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며 서서히 인생을 정리할 나이가된 연노한 사람들을 가리켜 세인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세대라 칭하고 또는 우스갯소리로 지상전, 수중전, 공중전을 다 체험한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네 월남전 참전 전우들이야말로 세인들이 말하는 그런 캐다고리에 딱 들어맞는 주인공들이다.
젊은 나이 땐 국내외로 뻔질나게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본의 아니게 소원했었지만 1990년대부턴 전우들과 연이 닿아 지교를 맺어 온지 벌써 20여년이 훌쩍 넘고 있다. 야멸차게 밀어붙이는 세월의 탓이겠지만 카렌다를 20여개를 바꿔달고 나니 꽤나 단단했던 전우들도 이제 하나둘씩 건강악화의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다.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창문 넘어 먼 하늘을 맥없이 응시하게 된다. 용맹을 떨치던 맹호, 백마, 청룡의 활동사진은 돌려 도 돌려도 흥미롭고 자긍심까지 느끼는데....
염라(閻羅)사단장의 복귀인사명령을 소지하고 지체 없이 들어서야할 거대한 수용소문이 저만치 보이는 게 우리네 현실이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세월이 우릴 떼미는게 아니라 우리가 자진해서 시간적 공간에서 빨리 멀어지고 싶었던 해가 바로 2017년이다. 인생 칠십 성상을 지나오면서 동족상잔 6.25 전쟁을 제외하고 2017년과 같은 질곡의 소용돌이는 처음 경험했다. 하기야 세계인들이 또 다른 화약고로 염려하는 곳이 한반도이고 게다가 짙은 전운(戰雲)까지 드리워져있으니 해가 바뀐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랴.
시끄러웠던 2017년과 현실로 다가서고 있는 지정학적 염려들을 잠시 잊고 참전 노병들과 둘러앉아 담소나 나누고 싶어 카카오 통발을 날렸다(12.26 오후4시).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일곱 명이나 모였다. 한우 곱창구이 안주에다 두꺼비를 여러 마리 잡았다. 역시 건강문제, 나라 돌아가는 꼴, 서거하신 채명신 사령관님 얘기로 꽃을 피웠다. 전우들과의 만남에는 가식이 없고 솔직담백한 대화가 오가기 때문에 몇 번을 들어도 감칠맛이 난다. 중늙은이들이 마냥 앉아있기가 뭐해서 주섬주섬 일어섰다. 한 살을 더 보태니 이마에 이랑이 하나 더 늘겠지만 우리 모두 섭생에 조심 또 조심하여 염라사단 수용소 입소를 최대한 미뤄보십시다. 한 해 동안 주 월 한국군(rokfv.com)에 보내주신 후의에 감사드리며 모든 전우님들의 강건하심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좌로부터 정재성,김경만,홍윤기, 홍진흠,권신기, 최남열, 고재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