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산과 물 작성일 : 2017-09-18 조회수 : 245
민족의 혈연 이은 남북 직통전화 최초 개설-9-



민족의 혈연 이은 남북 직통전화 최초 개설



“그래도 알고 지내는 게 좋지 않소.”
“로동신문 기자우다.”
오래 전부터 사귄 친구처럼 정이 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최수만이란 기자를 잘 골랐다고 생각했다.

첩보 수집에 필요하기도 했지만, 지루한 회담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기보다는
북한 기자와 아웅 다웅 하면서 보내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나와 최수만은 인사가 끝나자 동시에 담배를 꺼내 내밀었다.
청자와 금강산이었다.

우리는 굳이 자기 담배를 피우라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면 담배를 갑째로 바꾸자고 내가 제의했더니, 최수만은 싫다며
“각기 피우기요” 하면서 넌지시 거절하는 것이다.

나는 계속 졸라서 담배를 갑째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최수만은 맛있는 듯 청자 한 대를 피워 물며 “순하구만” 하면서 씩 웃는다
.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기자들은 담배 교환을 많이 했다.
그런데 북한 기자들은 교환한 담배를 자기가 피우지 못하고
상급 지도원 동지에게 갖다줘야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북한 기자와 교환한 금강산 담배를 사무실 동료와 부담 없이
나누어 피운 것과는 사뭇 달랐다.

부르주아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뜻인지, 그들은 남측 기자들이 주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한국의 담배를 피우다가는 자아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판문각 쪽 그늘진 토담에 걸터앉아 무료함을 달랬다.

회담장에서는 이산과 상봉에 관해 설전이 오가고 있었다.
“최 동무는 6·25 때 뭘 했소?”
“내래 조국광복전쟁에 참여를 했디.”

“괴뢰군으로?”
“거 말조심 하라우.”

“그래서, 어떻게 했어?”
“미국 놈들과 싸웠디, 동무는 어려서 잘 모르겠구만.”

“최 동무는 어떻게 살아남았소?”
언뜻 당시의 쓰라린 악몽이 스쳐가는 듯한 표정이 최수만의 얼굴에 그려졌다.
“내래 보도일꾼으로 낙동강까지 내려갔디. 낙동강은 정말 피바다였어.”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데! 김일성이 아니야! 민족의 역적노릇을 한 거지!”
“동무! 김일성이 뭐야! 말조심 못하갔어!”

나는 좀 격해 있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렸다.
“그래 최 동무는 무슨 보도를 했나?”
“승전 보도를 했디. 미국 놈들이 혼쭐나는 사진을 찍었디.”

최수만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찾으려는 눈빛이었다.

민족의 혈연 이은 남북 직통전화 개설

적십자 회담이 열리는 동안 이산가족들은 판문점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이번 추석 성묘에 부모형제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다섯 차례 파견원 회담이 이어지는 동안 무덥던 여름은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왔지만 기대했던 소식은 없었다.

1971년 9월16일에 이르러서야 회담은 비로소 한 고비를 어렵게 넘기고 예비회담으로 넘어갔다.
1차 예비회담을 1971년 9월20일 판문점에서 연다는 합의였다.

이 회담에서 한적은 판문점 남쪽의 자유의 집과 약 70m 떨어진 맞은편의 판문각에
각기 상설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두 곳을 잇는 직통전화를 가설하자고 제의했다.

북적은 이를 기적적으로 받아들였다.
광복 후 26년 만에 끊어졌던 민족의 혈맥이 가느다랗게나마 이어진 것이다.

북적의 속셈이야 어찌됐든 사상 최초의 판문점 내 남북 직통전화는 합의를 본 지
이틀 만인 9월22일 오전 남북 작업반의 공동작업으로 가설됐다.

이날 낮 12시 정각,
한적이 임명한 초대 연락사무소장 최동일씨는 역사적인 첫 통화를 위해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보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대화를 했다.

“여보세요, 신호가 잘 갑니까? 그쪽에서 한번 신호 보내주세요.”
그러자 상대방은 통신선의 점검이나 의례적인 인사도 건너뛴 채 대뜸 미리
준비된 원고부터 읽어 내려갔다
.
“나는 오늘 북남조선 사이에 첫 직통전화가 개설된 것과 관련,
귀하에게 열열한 축하를 보냅니다….” 북적 연락사무소장 최봉춘은 이쪽에서 듣고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북적 위원장 손성필의 메시지를 낭독하는 것이었다.

북쪽이 먼저 역사적인 메시지를 보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거 좀 천천히 불러줘야지 이쪽에서 필기를 할 것 아닙니까.”
수화자가 주의를 환기시키자 북쪽 송화자는 비로소 냉정을 되찾은 듯 멈칫하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개통된 판문점의 남북 직통전화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가동되기 시작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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