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산과 물 작성일 : 2017-09-15 조회수 : 149
정보, 공작이라는 말에 음습함을 느끼지만-8-



남북 이산가족찾기 회담 제의


그 해 8월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한적십자사에
‘남북 이산 가족 찾기’를 공식 제의했다.

회담 제의의 목적은 1000만 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 확인, 상호방문, 서신교환을 주선하고
당사자들의 희망에 따라 재결합시켜주자는 의도였다.

북한적십자사도 이틀 뒤인 8월14일 회담을 수락했다.

이로써 1970년대에 남북대화의 문은 당국자간 회담이 아니라
민간단체인 적십자사 사이의 접촉으로 처음 열렸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레의 바람이 던가.
이제 한(恨)과 슬픔이 가시고 부모 형제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모두들 들떠 있었다.

사반세기 힘의 대결만이 팽팽하던 군사분계선 위의 판문점에서 군복 차림의
군사정전회담이 아닌 남북적십자사 민간인 네 명의 파견원이 1차 접촉을 갖고 대화의 물꼬를 텄다.
1971년 8월20일의 일이다.

대장정의 첫 역사가 이루어지는 이날 아침,
남산 적십자사 앞에는 이산가족을 비롯해 많은 관계기관 관련자가 모여들었다.

한적 파견원 대표들은 신임장을 갖고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의 갈채를 받으며 판문점으로 출발했다.

군사정전회담 때보다 두 배로 늘어난 기자들이
적십자사가 마련한 관광버스에 탑승해 파견원 대표차량을 뒤따랐다.

내가 탄 버스도 판문점을 향해 통일로를 달렸다.
군사정전회담 때마다 수없이 달리던 통일로이지만 그 느낌이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고향으로 향하는 느낌이었다.

남북 적십자사 파견원은 각기 ‘자유의 다리’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 들어섰다.

민간인으로는 광복 후 처음으로 이뤄진 공식적인 만남이다.
남북 적십자사 파견원 들이 지니고 간 신임장 문건 수교가 13분 만에 이뤄졌다.


북한측은 남북대화를 한반도 적화(赤化)를 위한 정치적 선전장으로 이용했다.
민족의 괴로움을 덜어보자는 한국측의 인도주의적 입장에 딴전만 피우는 것이었다.

양측이 모두 민족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북한은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 민족을 주장했다.
민족 그 자체의 목적으로 만남을 주장하는 한국측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북 적십자회담엔 군사정전회담 때보다 많은 기자가 취재를 나왔다.
곧 양쪽 기자들은 설전을 벌였다.

남 : 우리 적십자사에선 언챙이 수술운동을 벌이고 있지요.
북 : 우리는 앉은뱅이 일어서기 수술을 해주고 있지요.
앉은뱅이 일어서기 수술을 해준다는 말에 주위 기자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졌다.

남 : 북쪽엔 봉사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북 : 그쪽엔 몇 명이나 됩니까?

남 : 또 질문엔 답을 안 하시네요. 내가 아량을 베풀지요. 우리는 8000명가량 됩니다.
북 : 전문직원이 그렇게 많습니까?

남 : 선생님은 적십자사에 있다면서 봉사원이 뭔지도 모르시나요?
북 : 우리 쪽에서는 용어와 개념이 다릅니다.

남 : 적십자사 용어는 세계 공통인데요.

북한의 보도일꾼도 두 배나 늘었다.
시골장터가 되어버린 판문점 뜰에는 처음 보는 북한 기자가 많았다.

나는 이들 중 한 명 정도는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물색했다.
얄궂게 생긴 북한 기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보도일꾼 최수만-

나이는 나보다 좀 들어 보였는데, 작달막한 키에
양쪽 어깨에 사진기를 두 개나 둘러메고 카메라 가방을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그래도 잽싸게 사진을 찍는 모습은 필름도 없이 빈 카메라로 엉거주춤 사진을 찍는 척하는
다른 북한 기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접근했다.

양쪽으로 푹 파진 이마가 귀하게 자란 얼굴이었고 작은 입으로 웃는 모습은 소녀같이 나약해 보였다.
우악스러운 북한 기자들과 달리 좀 가냘픈 인상이었다.

“필름도 없는 카메라로 사진은 뭐하러 그렇게 찍어?”
“필름이 없다니?”
그는 당황한 듯 나를 넌지시 쳐다보았다.

나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판문점에 처음 나온 모양인데 우리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그럽시다 그려.”

생긴 것보다는 시원시원한 말투다. 악수가 오간다.
“나는 S신문사 김중지 기자요.”
“난, 최수만이라 함네다.”

“무슨 신문사요?”
“그건 알아서 뭐하게?”

“그래도 알고 지내는 게 좋지 않소.”
“로동신문 기자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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