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만서 작성일 : 2019-08-15 조회수 : 82
歲月

세월(歲月)
인간의 삶에 있어 굴곡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만 살아온 세월들이 한해 두해 늘어가면서 그 굴곡의 세월들조차 주마등 되어 영화처럼 추억이란 이름으로 흐르는 나이가 되면 살아온 만큼 이마엔 주름지고 머리엔 하나 둘 서리가 내려앉는다.
어느 가인(歌人)이 노래했던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그렇게 늘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살아오면서 깨우친 삶의 철학이 되었다. 나만의 삶이 험하고 불행했다고, 불평하자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아프고 슬픈 얘기들이 흐르는 세월만큼 쌓였겠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도 그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터이다. 내가 살아온 세월 역시 그렇게 누군가가 결정지어서 이 땅에 보냈는지 새삼 따져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젊은 날 내 전우들의 죽음들 앞에서 하늘을 향해 팔뚝질을 하면서 절규하던 그 철없던 치기도 이젠 내려놓고
살아오면서 그나마 행복했던 만학(晩學)의 세월 지난 10년을 돌아본다.

그렇다. 세상을 버리고 훌훌 떠나야 할 때 그나마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게 한(恨)으로 남는다고 했던가? 그러나 어쩌랴 내게 이미 정해진 운명의 굴레가 그저 그렇게 살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도록 안배된 삶이라면 그 또한 내가 짊어져야할 짐인 것을, 모두 내려놓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하늘이 부르는 날을 기다리며 살았다. 2010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지긋지긋하게도 평생을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던, 그 한(恨)마저 내려놓고 온갖 미련을 떨쳐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짚으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으로 고등학생이 되었다. 육신은 제법 많이 늙어 있었지만 새로운 길을 찾았다는 안도감으로 행복했다.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은 잠시였고, 고교생활 3년은 꿈결처럼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의 문 앞에 의젓하게 섰다. 살아온 지난 어느 날보다 근엄하고 비장하게 그렇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노병(老兵)의 만학(晩學)은 그렇게 시작해서 이제 그 막을 내리려 한다. 배움의 완성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처음 고교생이 되던 날 스스로에게 다짐 했던 10년 공부가, 아득하기만 했던 그 10년의 세월이 이제 그 끝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왜? 10년을 다짐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10년 공부 ,,,,,,’하는 옛 이야기에서 생각났던 모양이다. 고교 3년, 대학 4년 그리고 그 위 까지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위에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경제적 문제가 앞을 막고 있었다. 대학의 졸업논문이 통과되자 교수님이나 젊은 선배들이 대학원을 권한다. 하지만 ‘이 나이에 없는 돈을 들여가면서 대학원을 간다는 것’은 나 스스로 사치라고 생각 했다. 진실로 이것으로 만족이고 충분하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권하는 사람들의 면을 봐서 타 학과로 편입을 결정했다. 그러니까 10년 공부의 끝은, ‘국문학과’와‘문화교양학과’두 학과를 전공하는 것으로 일단락 하기 로 했다. 그 10년의 행복함이 나 세상을 등지고 가는 순간 까지 내 삶에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을 것이기에 세속적인 모든 것들을 초월하려한다. 그만하면 되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 하산(下山)을 준비해야겠다. 아직도 미완성은 물론이고, 모자라고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10년 전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고 시험해 볼 일이다. 결코‘10년 공부 나무아비 타불’이 되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앞으로 내게 남은 세월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허락된 세월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희망의 무지개를 그려 볼 생각이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궁금하고 흥분되지만 적어도 10년 전의 못난 그림을 다시 만들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참고, 인내하고, 경청하고 겸손해야 하는 것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하는 내게 주어진 작은 과제다.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소중하게 가슴에 품으리라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짐한다. 더 이상 못난 인생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스스로에게 수 없이 자문하면서 나, 머문 자리가 아름다웠다고, 나 떠난 날에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추억 하도록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공부한다는 명분으로 그 동안 소원했던 지인들과의 관계도 다시 복원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글쓰기도 더욱 정진해야겠고, 현실을 에둘러 외면하고 침묵해야했던, 그래서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책임하게 현실도피를 했던 일들도 이제는 그만해야 될 것 같다. 나의 하산(下山)은 어쩌면 많은 복합적인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 모른다. 늙어 쓸모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늙은이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래서 불러준다면, 아니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나? 이제 내 육신의 삶의 풍요보다는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부자처럼 살아 봐야겠다. 늦었지만 새로운 것을 앎으로 행복했던 기억들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자칭 만학(晩學)의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지난 10년 묵묵히 지켜봐준 내 가족들에게 좀 더 자상하고 다감한 가장이 되어야 하겠다. 지난 10년의 세월은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하늘이 부르는 그날 기쁘게 미련을 내려놓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늙어 간다는 것이 그렇게 슬프거나 섭섭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마음의 평안함인 것 같다. 참으로 세상은 살만한 곳이기도 하지만, 세상나들이를 마치고 나 온 그곳, 원향(原鄕)으로 돌아가는 날 ‘아 하 한세상 참 잘 살았구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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