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한광덕 작성일 : 2010-12-26 조회수 : 38779
대한민국 위기의 시작은 1997년 5월 26일


1997년은 IMF 위기에 직면한 해였고 김대중씨가 입후보한 15대 대통령 선거의 해였습니다.  이해 5월 26일, 북한은 6.25 남침 도발 직전까지의 대남공작 실체를 인정하고 찬양하는 특집보도를 노동신문에 게재 했었습니다.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렬사”라는 제목아래 (1)‘신념과 절개를 목숨 바쳐 지킨 성시백동지의 결사적인 투쟁을 보고’, (2)‘인생의 뜻 깊은 새 출발’, (3)‘나는 김일성장군님의 특사다’ (4)‘혁명가의 신념과 영생의 삶’이라는 주제로 김일성의 비밀공작원으로 활약하다가 6.25 남침전쟁 발발 이틀 후 간첩죄로 처형되었던 성시백( “인민 공화국 영웅 1호”의 칭호를 받음)의 공작활동을 대서특필 했던 것입니다.
 
4.3 사건 발발 1년 전인 1947년 초, 평양에 올라가 김일성으로부터 회중 금시계를 선물 받는 장면으로부터 서울 복귀 후 각 정당과 산하단체를 묶는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선전공작’을 위해 ‘조선중앙일보’, ‘광명일보’를 비롯한 10여종의 신문사를 경영하고 육군의 ‘사단’은 물론 예하의 ‘대대’와 ‘헌병대’, ‘사관학교’, ‘육군정보국’까지 ‘조직선’을 늘리며 국군의 와해공작과 정보공작을 펼치며 당시 서울에서 활동했던 UN감시위원단 조직의 와해 및 방해공작 그리고 김구 선생에게 김일성의 특사임을 밝히고 1948년 4월의 ‘남북연석회의’ 초청장을 직접 전달하며 참가케 하는 등등의 공작 활동 규모와 내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의 4.3사건과 관련한 정부차원의 공식사과(2003.10.31)에 대한 항의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4.3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했던 필자는 사퇴 4년 후인 2007년 10월, 이 보도를 처음 접하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당시의 우리 국가 정보기관장들은 이 사실을 공론화하지 않았고 노동신문에 접근 가능했던 언론들조차도 계속하여 침묵해 왔을까? (특집보도 전문:vietnamwar.co.kr/rokfv.com 인강칼럼의 헤드라인 “10년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 참조)
 
4.3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4.3사건 당시 제주도의 경비연대장 박진경 대령을 암살했던 좌익계의 부하들을 애국심이 강했다고 찬양했던 ‘조선중앙일보’를 오늘날 중앙일보 전신으로 잘 못 알았던 것인데 북의 대남공작원인 성시백이가 그 ‘조선중앙일보’를 경영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무릎을 쳐야했습니다.
 
성시백이 운영했던 ‘조선중앙일보’의 4.3사건 관련 보도내용을 당시의 기타신문들과 비교만 했어도 대통령 노무현의 4.3사건 사과는 있을 수 없었기에 그 때부터 “10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를 공론화하기위한 제 나름의 노력을 다했으나 아직까지도 혼자만의 목소리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개명 천지에 북괴군에 의하여 천안함이 격침되고 연이어 연평도의 국군과 양민이 포격으로 사살되는 상황에서도 전쟁 도발자를 두둔하는 정치인과 일부 언론의 언행을 바라보며 밤잠을 못자며 통탄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도저히 있을 수없는 불가사의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까?
6.25전쟁 당시에도 “6.25전쟁의 10대 불가사의”가 있었습니다. 이 10대 불가사의는 6.25 정전직후 육군참모 총장을 역임한 이형근 장군의 “군번 1번의 외길 인생”이란 자서전에 나오는 말로서 약술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일선부대의 남침징후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
2. 6.25발발 2주전에 단행된 각급 주요 지휘관의 대규모 인사이동
3. 6월 13-20일간에 단행된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
4. 6월 11일부터 발령되어있던 비상 경계령이 6월 24일 00시에 해제
5. 비상경계령 해제와 함께 전 장병의 1/2에게 휴가 외출외박을 허용
6. 6월 24일 저녁에 개최된 육군 장교 클럽에서의 고급장교 댄스 파티
7. 서울 북방으로의 축차적 병력투입으로 불필요한 희생 발생초래
8. 6월 25-27일간의 국군후퇴를 반격, 북진 중으로 허위 보도한 중앙방송
9. 한강교의 조기 폭파단행
10. 한강교를 폭파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 사형집행
 
이 형근 대장은 그의 자서전에 언젠가 누군가가 이 의혹들을 풀 것이며 이것이 풀려야만 국가의 백년대계가 보장될 것이란 기록을 남겼는데, 4.3 사건의 배후와 배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연구한 저의 짧은 안목에서 보면 이 10대 불가사의를 규명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구국을 위해 애국시민들이 더 늦기 전에 눈을 떠야만 할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에 1명, 김대중 정부 시절에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아무런 조건 없이 북송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북송된 이들이 모두 성시백의 뒤를 잇는 인민공화국 영웅 대접을 받음으로서 암약하는 남파 간첩들의 사기는 하늘로 솟았고 이들을 체포 수색 구금했던 대한민국 대공수사 요원들의 사기는 저하 될 대로 저하된 가운데 지난 13 여 년간 4.3사건을 비롯한 각종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이 국민들의 관심밖에 놓이면서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 양민학살의 주범으로 몰리는 기막힌 현실이 발생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6.25가 북침이었고 1.21 청와대 기습도 KAL기 폭파도 모두 대한민국의 자작극으로 오리발을 내밀던 북한이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들 대남공작의 규모와 실체를 대대적으로 공식인정하고 찬양했던 근본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대남공작의 찬양보도 이후에 북한을 방문했던 두 분의 국군통수권자가 북의 공작에 대한 문제제기와 공식적인 중지의 요구조차도 없이 화해와 협력을 약속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대통령 김대중은 이 특집보도 내용을 모르고 6.15정상회담에 임했던 것이며 대통령 노무현은 이 내용을 알고도 “국가 보안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고 했던 것입니까? 당시의 대통령을 보좌했던 국가정보 기관장들은 무시무시한 직무유기를 했던 것 아닙니까?
(참조: 김, 노 두 전직 대통령에게 따져 물어야 할 것 vietnamwar.co.kr #284번글)
 
성시백이란 인물의 신상까지 알아야만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됩니다. 성시백은, 상해 임시정부시절, 장개석 정부의 ‘수도경비사령관’에 해당되는 胡宗南 장군의 이름난 참모로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만 실제는 18세 때에 중국공산당원이 된 모택동의 첩자였다고 하며, 서울복귀 후에는 장개석 휘하부대의 참모였다는 소문을 이용하여 조선 경비대의 요인들을 조석으로 만났다고 합니다. (참조: 상해 임시정부시절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태윤기 변호사 선생의 “피어린 독립군의 항쟁수기, 回想의 黃河” 갑인출판사 1975년 발행)
 
기무사령부의 자료에 의하면 김일성은 해방 후 대남공작의 적임자를 물색 중, 중국 공산당에서 활동하던 성시백이 조선 사람임을 알고 주은래에게 인편을 보내 “성시백을 우리에게 보내주어 조선혁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자 주은래가 그를 조선 공작조직에 인계했다고 하며 북한공작원으로 활동할 것을 약속한 성시백은 일본을 거쳐 서울에 들어와 대북무역회사 대표로 위장하여 공작활동을 하다가 1950년 5월에 피검되어 6.25발발 이 틀 후인 6월 27일에 간첩죄로 처형되었던 것입니다. 이 대남공작의 공로로 성시백은 “인민 공화국 영웅 1호”가 되었던 것이며 그의 3남은 김일성대학의 총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개인은 사기를 당하면 패가망신을 합니다. 대한민국도 대남공작의 사기를 당할 때에는 망국의 길만이 있을 것입니다. 간첩은 원래가 점으로 활동합니다만 지난 10여년의 좌파정부시절을 거치며 상하좌우의 선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어 그 위험은 더 커졌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우리 애국시민들은 제2, 제 3의 성시백이가 다양한 직함을 갖고 이 땅의 도처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큰 눈을 떠야 합니다. 천안함 격침 시, 그리고 연평도 포격 후에 나타나고 있는 각종의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눈에 잡히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의 국군과 경찰은 살아있는 성시백의 후예가 혹은 그에게 포섭된 졸개가 어떤 직위에서 어떤 공작자금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에 까지 관심을 가지고 경계와 감시의 눈을 떠야만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안함을 격침시켰던 어뢰보다도 연평도를 불바다로 만든 방사포보다도 그리고 어떤 위력의 핵무기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북의 대남공작입니다. 무기는 발사즉시 그 위치가 노출되어   각성과 응징의 기회라도 주어지겠지만  공작은 누가 적인지도 모른 채 우리 끼리 눈감고 서로 싸우다 다 같이 이유도 모르는 공멸을 자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구국의 첫걸음은 이미 많이 늦었지만  1997년 5월 26일자의 북한 노동신문 특집보도의 내용과 의미를 온 나라에 시급히 공론화되는 것이며 오늘까지 침묵이 유지된 배경에 대한 국회의 청문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군과 국민이 최고도에 달하고 있을 북한의 대남공작에 대해 경계의 큰 눈을 뜨고 주변을 살필 수 있을 때, 제2의 천안함 격침도 제 2의 연평도 포격도 다시는 없을 것이며 대한민국은 튼튼한 안보의 반석위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2010.12.26


 


(예) 육군소장  한광덕 배
 

김계원  2010/12/27 01:02:58 [답글] 수정 삭제
장군님의 해박한 견식과 근래역사인식에 우선 경탄하지않을수없습니다.
과문한 저에게는 너무 벅찬사실들이 많기에 일부를 소화하는 정도입니다만 그래도 개략적인내용은 가슴에 와 닿는바입니다. 지금 60대의 저희들도 이정도인식인데 하물며 한참밑의 젋은층은 물어 무엇하겠습니까! 역사인식 그것도 안보적인교육이 그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다른사람은 차치하고라도 저의 무식함을 보더라도 절실하다는것을 알겠습니다.바른역사인식위에서는 북의 어떤 대남공작도 먹혀들지않을것이기때문입니다.좋은 가르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계원 배상.
최해영  2010/12/30 11:36:52 [답글] 수정 삭제
지금의 안보불감증의 큰이유는 지난군사정권때와 그 연장선상에 있든 정권들이
자신의 정권유지에 안보를 이용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합니다.
월남패망의 가장큰 원인이 위정자들의 부정부패에 있다는생각인데
그때 우리가 데모를 하면 "월남처름된다"든가 "이북에서 쳐내려온다"
여기에 더함이 모든일에 가장 접근이 용이한 언론마저 그런 정권에 영합을 했다는
생각이구요.
노도 포병 이경호  2011/01/08 05:54:58 [답글] 수정 삭제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큰병으로 입원하여 쾌차도 안된상태에서 간첩성시백의 공작활동, 4.3제주폭동진상규명건, 6.25전쟁시 10대 불가사의 건, 최근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등, 또한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권시절 대북공작은 사라지고 북한정찰국에 의한대남공작이 활발하게 진행되여 그때당시 헤아릴수 없는 정보가 북한에 제공 및 노출되였고 좌파정치인들은 겉으론 동포애를 강조하면서 퍼다줄 생각을 하면서 퍼다준 금액 및 물자와 식량은 북한의 굶주리는 동포들에게전달되지도 않고 군비확장 및 핵무기 개발 노동당간부들에게 쓰여지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인권운운하면서------------------참으로 한심한 좌파정당 의 정치인들입니다. 한장군님 좋은글입니다.감명깊게읽었습니다.건강하십시요
한광덕  2011/01/08 05:54:58 수정 삭제
노도 포병의 이경호 전우!
여기까지 찾아주고 답글까지 주시다니!
이 침묵의 계절에!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97년 5월 26일의 특집보도를 꼭 한번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이 내용이 지난 13년간 공론화되지 않은 불가사의가 벗겨져야만
대한민국의 안보가 지켜지리란 것도 주위에 강조를 바랍니다. 총총
김정현  2011/01/08 05:59:46 [답글] 수정 삭제

가까이 살면서도 자주만나지못해 미안합니다 몸이 불편하면서도 나라걱정 정말 대단합니다

인생선배로서 미안한 일 많습니다 새해에는 한 장군님을 따라 반공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대한민국인  2011/01/08 05:59:46 수정 삭제
거짓말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땅굴 찾지도 않으면서 무슨 반공에 힘쓰신다고 하시나요?
땅굴징후가 나라 곳곳에 있는데....
나라를 말로 지킬 수 있나요?
柳 在 旭  2011/01/09 09:38:15 [답글] 수정 삭제
한장군님...! 건강은 어떻신지요? 건강이 최고 입니다
애국충정의 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채명신 사령관님께서 왜 그렇게 장군님을 신뢰 하시는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제 주위의 전우들도 항상 장군님을 흠모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컨디션 조절을 잘 하셔서 오래토록 뵙기를 바랍니다
권태준  2011/01/09 21:54:56 [답글] 수정 삭제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도 불구하시고 나라 사랑과 나라 걱정하시는 한 장군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한 장군님 같이 나라 사랑과 애국하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 나라가 이나마도 버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 많은 장군분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 장군님 혼자만 온라인상에서도 글로서 후배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모범을 보이시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가내 늘 편안하시고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재목  2011/01/10 12:04:17 [답글] 수정 삭제
지금 부터라도 우리 전우님들이 일치단결하여 국가안보를 무력화 시키는 세력들에 대한 응징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라가 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 방법을 동원하여서...
한 장군님 조속히 쾌차 하십시오.
한광덕  2011/02/04 15:10:45 [답글] 수정 삭제
여러 전우들이 제 건강을 걱정해 주시는 데---, 놀라웁게 좋아졌습니다. 이젠 테니스 운동을 다시 시작했으니 제 걱정은 덜어 주시기를!
"대한민국의 위기 시작은 1997년 5월 26일"이란 글로 하고 싶었던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의 긴 글 쓰기는 중단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줄고 건강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을 실감합니다. 또 하나는 이열치열의 덕을 보았다고 주치의가 이야기합니다. 패혈증으로 쓸어졌을 때의 체온이 41.8도로 이 상태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던 모양인데, 체온이 42도이면 사망에 이르나
40도에서는 몸 속의 암세포도 죽는다고 하니 ---, 패혈증이 몸 속의 균들을 죽이고 사람은 살려 놓은 모양입니다!!
김정현  2011/02/06 16:58:47 [답글] 수정 삭제

한장군님 글 잘보고 걱정이 더앞섭니다 요새 젊은 층에서는 공산주의가 무었인지 모르는것
같고 전교조 선생들이 걱정입니다 제대로 교육시킬 방법이 있을가요 답답합니다


전종현  2011/02/17 11:29:25 [답글] 수정 삭제
김, 노 두 전직 대통령에게 따져 물어야 할 것 vietnamwar.co.kr #284번글을 어디서 찾느지? 알려주기 바랍니다.
정우복  2011/02/20 02:58:33 [답글] 수정 삭제
한장군님을 저희들은 화랑대학 총장님 이라고 부른 답니다! 11사단장 시절, 전 장병들에게 전역 10년후의 목표를 세우도록 독려하고 "할수 있다는 신념과 하겠다는 집념으로 내일을 설계하고 오늘을 뛰자" 라는 생활 훈 아래 양치질 시간까지도 1석3조로 활용하자는 취지로 일석삼조의 자즐보 지혜를 강조했던 분입니다.

그 신념이 연세를 드시고 안보불감증에 극치를 달렸던 희한한 정권 밑에서 4.3 위원을 맡으셔서 뜻을 굽히시지 않으시고 국민 안보 확립을 위한 투쟁을 과감히 하셨던 분이시죠!

저는 화랑대학 출신의 예비역 영관장교로서 현재는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인성교육과 국가안보 강의를 하고 있는 정우복 교수입니다.
척추관 협착으로 건강이 악화되도록 쓰셨던 300여개의 글이 vietnamwar의 인강칼럼에 실려
있어 그 때 그 때 활용하면서 전파도 할 수 할 수 있어 매우 편리앴었는 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모두 사라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대한민국 위기의 시작은 1997년 5월 26일”이라는 이 글의 내용이나마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rokfv.com의 전우들과 함께 뜻을 함께 할 것입니다.

수고하시는 베트남 참전 전우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okfv.com 화이팅!!


한광덕  2011/02/20 16:20:47 [답글] 수정 삭제
김정현 6.25참전 원로 선배님의 걱정과 전종현 님의 질문을 받은 채 여러 날이 지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옛 화랑전우 정우복 교수가 답 글을 올렸다는 핸드폰 메시지를 받고서야 답 글이 올라와 있었음을 발견하고 이 글 쓰고 있습니다.

1. 김정현 원로 선배님!
공산주의자들의 무기는 혁명을 위한 선전 선동이며 우리 사회에는 선동의 목표가 될 만한 현상들이 미 해결로 많이 남아 있기에 전교조가 아직도 고개를 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은 사기를 당하면 패가망신을 합니다. 대한민국이 대남공작의 사기를 당하면 모든 국민들이 북한의 인민으로 바뀌는 망국의 길만이 있을 것임을 "대한민국 위기의 시작은 1997년 5월 26일"이라는 글을 통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2. 전종현 님!
vietnamwar.co.kr의 인강칼럼이 예고 없이 사라진 것을 최근에 발견하고 상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차후에 규명되도록 미루어 두고 우선 #284번째 글로 올라있던 글을 rokfv.com에 새롭게 마련된 인강칼럼의 #10번 째글로 올려 놓으니 그 글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3.정우복 교수!
화랑대학의 옛 이야기를 또 해 주셨네요. "1석3조의 자즐보" 지혜를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까지 전파하면서 대한민국의 안보 일선에서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정우복 교수에게 만강의 경의를 표하며 날씨가 풀리는 대로 테니스 라켓을 들고 한번 만나게 되기를 기다리렵니다. 총총



6.25노병  2011/03/04 14:21:49 [답글] 수정 삭제
1997년이면 김대중씨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인데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북한이 대남공작을 공공연히 인정하고 찬양했다는 것은 보통이 아닙니다. 이 보도내용이 항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한광덕 장군이 지적한 것은 늦었지만은 이제라도 국회에서 청문회를 비롯해서 들고 일어나야만 합니다. 베트남 참전 용사들이 나서주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인  2011/03/04 14:21:49 수정 삭제
베트남 참전 용사들께서 땅굴좀 찾아주세요.
나라 전체가 땅굴징후이랍니다.
유투브에서 땅굴로 검색하면, 심각한 것을 아실것입니다.
한광덕  2011/03/07 22:54:54 [답글] 수정 삭제
6.25 노병님의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jajulbo@gmail.com으로 전화번호를 부탁합니다.
직접 말씀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광덕  2011/03/11 20:28:34 [답글] 수정 삭제
6.25 노병님께

대통령 노무현의 4.3사건과 관련한 정부차원의 공식사과(2003.10.31)에 대한 항의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의 국방부 위촉 4.3위원을 사퇴 한 저는 상실된 국군의 명예회복을 위해 필요한 사실의 전파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 왔습니다.

주요 신문들은 관심을 주지 않는 여건 하에서 의존 할 것은 인터넷상의 글쓰기뿐이었으며 특히 고마웠던 것은 많은 인터넷 site 중에서 vietnamwar.co.kr의 서현식 전우가 별도의 “인강칼럼”을 설정 해 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00여개의 글이 실려있던 인강칼럼이 어느 날 통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불가사의한 충격으로 닥아왔으나 그 이유를 직접 묻지는 않고 있습니다. vietnamwar의 헤드라인에 올렸던 글이 나마 일단 rokfv.com의 인강칼럼으로 옮겨진 것을 우선 다행으로 생각하며 사라진 인강칼럼의 글이 vietnamwar에 재생되면서 불가사의도 풀려지는 날이 오게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육이오  2011/03/18 11:15:12 [답글] 수정 삭제
어마 어마한 사살입니다.
왜 아러한 사실이 새상에 알려지지않고 있는지요?
안겅 장균님의 애국심에 경위를 표합니다.
6.25 참전 노병들애게라도 얼리도록 노력을 약소합니다.
김성수  2011/04/25 14:06:25 [답글] 수정 삭제
뒤늦게 나마 장군님을 알게되고 새롭고 전무했든 역사적인 사실에대하여 깨우쳐준 반공의식에 더없는 감사와 뒤에서 쉬지않고 반공 의식을 일깨워 주시는 애국 충정에 또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모쪼록 시작이 반이란 말쳐럼 게속해서 교육하고 사실을 알리는 멧세지를 알리는한 좋은결과가 있응거라고 생각합니다. 장군님의 건강과 건필에한없는 찬사와 응원을 덤북 드립니다.

다행이도 이웃에 살고 있으니 시간 나는대로 자주 만나서 차도 한잔 하며 이어려운 대한민국의 지킴이로서 해야할 일이 무었인지를 토의도 하고 가르침도 받고 싶습니다.
한광덕  2011/04/26 16:13:23 [답글] 수정 삭제
6.25노병님! 퇴원하신 후에도 문안한번 제대로 못 드린 채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vietnamwar.co.kr의 인강칼럼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하고 그 이유를 직접 webmaster에게 물으셨으나 그 후론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고 해 주신 말씀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6.25노병들은 한계에 왔으니 베트남 참전 전우들이 나서서 침묵하는 세상을 깨워달라고 하신 주문의 말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속히 건강을 회복하시고 한번 만나자는 연락을 주시기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성수 선배님께서 다녀가시고 격려의 말씀 주심을 감사합니다.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을 곧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철린  2011/05/11 00:58:21 [답글] 수정 삭제
장군님이 올려주신 글에서 조국이 처한 참담한 현실을 읽을수 있었으며
6.25노병들은 한계에 왔으니 베트남 참전 전우들이 나서서 침묵하는 세상을 깨워달라고 하신
장군의 말씀도 잊지않고.기억하며 실천해 나갈것입니다.....충성!
한광덕  2011/07/11 17:46:02 [답글] 수정 삭제
고철린 전우의 글에 답이 너무나 늦었습니다. 자주 글을 못 쓰고 있습니다만, 가끔 들어와서 고철린 전우의 맹활약을 보면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장명환  2011/08/17 16:31:37 [답글] 수정 삭제
국민 모두 깨달아서,정신 차려야 하겠지요.
주위의 친지, 동료, 선후배 에게도 전달하여 읽도록 하고,
또 전달 , 전달 토록 했읍니다.
한장군 힘냅시다.
장정열  2011/09/06 14:33:46 [답글] 수정 삭제
끈질긴 노력에 감턴뿐입니다.
우리의 안보를 위하여 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그 기회가 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한 장군 더욱 힘내세요....
한광덕  2011/09/08 10:57:30 [답글] 수정 삭제
평안북도의 두 분 선배님이 주신 격려의 답글을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 말을 못하고 아는 사람들은 몸조심을 위해 입을
다물기도 하는 세상에서 “내가 자네의 글을 보고 있었네”라는 뜻의 말씀은
참으로 큰 힘이 됩니다!!

선배님들의 관심으로 앞으로 서울시장과 총선,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 내용이 빨리 널리 멀리 온 국민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97년 5월 26일의 북한 노동신문 특집보도!
북한이 6.25발발 전에 있었던 북의 공작사례를 낫낫이 밝히며 대대적으로
인정하고 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 진행된 김, 노, 두 전직 대통령은
북에 갔을 때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즉각 중단하라는 한마디의
요구조차도 없이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대남공작의 정문과 고속도로가 대대적으로 개방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6.25때 있었던 “10대 불가사의”보다 더 많은 불가사의가 오늘
현재 발생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제주도의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하나에 대해서 만이라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젊은이들이 생겨나야만 할 것입니다.

벌써, 14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국민들은 1997년 5월 26일자의
노동신문 특집보도의 내용을 확인하고 이 사실에 대한 각급 출마자들의
입장을 확인하고 나서 투표권을 행사하야만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분, 원로 선배님의 격려의 글 받고 이 글 남깁니다.
2011.9.8 아침, 전방사단 방문 출발 전에
실명제  2011/12/18 18:56:26 [답글] 수정 삭제
6.25 때 있었던 10대 불가사의보다 더 많은 불가사의가 오늘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인강님의 주장에 통감합니다. 그리고 북한이 6.25 때 감행했던 대남공작을 공식적으로 인정 찬양했던 보도가 있은지 14년이 지나도록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에도 통감합니다.

북한의 대남공작에 눈 감으면 대한민국의 내일이 없다는 말씀에도 통감합니다. 그런데도 3,230 여명이 이 글을 읽었는데도 불과 6,7명만이 걱정의 답 글을 달고 모두가 침묵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저 자신도 1/3230 이기에 부끄럽습니다만 1997년의 북한 노동신문 특집보도의 존재가 온 나라에 알려지도록 끝까지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건강을 기원합니다.
제 자신의 실명을 밝히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밝힐 것입니다.
육이오  2012/01/31 15:07:12 [답글] 수정 삭제
6.25 당시의 불가사의보다 훨씬 많은 불가사의보다 눈에 띄는 데도
그 불가사의의 새로운 시작이 1997년에 있었다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모두 나서질 않으니
이노병이 어찌하리오
인촌  2012/04/26 21:45:04 [답글] 수정 삭제
장군님의 열열한 애국심에 또한번 감탄을 금할수가 없습니다.이제 총선도 우리 애국자들이 바라는대로 끝이났으니 대선을 앞두고 애국자인양 신분을 가장하고 대선에 발벗고 나서는 새누리당의 중진이라는 자들의 위장부터 국민들에게 알려서 종북세력들의 선무공작에 넘어가지 않도록 국군장병들에게 정훈교육을 철져히식혀 정신적인 안보의식을 높여야 할것이며 안보단체나 기타 애국단체들에게 적극적인 홍보활동이 필요할때라고 생각됩니다. 모쪼록 장군님의 건강과 가정의 무탈하시길 진심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한광덕  2012/04/28 18:35:08 [답글] 수정 삭제
실명제, 육이오,그리고 인촌 세분의 관심에 감사합니다. 저는 최근 우리나라 굴지의 연구소에서 발표하는 \"19대 총선과 그 이후의 정치발전 등등의 제목이 붙은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만, 그곳에서 발표하는 어느 발표자도 토론자도 18대 총선과정과 결과를 북한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했을 것이며 어떤 교훈을 찾았을 것인가에 문제를 제기하는 제기하는 학자들이 없는 것을 보고 대단히 실망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이크를 잠고 대한민국의 위기시작이 1997년 5월 26일에 있었다는 나름의 주장을 했습니다만 ----- 글쎄요----앞으로 대선을 앞두고는 1997년 5월26일자의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15년이 지나고 있는 오늘 날까지 공론화되지 않고 있는 불가사의에 국민들의 관심이 갈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실명제님, 육이오님, 그리고 인촌님! 이제 제 목소리는 안통하니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총총
육공  2012/06/22 23:11:58 [답글] 수정 삭제
펌해 갑니다.
공감의 폭을 넓혀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한광덕 장군 님의 건안을 기원드립니다.
한광덕  2012/12/22 18:36:05 [답글] 수정 삭제
육공 전우의 글에 6개월이 지나서야 답 글을 올립니다.
---펌을 한다면 무조건 반가웠고 그 인사를 했어야했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한국 논단과 미래한국, 그리고 이북5도신문에서는 제 주장을 기사화 해 주었으나
이번 대선에서도 이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고 넘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겐 전달이 되었을 것으로 믿으며 어떻든 관심을 갖고 국정을
펼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 잃어버렸던
국민의 사랑을 다시 찾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앞으로는 정상회담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1997년 5월 26일, 저들이 공식인정하고
찬양했던 대남공작의 중단을 확실하게 요구하고 그 영향을 차단할 수 있는 방책도 동시에 강구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중년신사  2012/12/31 11:51:06 [답글] 수정 삭제
한장군님의 애국심과 통찰력에 깊히 존경을 드립니다
저소나무  2013/05/18 11:20:57 [답글] 수정 삭제
우리 지금 이대로가다간 다시 중국 러시아 몽고 일본에 식민당함니다 정치인들 정신차리고 국방력을 키워야 하는데
박민식  2013/05/24 22:12:36 [답글] 수정 삭제
인강 한장군의 애국적인 노력에 경의를 드리며 금번 윤창중의 사건은 필히 정치적인 모략이 있

음이 트림없는데 미국의 수사에서 뜻밖의 사실이 밝혀 지리라 사료됩니다. 6.25 의 불가사이건

도 당시 공산분자의 개입과 공작이 트림없음니다. 이제라도 이나라의 불가사의한일이 더이상 없

도록하기 위해서 침묵을 지키지말고 진실규명에 참여합시다. 한장군님! 애국심에 거듭 경의를

드림니다
한광덕  2013/05/26 19:48:12 [답글] 수정 삭제
평소 존경을 해 온 사관학교의 선배님이 실명의 답 글을 주시다니
저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97.5.26의 노동신문 특집보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힘을 실어 주시기 바랍니다.
빠른 시간내에 찾아 뵙고 싶습니다. 총총, 한광덕 배
진실함  2013/06/14 09:53:41 [답글] 수정 삭제
대한민국 정부의 대공기과 언론기관들이 북한이 공식인정하고 찬양했던 북한의 대남공작에 대하여 침묵을 하기시작했던 1997년 5월26일이 대한민국 위기의 시작이었다는 인강 한장군의 호소에 공감을 하며 그간의 노력에 감사합니다. 이 사실이 온 천하에 빨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윤창중 사건을 바라보는 박민식 장군의 시각에도 적극 공감하면서 이제 육사출신 두 분의 목소리가 함성으로 바뀌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불도저  2013/06/15 15:59:36 [답글] 수정 삭제
지금대한민국에는친북좌파및빨갱이천지입니다군경및정부요직에두루침투결정적시기를기다리며좌경사상을심으며 적화통일의날을기다리고있읍니다그런데우리는지금무엇을하고있읍니까아무리반공교육을해도좌익들의사상교육에는미치지못하는것이현실입니다한상열은교인및성인상대로강정구는대학생을상대로전교조는중고생을상대로친북좌경사상을주입시키는지금이때가절망의시기입니다애국시민및호국청년여러분우리힘을합처쓰래기처리작업을시작합시다한명한명처리하면애국시민들의호응과협찬으로멸공의날이오리라생각합니다 우리모두힘을합칩시다
최봉희  2013/09/11 16:45:34 [답글] 수정 삭제
우리는.좀 느즌감은있으나지금부터는.철저이색출해서 발분세본해야합니다.그리고
첫채.고대, 연대에가서공작하는자경 세력을색출해야합니다.여기에물든학생들은전쟁이무었인지
모르고덤비고있어요. 정말한심합니다. 우리나라는. 너무자유가많습니다. 국가정보원을.더.세력
화해서우리나라를 국권이지켜나가야합니다.감사합니다 이만주립니다.
진천원  2013/09/30 11:09:32 [답글] 수정 삭제
인강장군의 선견지명에 놀라고 있씁니다. 위기의 시작이 1997년 5월 26일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사실이 알려져야만 대한민국이 위기를 벗어 날 것이 분명합니다. 인강칼럼의 김일성 비밀교시와 10년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알려쟈만 합니다.북한이 대남공작을 찬양했는데도 따져서 묻고 중단을 요구하지도않은 채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하면서 퍼주기를 계속하는 동안 대한민은 간첩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이새씨와 채똥욱이가 등장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97년 5월 26일의 노동신문 사건을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이제라도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동안 며칠 걸려 생각한 것을 이곳에 올리비다.
한광덕  2013/10/06 19:33:43 [답글] 수정 삭제
진실함, 불도져, 최봉희, 그리고 진천원님의 관심과 성원에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언제 시작되었었나요? 이 운동을 시작했던 대통령
김영삼은 북한의 대남공작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단정을 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대통령 김영삼이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조건도 없이 북송을 한 3년 후에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인민공화국 영웅 1호”(성시백)의 대남공작을 공식인정하고 찬양(97.5.26)했던 것이고 이 중대한 사실이 공론화되지 않은 가운데 대통령 김대중은 대남공작의 중단조차 요구하지 않고 6.15정상회담을 추진하고 돌아와 63명의 비전향 장기수 북송을 해주었고 노무현은 10.4정상회담에서 형용할 수도 없는 발언을 하고 돌아와서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아직 우리가 태극기 깃발 아래 살고 있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지시지 않습니까?

김.김.노 대통령 시절에 대한민국 국정원은 무력화될 대로 무력화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국정원마져 무력화시키자는 야당이 등장을 하고 여기에 장단을 맞추는 검찰총장까지 등장했던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제라도 “대한민국의 위기시작은 1997년 5월 26일”이었단 사실이 지금 이라도 온 나라에 알려지기만 하면 국민들은 북한의 끈임없는 대남공작에 눈을 크게 뜨게 되고 대한민국은 튼튼히 지켜질 것으로 확신하면서 여러분들께서 함성을 만들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총총
진천원  2013/11/01 09:46:31 [답글] 수정 삭제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무력화될대로 무력화된 국정원을 없애려는 최동욱의 등장은 아무리 보아도 불가사의합니다. 인강칼럼의 김일성 비밀교시를 읽어보면 그 답이 절로 나오는데 아무도 북한의 대남공작을 말하는 사림이 없는 것이 이상합니다. 인강께서 강조하시는 1997년 5월의 노동신문 특집보도에대한 지난 13,4년의 침묵도 불가사의합니다. 그 불가사의 속에서 채동욱은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김정일의 합작품으로 생겨났다는 생각을 지울수 업습니다.
대한민국 위기가 1997년 5월 26일부터 시작됐다는 인강님의 주장이 세상에 알려져야만 현실로 닥아 온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종편 방송에 요구를 해서라도 세상에 알려주시는 노력을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 건투를 빕니다.
한광덕  2013/11/02 21:32:32 [답글] 수정 삭제
진천원 님의 말씀대로 무력화될대로 무력화된 국정원을 없애려는 검찰총장의 등장은 미증유의 불가사의로서 인민공화국 영웅 1호, 성시백이 주도했던 “6.25 전쟁의 10대 불가사의”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어떤 신문도 방송도 그리고 학자도 1997년 5월부터 더욱 강화된 것이 분명한 북의 대남공작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진천원님께서 모든 핵심을 다 짚어 주시니 지금까지 살아 온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참으로 감사 감사합니다.

저는 같은 이야기를 이곳저곳에서 반복해 왔기에 제 글에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방송국에서 불러주면 뛰어서 가겠습니다만 , 진천원님께서 그 함성을 만들어 주실 것을 아울러 부탁드립니다. 건강을 기원합니다. 총총
박민식  2013/11/24 21:18:32 [답글] 수정 삭제
인강 한광덕장군! 그동안 끈질긴 4.3사태의 문제를 이지경이되도록 막지못한 울분에대하여 나도

항상 격분과 격노를 금하지 못하는바입니다.그러나 많은 지성인이 무관심하게 지내는 현실 또

한큰문제이군요,그리고 많은 국민이 그런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실행해야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연구할 필요성이 있네요.군의 고급간부했던자들이 자기 이익과 엔조이에는 무었이든지

아낌없이쓰면서 명분있는 일이거나 봉사에는 외면하는게 한심한 현실입니다 인강선생이 이문제

를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연구해 봅시다.변절기 건강 유의하시고 건강해야만 일할수있으며 우리

의의지를 피력할수있지 않을까요? 남들이 무관심하여도 꾸준한 한국의 안보와 종북척결에 인

강선생의 분투를 거듭 기대합니다. 노병 전우 박민식
한광덕  2013/11/26 05:32:34 [답글] 수정 삭제
박민식 선배님께서 또 한 번의 격려를 주신 것을 어제 밤 전화를 통해 발견하고
아산 병원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새벽에 일어나 이 글 씁니다.

많이 늦었지만 결코 완전히 늦는 법은 없으니 김정일이가 그들의 대남공작을 노동신문을 통해 공식인정하고 찬양했던 보도가 1997년 5월 26일에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그 당시에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면 4.3특별법도 통과될 수가 없었을 것이고 전교조가 다시 합법화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수 많은 과거사 위원회도 생겨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김 노 두 대통령은 이 사실에 눈을 감고 대남공작의 대문을 열어 줄 대로 열어 준 결과로
오늘 날 6.25 남침 전후에 나타났던 "6.25전쟁의 10대 불가사의"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실감할 때에 오늘의 위기는 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에 침묵했던 인사들도 이제는 나서서 그들의 직무유기에 대하여 반성하는 계기도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채명신 사령관님 빈소에서 더 말씀드리도록 하고 줄입니다. 총총
한광덕  2013/12/28 17:17:20 [답글] 수정 삭제
"과거 정부에 북한 독재권력과의 불순한 내통이 있었습니다!!"

"이 모험적 표현"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으나 이제 더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국정원 개혁을 논하는 국회에서조차 말하는 국회의원이 없기 때문이며
이해할 수 없는 철도파업이 오늘 현재까지도 점차 확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1997년 5월 26일, 노동신문 특집보도로 4.3사건을 비롯하여 6.25남침
직전까지 있었던 성시백(“인민 공화국 영웅 1호”)의 공작 활동을 대대적으로
인정 찬양한 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들은 일체 보도하지 않은 채

대통령 김대중은 6.15 정상회담에서 대남공작의 중단조차 요구하지 않고
63명의 간첩(비전향 장기수)을 일체의 조건 없이 북송해 준 바 있었고
대통령 노무현 또한 이 사실에 눈을 감은 채 10.7 정상회담을 추진하였고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는 주장까지 했던 것이니
오호 통재라!

북한이 노동신문을 통해 공식인정했던 대남공작활동에 대한 과거정부의 공식침묵은
북한 세습 독재정권과의 불순한 내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국민들은 1997년 5월26일 이후에 어떤 사회의 변화를 겪어왔습니까?
이제라도 눈을 뜨고 할 말을 용감하게 해야만 대한민국이 지켜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4.3위원 사퇴 후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라는
특집보도의 존재를 늦게 발견하며 놀라서 “대한민국의 위기시작은 1997년 5월 26일“
이라는 글을 세상에 알리는 노력을 계속해 왔으나 아직까지 너무나 무력하였습니다.

이 기회에 1년 여 전에 썼던 “10년을 넘기는 예비역 장교의 고뇌”와 함께
엊그제 청취한 한 젊은 목사의 설교를 “대한민국 건국 역사와 이승만 박사”라는
제목으로 rokfv.com의 게시판에 실었기에 전파해 주시길 바라며 아래에 붙입니다.

http://rokfv.com/jboard/view.php?code=23&uid=6406&page=1&key=&keyfield=

http://rokfv.com/jboard/view.php?code=1&uid=10769&page=1&key=&keyfield=


2013.12.28. 인강

박민식  2013/12/29 17:44:50 [답글] 수정 삭제
한장군의 끈임없는 애국충정의 열정에 경의를 드림니다 제주의 4.3사태에대한상세한 내용의공개

로 많은주변의 동료는 잘알게 되었으며 특히 4.3사태시 현장에서 소대장을하며 생사를 가름하였

던 채명신장군마저 별세하셨으니 당시의 산증인이 없어지셨으니 아쉽군요.

그러나 논리적이고 그분야에 여러면으로 박식하고 잘아는 한장군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또한 한편으로 뿌리깊이 자리잡고있는 좌익분자에대해서는 그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두눈 똑똑

이 선거철에 적극계몽하여 그들을 제거해야됩니다. 많은주변 인사들이 무 반응 무응답이지만

한장군의 논리에대해 공감하고 적극지지하니 지치지말고 계속 전진,계도합시다. 그리고 건강해

야 활동도하니 건강 유의해요. 죽전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문으로부터
한광덕  2013/12/30 11:43:43 [답글] 수정 삭제
박선배님 격려와 성원에 감사합니다.

1. 4.3위원 활동시, 채명신 장군님을 연사로 초청, 4.3 (민간)위원들과 업무관련 인원들에게 4.3사건 당시의 실제 경험담을 듣는 기회를 마련하는 등, 채 사령관님의 정신적 지원을 받았었고 사퇴 후에는 호주의 Anzac Day 행사에 사령관님 내외분과 함께 다녀오는 등 영광도 있었답니다.

이제 왕년의 주월사령관이 장군묘역이 아닌 월남전의 용사들의 전사자 묘역에 영면하시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채장군님의 애국혼과 반공정신이 오래 오래 큰 빛을 발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평소 박선배님의 소망이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2. 국정원의 무력화 공작시도가 명확히 보이는 국회에서조차도 97.5.26의 노동신문 특집보도 사건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청와대와 육사 총동창회 게시판과
조갑제.com과 systemclub을 바롯한 몇 곳에도 이 글 보냈답니다.

3. "북한 독재권력과의 불순한 내통" 이라는 독한 제목을 붙여 놓았으니 13,4년을 넘기는 오랜 침묵을 깨는 함성이 생겨나기를 기대해 보렵니다. 다시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계속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한광덕 배
위급한  2014/04/16 18:01:39 [답글] 수정 삭제
나라가 비정상을 넘어 요지경 정국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그렇게도 기뻐하셨었는데 그 박 대통령도 4.3추념일 제정에 거부권 행사를 못하고 말았으니 ---오호 통제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앞으로 어떤 요지경이 터질지 모를 일입니다. 이제는 천안함에 이어 북이 보낸 무인기 추락까지도 남쪽의 조작이라고 말하는 국회의원까지 공공연히 등장하고 말았으니 ---이 망국지란의 시작이 1997년 5월 28일임을 알리기위해 가명으로 끌을 씁니다만 곧 누군지 알게 되실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 4.3위원회에서 대한민국 국군의 입장를 혈혈단신으로 대변하시고 그리고 4.3위원 사퇴후에도 박원순이가 기획단장으로 만들어 낸 왜곡된 4.3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글을 쓰시다가 패혈증으로 쓸어져 한달여만에 극적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저희들 몇 사람이 몸을 전 질 것입니다.

그 대한민국의 위기사작은 1997년 5월 26일이 분명합니다. 맞습니다. 이제라도 그 함성이 터져나와 많은 국민들이 북한의 대남공작에 눈을 떠야만 대한민국의 내일이 보장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이가 1997.5.26일 노동신문을 통해 인민공화국 영웅1호의 6.25발발 직전까지의 대남공작 전모를 대대적으로 인정하고 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에 대남공작의 일체중단을 요구하지도 않은 채 6.15정상회담을 하고 노무현은 2007년에 10.4정상회담을 하면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자고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김대중 노무현 좌익정부와 북괴와의 내통이 시작되었다는 증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온 국민들이 알게되면 대한민국은 튼튼히 지켜질 것을 확신하며 인강 장군께서 그동안 기울여 오신 열정에 높은 경의를 표합니다. 이 사실에 침묵하고 있는 당시와 그 후의 국방부장관과 안기부장 그리고 노동신문에 접근가능했던 많은 이 땅의 장군들은 북괴와의 내통을 방조한 범법자들로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인강 장군을 존경하는 뜻으로 저와 뜻을 같이하는 몇 몇 동지들이 "대한민국 위기사작은 1997년 5월 26일" 이라는 프랭카트를 들고 청와대 앞 기습 시위를 계획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오음리의 해괴망측한 동상출현도 그 배경에 성시백 2세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도 아울러 알리게 될 것입니다. 4.3바로잡기 대책위원회가 최근에 발족되어 제주도까지 가서 투쟁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라며 두서없이 줄입니다.
한광덕  2014/04/19 21:51:10 [답글] 수정 삭제
대한민국 위기가 북한의 대남공작에서 비롯되며 그 시작이 1997년 5월 26일이었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계신 애국 동지께서 울분을 토해 주시니 살아 온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각종 집회에서 만나게 되는 분들로부터 제 글을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만 신문사에는 아무리 글을 보내도 반응이 없어 단념한지가 이미 오래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대한민국 위기시작은 1997년 5월26일”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1인시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주시니 저도 그 시간에 함께 행동할 생각입니다.

최근 제주 4.3사건 바로잡기 대책회의가 정부종합청사 후문과 제주도 현지의 4.3공원 정문 일대에서 궐기대회를 했었지만 모든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데, 우리의 1인시위가 언론의 관심을 끌 것인가가 큰 숙제입니다. 거사 전에 우선 뵙고 싶습니다. jajulbo@gmail.com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총총
한광덕  2014/11/26 20:00:59 [답글] 수정 삭제
<추신> 위급한의 가명을 쓰신 분은 두 차례 만난 바 있었는데 시위 일자를 결정하지 않은 채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고교 동창들과 산행 중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할수 있었음을 밝히며 극진했던 한 애국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박민식  2015/01/17 21:56:49 [답글] 수정 삭제
국내에 암약하는 불순분자는 많은데 왜 그들이 활개치도록 방임하는지 의아스럽군요

우리의 국정원,기무사에서는 왜? 그냥지나치는지 의아스럽고 걱정되네요 그러나 시급함을 느껴

도 그냥있다면 애국단체라도 앞장서서 국민의호응받아서 일어서야되는지? 의문이 갑니다.

외로운 투쟁을하는 인강선생의 애국열정이 매우 안탑갑슴니다.

그러나 다수가 침묵을지켜도 그들은 마음속에 안보의 걱정을 같이하고있으니 실망마시고 계속

보수진영에 소리를 전해주세요. 인강선생같은분이 있어서 매우밑음직합니다.수고하세요.
한광덕  2015/01/21 15:48:01 [답글] 수정 삭제
암약하는 불순분자가 있는데도 활개치도록 방임하는 것은 정상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 그 자체입니다.
이 불가사의를 깨는 함성을 만들어 보려고 제 나름의 몸부림을 쳤으나 아직까지도
주요 언론까지도 모두 침묵하는 다수로 남아있음을 한탄합니다.

최근 지만원 박사가 집필한 "5.18분석 최종보고서"에 의하면 대법원의 5.18 2차 재판에서
전두환 대통령 사형, 노태우 대통령 무기징역의 선고된 한 달 9일 후에
북한은 공화국 영웅 1호의 대남공작을 공식인정하고 찬양하는 특집보도를 냈던 것인데
북한의 대남공작 인정 찬양 보도에 침묵함으로서 북한과의 내통이 시작되고
오늘날 각종 불가사의 사건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선배님께서 응원을 해 주시니 다소 힘을 얻게 됩니다만 사람들이 제 글에는 시선을 주지 않으니 이제부터라도 다른 분들이 저마다의 이름으로 선배님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기가 1997년 5월 26일"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함성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오며 주신 답 글에 감사드립니다.
구창환  2015/10/27 10:05:40 [답글] 수정 삭제
인강 장군의 말씀, 대한민국 위기의 시작은 1997년 5월 26일이라는 주장이 너무나 정확했음을 확인합니다. 97.5.26의 노동신문 특집보도는 5.18이 북한의 성공적인 대남공작이었음을 천명하는 보도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주의 5.18떼 북한 특수부대 공작요원들 600여명이 왔었다는 것을 12년의 연구와 최근의 영상사진 분석으로 증명해 낸 지만원 박사와 함께 한광덕 인강 장군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며 내내 건강을 기원합니다. 감사와 함게 대한민국 만세입니다.
한광덕  2015/11/01 14:32:36 [답글] 수정 삭제
6.25 남침이 있었던 당시의 "10대 불가사의"를 훨신 능가하는 각종 불가사의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오늘입니다. 그러함에도 모든 방송과 언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구창환님께서 북한의 대남공작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가 1997년 5월 26일의 노동신문 특집보도에 대한 침묵이라고 지적해 주시니 큰 힘을 얻습니다. 월남참전 전우들의 목소리를 통해서라도 이 사실이 온 나라에 알려지기를 지기를 바라며 jajulbo@gmail.com으로 전화번호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김유송  2015/12/04 19:16:54 [답글] 수정 삭제
한광덕장군님! 늦게나마 한장군님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잃으며
널리 전파하고저 페이스북에 올려봅니다, 장군님의 집필을 탐독하면서 제가 가장 강하게 충격받은것은 제주4.3사건과 광주5,18사건과 같은것들이 미화분식 또는 왜곡되면서 그후세들이 차지한 막강한 권력이 대한민국을 여지없이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빨리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10년후 대한민국은 뿌리채 뽑힐지도 모른다는 위압감에 등골이 서늘해 집니다,
한광덕  2015/12/05 19:43:45 [답글] 수정 삭제
김유송 동지!! 더 없이 반갑습니다. 500만 야전군에서는 체취를 느끼곤 했었는데 근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까지도 했었는데 ---- on-line 에서 만나니 더 이상 기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위기의 시작은 1997년 5월 26일"이라는 글을 facebook에까지 실어주셨다니 관심에 감사드리며 jajulbo@gmail.com으로 maiㅣ주소 하나 받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몸조심을 바랍니다.
총총
한광덕  2015/12/06 16:22:21 [답글] 수정 삭제
방금 systemclub에서 귀하관련의 믿어지지 않은 내용을 읽었습니다. 우선 mail 주소를 주시기 전에 이 자유게시판의 #5140에 등재된 "황장엽의 망명을 보며(18년 전)"를 읽어주시고 답 글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77명이 다녀갔는데도 아직 한사람의 질문도 없고 콤멘트도 없어 이 침묵을 깨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건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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