜻 우리들 임무에 충실하고 미국사람들에 책잡힐 일들을 하지 말자고 독려하며 배식조의 임무를 시작하였다.


 


식당은 후미쪽에 자리하였는데 지금 기억으로 한번에 약 2백여명 정도가 사용할 정도가 아니었나 싶고 캘리포니아산 쌀이였는데 밥맛은 우리쌀이랑 별다른 차이가 없었고 그 쌀을 밑에 층에 있던 취사실에서 앃은 얕은 사각 쟁반그릇에 쌀을 적당량 넣어 큰 가마니속에 층층으로 된 칸에다 넣어 증기로 쪄대며 식당으로 올려 보내면 우리들은 그 것을 배식하면 되는 것이었다.


 


고기며 각종 고급으로 된 부식과 후식으로 나오는 사과와 과일들 또한 아이스크림이 있었는데 당시 아이스크림은 서울서도 구경도 하지 못하던 요즘 많이 보는 일회용 그릇에 담겨있어 달린 나무스픈으로 퍼먹는 아주 맛있는 후식이였다.


 


그리고 식당 한켠에는 커다란 알루미늄 보온통에 커피가 담겨있어 식 후에 던져도 잘 깨어지지 않는 누런 플라스틱 머그컵을 들고 보온통 아래의 배출구에 컵을 들이 대면 받아지는데 우리네와 비교하면 식 후 숭늉을 마시 듯 그들이 준비해 놓은 커피맛은 밋밋한 아주 약한 블랙으로 이었으며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전우들 입에 그리 맞지 않았으나 그래도 미국사람 흉내라도 내듯 주위에서 폼잡고 마시는 전우들도 있었다.


 


일반 전우들이 아침을 먹으면 바로 뒷줄에 서야 점심을 먹고 바로 또 줄을 서야 저녘을 먹을 수 있는 그런 하루하루가 지속되었다.


 


삼일정도 지나서부터 바다는 어느덧 망망대해... 먼 바다여서 인지 배에서 버리는 음식물을 쫒아다니던 갈매기들도 안보인다. 바다에선 날치란 놈들이 우리배와 경주를 하듯 바다위를 제비처럼 떼를지어 날렵하게 날아간다. 어느땐 돌고래들도 나타나 같이 경주를 한다.


 


한국에선 감히 쳐다보기 힘든 음식들이 모자라서 쩔쩔 매기도 했는데 음식이 점점 적게 올라 오는 것아다. 취사장으로 달려가 항의했더니 그것도 남아 였다.


 


아닌게 아니라 식사하러 오는 전우들도 줄어들고 적어진 양도 점점 남아 바다에 버리곤 해 아까운 생각이 들었는데 파도의 롤링으로 배멀미를 하는 것이다. 식사량 조절은 그 동안의 참전자들을 수송한 결과이리라.


 


우선 이 수송선의 화장실을 소개하자면 약20m정도의 넓은 공간에 벽쪽으로 쭉 칸이 나뉘어져 있고 그 칸안에 양변기가 있고 양 옆에는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달려있고 한국에선 중 상류층 집에서나 쓰는 화장지가 있고 문이 없다.


 


처음 화장실을 갔을땐 옆칸은 안 보이지만 앞쪽은 서로 마주보며 멎적은 웃음과 고개를 숙이고 볼 일들을 보는 것이다. 보는 이가 많은 낮선 환경에서 처음엔 민망스러워 볼 일도 제데로 보기 힘들었다.


 


날이 갈수록 그런 민망스런 화장실이 만원이다. 바닥엔 토해낸 오물들과 그 위에 쓰러져있는 전우들, 변기위엔 나올 생각도 없이 손잡이를 잡고 힘없이 쳐진 전우들이 늘어만 가는 것이다.


 


화장실은 물론 선실 심지어 갑판에 까지 올라가 여기 저기서 쓰러지고 오바이트하는 전우들이 눈에 뛰게 늘어나는 것이다. 거기다가 화장지까지 바닥이 났는데 화장지 공급이 안된다.(연대 보충대에서 관물검사시 각자들의 따블백에서 수송선 화장지들이 쏟아지는데 그제서야 화장지 보급을 안해주던 사정을 알수 있었음.) 아주 심한 전우들은 기절을 하고 의무실까지 가는 전우들도 있다했다.


 


나는 다른 전우들 보단 멀미가 늦게 왔고 심하지도 않았다. 세계에서 수심이 제일 깊다는 필리핀 해협이란다. 이곳은 롤링(좌 우로 흔들리는 현상)이 문제가 아니라 피칭(앞 뒤로 흔들리는 현상)을 한단다. 몇이서 배가 바다로 들어 간다며 나를 갑판으로 불러내여 달려가 보았다.


 



 


배 앞쪽에 어마어마한 파도가 보이는데 높이가 100여m가 넘어 보인다. 우리가 탄 배가 그 시퍼렇다 못해 검은 물속을 향해 달려가고있다. 아니 배가 바닷물로 잠수하려 다이빙 하는것 같았다.


 


우리들은 선실문쪽으로 달려가 문을 잡고 있다 물속에 들어감과 동시에 선실문을 닿고 있다 찰~썩 하는 배를 뒤덮는 파도소리를 듣고 다시 문을 열고 갑판으로 달려 나가면 배는 비행기로 변한듯 바닷물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밑의 바닷물은 점점 멀어지고 바닷물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다시 높은 산보다 더 큰 물산이 나타나고 배는 그 물산을 향해 달려간다. 


 


나는 그 때 비로서 어지러움증과 구토증세가 나타났으며 하루인가 이틀을 쩔쩔 매던 기억이 난다.


 


배 앞쪽 선실은 육군을 비롯 많은 인원의 부대가 차지하고 후미 선실은 해병대와 선발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식당 입구가 두 줄로 되어있어 서로 엉키며 해병대와 육군 그리고 해병대와 공수부대 등이 배식에 있어서 서로 보이지 않는 기싸움 여러번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해병대와 공수부대를 한쪽줄을 전용으로 주고 나머지는 육군이 사용하게끔 양해를 받아내 서로간의 마찰을 피하고 임지까지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배식이 끝나고 식당 및 선실점검을 준비하는데 우리 조원들이 선실로가다 해병대에게 맞았다는 보고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니 해병대원들이 마포걸래 자루를 잡고 턱을 고이고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째려보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우리 배식조들은 선실로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해병들의 관할 구역을 거쳐야 하는 찜찜함 때문에 나는 배식때 가끔 그들의 무뢰함을 눈감아 주기도 또 그들이 원하면 더 주기도 하며 그들과 불편함을 덜고자 노력했는데 우리 조원을 폭행했다는 보고를 받고 약이 바짝 올라 나의 살기어린 눈초리를 치켜뜨고 우리 조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들에게 다가깄다.


 


그리고 장교를 찾았으나 장교는 보이지 않았고 하사관 몇 명이 보였다. 병들을 비켜 하사관에게 다가가는 순간 병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주위를 보니 우리 조원들이 안 보인다. 엘리베이터 쪽을 쳐다보니 그 안에 몰려들있었다. 배신감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상황이 우리 조원들을 원망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하사관에게 다가가는 순간 한 해병병사가 "어이 눈깔 없어" 하며 반말찌거리와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주먹을 피하며 제일 가깝게 있던 어느 하사관의 멱살을 움켜잡고 해병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 한 발짝만 움직이면 너의 하사관과 나는 월남가서 죽기전에 여기서 죽을 수도 있어 모두 움직이지마!" 하며 해병 하사에게 한마디 또 던졌다. "너 나하고 여기서 죽지 않으려면 나와 단 둘이 갑핀에서 맞짱뜨자." 하였더니 자존심이 대단한 이 해병 하사는 따라붙는 해병 병사들에게 따라오지 말라며 내게 멱살을 잡힌채로 갑판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며 이 해병하사는 이미 내게 전의를 상실해 있음을 느껴 잡은 멱살을 풀어주며 누가 먼저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같이 가면서 이 배에 탄 모든 전우들에 배식을 하고 식당 및 선실 검열을 받기위해 너희들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우리들인데 왜 이런 불미스런 행동들을 하느냐, 우리 조원들이 잘못이 있다면 나에게 항의하던지 하지 않고 왜 폭행을 했느냐, 제대장에게 보고하랴는 등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니 이 해병하사가 폭행건에 대해 즉시 사과를 했고 뒤이어 그렇게 하게 된 이유를 설명을 하는데 나는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이유인즉 서로가 잘 아는 담당 구역인데 청소중에도 누구던 지나갈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헣게 생활해 왔었다는 것이고 그러나 보다 싶이 청소를 하는 꼴을 보고도 미안한 기색 전혀 없이 한 놈 눈치보다 뛰어 가고 조금있다 또 한놈 뛰어가고 청소하는 우리들을 약올리듯 튀어 나와 생쥐 지나가둣 하면 없던 성질도 나오게 행동들을 한다는 것이다.


 


왜 떻떻하게 한데 모여 서로 인사하고 한번에 지나가면 서로 오해도 없고 성질 날 이유도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인데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그는 이어서 지금도 보라는 것이다. 저네들 조장이 혼자 봉변을 당하는데 어느 한놈도 나서서 협조하는놈 하나도 없질 않느냐며 육군은 그렇게 단합이 안 되느냐는 말은 나를 더 궁지로 몰아대는 결정적 한 마디였다.


 


그렇게 갑판에서 옥신각신 하는 동안에도 육군들은 코빽이도 안 보였지만 선실문을 잡고 여차하면 내게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던 해병들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의리와 명분을 중시 하는 것 같았다. 그런 해병들이 내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해병들은 지원병으로 육군보다는 대부분 나이가 어린 편이다. 그 해병 하사와 나는 그렇게 속마음을 서로 털어 놓고 나보다 서 너살 적었던 그에게 월남에서의 분투와 무사귀환을 빌어주며 남은 기간동안 우리 배식조에게 협조를 약속 받고 그들과의 마찰을 수습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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