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산과 물 작성일 : 2017-10-09 조회수 : 167
1971년. 첫 서울·평양 왕래 합의 -11-


서울·평양 왕래 합의 -11-

“거 속이 다 보이겠다. 하여간 남조선 여성은 미국 놈들이 다 버려놨어.”
북한 기자가 겸연쩍게 한마디하고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미니스커트는 북한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이나 멋에 대한 여자들의 욕심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북한이 폐쇄사회에 혁명성을 우선하는 사회라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북한측 안내 아가씨들의 패션이 확 달라졌다.

질질 끌리던 치마가 무릎 위까지 올라가고, 색깔도 검정색에서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흰 운동화는 굽이 높은 흰 비닐구두로 변했고, 머리 모양도 많이 달라진데다,
얼굴에는 엷은 화장기도 감돌았다. 자유의 물결이었다.

애초에 남한측 아가씨들에게 초미니스커트를 입게 한 것도 그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다.
남북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과감하게 보여주며 닫힌 문을 부수는 것이다.
그래야 막힌 벽을 뚫을 수 있다.

양측 기자들이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할 말 못 할 말이 마구 나왔다.
키 큰 사람이 싱겁다고 남측의 꺽다리 박 기자가 북측의 작달막한 뚱보 보도일꾼에게
술을 권하며 농을 걸었다.

“어이 동무, 뭘 먹고 그렇게 살이 쪘어?”
“또 그런다, 키는 꺽 드럼 해가지구. 신 동무라고 이름을 불러야지.”
신 기자라는 북한 보도일꾼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 멋쩍게 웃으며 술잔을 든다.

“그래, 신 동무! 여성동무 중매해준다는 거 어떻게 됐어?”
“조티, 박 동무 정말 총각 맞아?”

“그럼, 총각도 숫총각이지. 그러니까 중매를 하려면 숫처녀를 하라고.”
“고럼, 숫체네디. 우리 북반부 녀성 동무들은 다 숫체네디.”

“야! 할머니 동무두 숫체네가?”

주위에서 술 마시던 기자들이 흥밋거리가 생겼다며 모여들기 시작한다.
“결혼은 어디서 하지? 내가 평양에 가야 하나, 여성 동무가 서울에 와야 하나.”

“거야 동무가 평양엘 와야디.”
“가족 친척들도 평양에 가야 하는데 갈 수 있겠어?”

“거럼, 와 못 오간. 수령님께서 배려하실 거야.”
“그럼 신혼여행은 제주도 한라산이 어때?”

“아니디, 혁명의 산 백두산이 조티.”
“이건 무조건 그쪽 주장이구만, 그럼 살림은 남편 댁인 서울에서 차려야지.”

“평양에서 살아야디.”
“그건 왜?”

“그거야 지상낙원인 수령님 품속에서 살아야디 남반부에서 살 수야 있나.”
“당사자끼리 사랑을 속삭이면 되지 수령님의 품은 또 뭐야.”

“그렇다면 사상이 맞디 않는 동무하고는 살 수 없디.”
나는 최수만을 찾았다. 술 한잔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수만은 남측 테이블에 차려놓은 요리를 하나하나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최수만의 소매를 끌고 테이블 앞에 세웠다.

“술 한잔 하자우. 요리를 찍어서는 뭘 하려고 그래. 평양 가서 해 먹으려고?”
“부르주아 요리를 해먹을 수야 있나.”

“뭐? 그럼 사회주의 요리는 어떤 거야?”
“그만하기야.”

“왜, 할 말이 없어? 요리에 혁명이란 양념을 집어넣는 건가?”
“요새 서울은 어때? 데모가 많은데 독재정권이 오래 가갔어?”

“왜, 정권이 무너지면 서울 오고 싶나?”
“거럼, 서울에 가야디.”

“서울에 친척이라도 있나?”
“있디.”
나는 깜작 놀랐다.
그러지 않아도 최수만에게서 부르주아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았다.
최수만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최 동무도 이산 가족이구만.” (계속)

정재성  2017/10/09 20:46:23 [답글] 수정 삭제
아주 real합니다. 후속편이 기다려 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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