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忘年會)라고 했었다. 지난 한해 모든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을 잊어버리자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그 시절엔 새해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었던 암울한 시기에 그저 잊고 싶다는 체념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망년회라는 단어가 일본식 한자표기이도 하지만 이 시대의 어울리지 않아, 지난한해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보낸다는 의미의 송년회(送年會)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만감이 교차한다고 하는 것을 젊은 시절엔 느껴보지 못했다. 그렇게 한해 두해 세월을 보내면서 이제 앞으로 남은 삶의 세월이 줄어간다고 느꼈을 때, 그 한해 한해가 소중하게 가슴 속에 간직되는 것이 어찌 나만의 감회일까?
푸른 청춘, 푸른 제복의 시절을 추억하는 노병들이 조촐한 송년모임을 갖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늘 그래왔지만 올해는 그 의미가 특별했다. 이 모임 ‘해청기’가 탄생한지 10주년이 되었고, 그리고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캡틴이 없는 모임을 상상이나 했던가? 후배 해병들이나 새로운 전우들이 늘어나는 건 고무적이고 희망적이기는 하지만, 옛 얼굴들이 하나 둘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가슴을 옥죄인다. 그 와중에서 캡틴이 그리워하고 소망하던 미 해병전우들을 초청하자는 이 장원 전우의 간곡한 제안으로 아쉬움 속에 따듯한 위로를 받는다.
여흥이 시작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손뼉을 치고는 있지만 왜인지 흥이 나지 않는다. 그냥 마음 한 구석이 휑하니 비어있는 듯 을시년스럽다. 언제나 이 모임엔 명예해병이기도 한 정 재성 전우의 넉넉한 미소를 반겨주시던 캡틴이 없다. 정 재성 전우는 어부인의 건강문제로 참석하지 못했고, 여 정건 전우는 자신의 건강문제로 불참했다. 해병전우들은 그들의 안부를 내게 묻는다. 나 또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 그들과도 격조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올해 스스로 반성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술 한 잔 함께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허전한 것인가? 허전함을 술로라도 채워야 했기에 그 중에서도 가장 허물없는 후배전우에게 빈 잔을 내밀어 술을 따르게 하면서 취해보려 해도 왠지 의식은 더욱 또렷해질 뿐 취해지지도 않는다. 쉰 해병도, 조해병도, 부산의 끝바리 후배도, 울산에 권전우도, 또 누구, 또, 또,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건강은 나쁘지 않은지 걱정도 되고, 도무지 마음이 편치가 않다. 캡틴이 없는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송년회다.
가장 마음 아파했을 베리아 후배조차 마음을 추스르고 오늘 행사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의연함을 보여주는데, 도무지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예년과 달리 행사가 끝나자 홀로 천천히 걸어 전철역으로 향한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이 취기(醉氣)를 깨운다. 그렇게 걷는데 이 장원 선배가 보인다. 이 장원 선배가 승차하는 전철을 타고 한 역을 함께온다. 그와 헤어져 홀로 돌아오는 귀가 길. 그래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하늘의 섭리인 것을, 허지만 2019년엔 우리 모두 이별 같은 것은 하지 맙시다. 2019년을 보내는 송년회는 우리 모두 신 바람나게 보낼 수 있도록 전우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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